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네이터' 차두리(35·서울)의 배터리는 방전될 줄 몰랐다. 스스로 사용기간이 끝나간다고 웃음을 짓고 있지만, 오히려 그의 배터리는 아시안컵이 이어질수록 '완전 충전'을 알리는 파란 불빛이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슈틸리케호의 '맏형' 차두리가 26일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선발출전해 90분 풀타임을 뛰면서 한국 대표팀의 2-0 승리를 든든히 뒷받침했다.

차두리는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120분 연장 혈투를 치른 터라 이날 선발 출전이 불투명했지만 주변의 우려를 불식하듯 당당히 선발로 나서 후배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맡았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에 앞서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한데다 이라크의 주요 공격 루트가 좌우 측면인 점을 고려해 몸싸움에서 탁월한 차두리를 선발로 내세우는 모험을 선택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을 받은 차두리는 90분 내내 머릿속에 입력된 사령탑의 프로그램에 맞춰 이라크 좌우 날개의 공세를 제대로 막아냈다.

차두리가 든든히 후방을 지키는 사이 한국은 전반 20분 이정협(상주)의 헤딩 결승골에 이어 후반 5분 김영권(광저우 헝다)의 추가골까지 이어지며 비교적 손쉽게 승리를 낚을 수 있었다.

차두리의 진가는 후반 중반께 체력이 고갈돼 선수들의 조직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발휘됐다.

차두리는 후반 12분 이라크의 두르감 이스마엘이 페널티지역 왼쪽까지 침투해 때린 강한 슈팅을 몸을 날려 막았다. 이스마엘의 슈팅은 차두리의 '엉덩이 방어'에 막혀 좌절됐다.

이라크의 공세가 이어지는 사이 차두리는 34분께 강력한 질주 본능을 앞세워 오른쪽 측면 돌파를 시도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보여줬던 60m '폭풍 질주'가 재현되는 듯한 상황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이라크 수비수 두 명이 몸으로 막아내는 통에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차두리의 넘치는 스테미너는 이라크 수비진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차두리는 후반 38분 상대 공격수가 페널티지역으로 투입하는 상황에서도 힘에서 밀리지 않는 어깨싸움으로 볼을 빼앗아내 골키퍼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의 부담을 덜어줬다.

음지에서 혼신을 쏟은 '맏형'의 헌신 속에 한국 축구는 1988년 아시안컵(준우승) 이후 27년 만의 결승 진출에 성공하며 55년 만의 왕좌 탈환을 향해 바짝 다가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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