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이재현 기자] 한때는 홍명보 전 국가대표 감독이 직접 '제2의 홍명보'로 지목했다. 또한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원정 월드컵 첫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루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대표팀 호출이 적어졌고 그렇게 조용형(32)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머나먼 타국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이바지했다. 여전히 그의 탄탄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경기 조율까지 하는 '커맨더형' 수비능력으로 한국나이 33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또 다시 새로운 팀의 부름을 받았다.

우리는 잠시 조용형을 잊어다 할지라도 조용형은 여전히 외국에서는 한국 축구를 알리는 선구자 역할과 근면 성실함의 아이콘으로 활약 중이었다. 설 연휴를 앞둔 어느 날, 강남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조용형을 만나 그간의 근황과 남은 축구인생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국내 유턴도 고려했지만 중국행 택해…연봉 삭감도 감수

조용형은 지난 1월 카타르의 알 샤말을 떠나 중국의 승격팀 스좌장으로 이적했다. 2010년부터 5년간 뛰어왔던 카타르 생활을 뒤로한 채 30대 초반의 나이에 또 다른 도전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오래 카타르 생활을 하다 보니 스스로 나태해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 열정도 조금씩 사라지고 날씨가 덥다 보니 늘어지는 경향이 생기는 거죠. 그러던 중 스좌장의 제안을 받고 다양한 축구 경험을 해보자는 생각을 갖고 중국행을 택하게 됐습니다. 또한 구단주가 팀에 대대적인 투자를 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제 마음을 흔들어놨죠."

사실 조용형의 5년간의 카타르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재정적으로 넉넉한 보장을 받긴 했지만 전혀 연고도 없는 생소한 국가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오죽하면 큰 집에 홀로 벽만 바라보며 얘기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쉽지 않은 카타르 생활이었지만 특유의 성실함을 경기장에서 내보였고 카타르에서는 조용형을 계기로 '한국축구는 성실하다'는 인식을 가져 이후 많은 선수(조영철, 남태희 등)를 영입하게 된다.

조용형은 카타르 생활을 끝낼 때 국내 유턴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꽁꽁 얼어붙어있는 국내 이적시장에서 조용형의 몸값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프로선수라면 급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렇다고 중국에서 카타르에서 받던 수준을 맞춰준 것도 아닙니다. 중국에서 계약을 채운 후 꼭 국내 복귀를 하고 싶네요."

▶"말라가요? 그 조항이 없었다면 카타르 안 갔죠"

조용형하면 축구 팬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말라가 이적이다.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 직후 카타르 알 라얀에서 2년 활약 후 같은 구단주가 소유한 말라가 이적을 보장받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2년 사이 말라가는 대대적 보강을 이뤘고 프리메라리가의 외국인 선수 제한 등과 맞물려 말라가 이적은 유야무야 미뤄지며 취소됐다.

"분명 계약서에는 2년 후 말라가 이적이 보장돼 있었죠. 하지만 막상 2년 후가 되니 중동 특유의 '알아서 될 거다'식의 방식이 나오더라고요. 말라가로 억지로 갈수도 있었지만 간다고 해서 뛸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고 당시 카타르 팀은 절 원하고 있었고…. 여러 상황이 맞물려 스페인행을 포기했죠."

한국 중앙 수비수 최초의 프리메라리가 진출의 꿈은 그렇게 좌절됐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말라가행이 보장되지 않았다할지라도 카타르행을 택했을까. 과연 다시 선택할 수 있는 남아공 월드컵 직후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내릴까.

"만약 말라가 이적 조항이 없었더라면 카타르행을 택하지 않았겠죠. 당시 제 나이가 선수로서는 전성기였거든요. 그때만 해도 카타르 축구는 아예 몰랐어요. 말라가 이적 조항 때문에 선택한 거였죠. 사실 가끔씩 생각해봐요. '카타르가 아닌 다른 곳을 갔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됐을까?'하고 말이죠. 결과적으로 카타르행을 택했기 때문에 대표팀에서 멀어졌죠. 물론 그것도 제 판단이기에 후회는 없어요. 그저 한번쯤 '그랬다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하는 정도죠."

