[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혹자는 불편해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건 없다'며 손사래 칠 수 있다. 하지만 암암리에 존재했던 '한국형 축구'에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은 매스를 들었다.

현재 한국형 축구의 상징적인 존재들을 거부하고 경고하면서 앞으로 3년이 남은 2018 러시아 월드컵에는 반드시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은 17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3월 A매치 명단을 발표했다. 대표팀에 소집된 23명은 오는 27일 대전에서 열리는 우즈베키스탄전, 31일 서울에서 열리는 뉴질랜드와의 A매치 경기에 나서게 된다.

이날 발표된 명단은 지난 2015 AFC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 이후 처음으로 소집되는 대표팀이기에 이목이 집중됐다. 과연 슈틸리케 감독이 변화를 택했을지 아니면 안정을 택했을지 기대됐다. 또한 뉴질랜드전에서 은퇴식을 예정된 차두리가 선수로서 출전해 '은퇴식'이 아닌 '은퇴경기'를 가지게 될지, 이동국-김신욱 등 한국의 대표 공격수들이 부상을 딛고 다시 대표팀에 돌아올 수 있을지가 주목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차두리를 31일 뉴질랜드전을 앞두고 소집해 은퇴경기에 선발 출전시켜 전반 막판 교체시키며 팬들에게 인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계획을 밝혔다. 전반전 출전 후 차두리는 하프타임 때 대표팀 은퇴행사를 가지게 된다.

차두리와 함께 관심거리는 이동국-김신욱으로 대표되는 '왕의 귀환' 여부였다. 원래 대표팀 부동의 최전방 공격수였던 이들은 지난해 막판 부상을 당하며 아시안컵에 불참했다. 그럼에도 워낙 국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지녔기에 무난한 승선이 예고됐다.

하지만 슈틸리케의 생각은 달랐다. 이동국은 완전히 대표팀에서 제외됐고 김신욱은 정규 멤버 외 6명의 대기명단에 들어갔을 뿐이었다. 또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던 이근호도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이동국을 뽑지 않은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슈틸리케 감독의 생각은 단호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도리어 "이동국이 올 시즌 몇 분이나 뛰었는가"라고 반문하며 "대표팀은 선택받은 자들이 들어오는 곳이다. 지나치게 문턱이 낮아져서는 안 된다"며 딱 잘라 말했다. 이동국은 지난 14일 서울 원정경기에서 30여분간 교체 출전하며 지난해 10월 부상 이후 약 5개월 만에 그라운드에 나섰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평소의 생각대로 '이름값'보다는 '출전시간'을 더 중요시 한 것이다.

김신욱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갔다. 김신욱은 지난 주말경기에서 교체선수로 나와 골까지 넣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는 "(김신욱이)계속 교체선수로 나오는 건 몸 상태가 온전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대기명단에 넣은 것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라면서도 "만약 대기명단 중 공격수 하나를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면 대표팀에 꾸준히 나왔던 조영철이 김신욱보다 우선순위에 있다"며 작심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또 다른 대표팀 붙박이 멤버로 여겨졌던 이근호에 대해서는 "아시안컵에서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했다. 사실 이근호는 예의 바르고 인간적인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선수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대표팀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경기장에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날 발언은 국내에서 최고의 스타로 평가되는 선수들에게는 불편하게 들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도리어 이들에게 대표팀 선발기준의 기본인 '출전 시간 확보'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사실 기존 '한국형 축구'의 정서라면 이동국이나 김신욱, 이근호 등은 비록 출전시간이 부족하더라도 충분히 뽑히고도 남았을 선수들이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이름값'이나 '과거'에 기대지 않고 가장 최근,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슈틸리케 감독이 이 선수들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공식석상에서 이동국을 만날 때마다 가장 먼저 안부를 묻는 것으로 유명하고, 김신욱 역시 마찬가지다. 이근호에 대해서는 인간성에 대해 칭찬하며 좋은 관계를 보여줬다.

그러나 공과사를 명확히 구분하는 그는 "친분이나 과거 경력으로 대표팀에 선발할 수 없다. 대표팀의 문턱은 결코 낮지 않다. 대표팀은 특별한 곳이다. 영광스러운 자리여야 한다"며 다시금 A대표팀의 무게를 강조했다.

이처럼 슈틸리케는 명확한 자신만의 선을 정해 이름값에 얽매이지 않는 대표팀 선발을 해왔다. 어쩌면 이것이 무려 2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진출이라는 대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슈틸리케의 비결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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