▶대표팀? 후배들이 잘하고 있어 걱정 안해

조용형의 마지막 대표팀 출전은 2012년 5월 열린 스페인과의 평가전이 끝이다. 그마저도 대표팀에 제외 된 지 1년 만에 찾아온 기회였지만 한국이 1-4 완패를 당하면서 조용형은 시운마저 타지 못했다. 그의 A매치 경력은 42경기 출전에 머물러있다. 과연 그의 43번째 A매치는 가능할까.

"사실 예전에는 대표팀에 대한 미련도 있었죠. 지금도 불러주면 고맙죠. 한국에서는 대표팀에 뽑혀야 선수생활을 하는 줄 아니까요. 하지만 대표팀이 아니더라도 선수생활은 은퇴하기 전까지 계속되는 겁니다. 이제 욕심은 버렸죠. '마음을 놨다'랄까요. 지금은 어리고 좋은 후배들이 잘하고 있어 그 선수들이 대표팀의 중심으로 성장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번 2015 AFC 호주 아시안컵은 사실상 중동파가 중심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역시 중동에서 오랜 감독생활을 했고 최전방의 이근호부터 후방의 곽태휘까지 중동에서 뛰는 선수들이 팀의 주축으로 27년 만의 결승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뤘다.

"사실 제가 처음 중동에 갈 때 만해도 사회적으로 부정적 인식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지금은 중동에 가도 대표팀에 뽑힐 수 있고 '선수로 끝'이라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죠. (서운하지 않나?) 서운하지는 않아요. 감독님의 성향 차이죠. 감독님이 원하는 곳에서 선수를 보고 뽑는 것은 고유권한이니까요."

▶축구 인생 가장 좋았던 혹은 아쉬웠던 순간

그가 최고 전성기를 내달렸던 것은 역시 남아공 월드컵 때다. 당시 이정수와 함께 한국의 주전 중앙수비수로 맹활약하며 한국의 원정 월드컵 최초 16강의 위엄을 달성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전 경기 풀타임 출전을 한 가장 영광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조용형은 이때를 선수 생활 중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 꼽기도 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전경기 풀타임 출전해 한국 축구사 첫 원정월드컵 16강의 기적에 공을 세운 조용형. ⓒAFPBBNews = News1

"특히 16강 우루과이전이 많이 아쉬워요. 분명 경기를 하면서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멤버 구성도 워낙 좋았죠(박지성, 이영표, 차두리, 기성용, 이청용 등). 근데 루이스 수아레스가 정말 '미친' 활약으로 말도 안 되는 슈팅을 선보이며 경기를 끝냈죠. 8강에 진출했다면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는데…. 그때 좀 더 잘 할 걸, 집중 할 걸 하는 아쉬움이 문득 들기도 해요."

그렇다면 그가 꼽는 선수 생활 중 가장 좋았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의외로 전성기였던 시절보다 유명하지 않았던 신인시절을 꼽았다.

"비록 경기에 나서진 못했지만 2005년에 처음으로 대표팀에 발탁됐는데 그 당시 마음이 많이 기억나네요. 처음이었고 대표팀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이후에는 대표팀이 익숙해지다 보니 그런 마음을 잊고 몰랐는데 지금 떠올려보면 그때의 순간순간이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걸 깨닫네요."

국내에서는 중앙 수비수가 못할 때면 '자동문'이라며 비아냥거리곤 한다. 조용형 역시 한때 이러한 논란에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어느새 다소 불쾌할 수 있는 질문에 소탈한 웃음을 보이는 여유까지 갖춘 선수가 돼있었다.

"사실 제가 자동문 1세대죠.(웃음) 그러나 수비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닙니다. 11명 모두 함께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한 게 수비입니다. 축구를 하다보면 실점 상황도 있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수비수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생각을 해본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자동문에 자물쇠를 채워놓고 싶네요. 자물쇠가 채워진 단단한 문으로 남은 선수생활을 잘 마무리한 뒤 국내에서도 좋은 모습으로 팬들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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