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2014년이 하루도 채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올해의 끝을 잡고 있는 축구 팬들에게 2014년은 진정한 희로애락의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한해였다.

기억이란 휘발성과 조작성이 강해 잊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빠르게 휘발시키고, 안 좋았던 일도 조작을 통해 변형해서 저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희로애락을 보여준 올해 한국축구는 그 자체로 큰 교훈을 띄고 있어 잊지 말아야하거나, 혹은 강렬한 인상을 남겨 잊지 못할 경기들을 양산해 기사를 통해서나마 기억의 휘발성과 조작성을 막아야할 의무를 느낀다.

▶잊지 말아야할 6월23일의 대참사

장소는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 한국과 알제리의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H조 2차전. 경기가 열리기전인 오전 4시(한국시각)까지만 해도 ‘난적’ 러시아에 1-1 무승부를 거둔 한국은 ‘H조 최약체’ 알제리를 잡고 조 2위로 16강에 나설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2시간이 흐르고 경기가 끝난 오전 6시. 한반도는 정적에 휩싸였다. 근 몇 년간 이렇게 치욕적이고 충격적인 경기는 없었기 때문. 특히 전반 45분 동안 단 한 번의 슈팅조차 날려보지 못하고 12개의 슈팅을 내주며 3골을 허용한 대표팀 수비진의 붕괴와 리더십 실종 등 감추고 싶은 한국 축구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다. 알제리에 2-4로 처참하게 패하며 얻은 아픔과 교훈, 한국축구의 새로운 출발의 밑거름이 되길 기대해본다.

▶우리는 그 순간, 한국축구에서 마라도나를 봤다


스포츠한국과 만나 스페인 생활과 축구관을 들려줬던 이승우

장소는 태국 방콕, 최진철 감독이 이끄는 U-16대표팀은 9월15일 AFC U-16 챔피언십 8강 일본과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이날 이승우(16·바르셀로나 후베닐A)는 전반 41분 골을 넣은데 이어 후반 시작과 동시에 약 60m 이상을 단독 돌파하며 골키퍼까지 젖히는 '원맨쇼'로 경기에 쐐기를 박았다. 이 골은 한국 축구 역사에서 보기 힘든 환상적인 골로, 앞으로 이승우가 어떤 골을 넣든 자신의 가장 대표적인 골이 됐다.

이 골에 대해 외신도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승우가 활약 중인 스페인 언론인 문도 데포르티보는 경기 후 "이승우가 태국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대회에서 놀라움을 이어갔다"며 "특히 두 번째 골은 골키퍼까지 피하며 넣은 예술작품이었다"고 보도했다. 테인테레사 역시 "그 골은 마치 '메시처럼' 넣은 골이다"며 극찬했다.

이승우는 경기 전에 있었던 인터뷰에서 8강에서 일본과 맞붙은 소감에 대해 “일본정도는 가볍게 이길 수 있다”고 했고 정말 두 골을 넣으며 그 약속을 지키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극적인 3위 등극을 확정짓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서울 최용수 감독과 선수단

K리그 클래식 최종라운드가 열렸던 11월30일 제주 서귀포와 경북 포항. 좀처럼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경기직전까지 4위였던 FC서울이 3위 등극이 가능했던 시나리오는 딱 하나. 제주 원정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를 잡고, 포항 경기에서 홈팀 포항이 수원에게 패하면 꿈같은 역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것도 0-1로 뒤지고 있던 서울이 후반 24분 윤일록의 골과 후반 44분 오스마르가 골을 넣어 2-1 역전에 성공한 것. 그와 동시에 포항 경기에서는 포항이 후반 3분 터진 김광석의 골로 1-0으로 앞서고 있다 후반 34분과 39분 연달아 골을 내주며 1-2로 패하고 만 것이다.

경기 종료 직전 나온 수원의 골과 서울 오스마르의 골로 서울은 승점 58점으로 3위였던 포항과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에서 3점차로 따돌리며(서울 +14, 포항 +11) 극적으로 3위에 오르며 내년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을 따내며 2014시즌을 마쳤다. 서울이 제주 원정에서 역전승을 거둔 것도 놀라웠지만 이를 가능케 한 수원이 서울과는 `견원지간'임을 감안하면 재밌는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날 이후의 가슴 아픈 여파


강등이 확정되고 망연자실하는 경남 응원단

정규리그는 끝났지만 한국 프로축구는 승강 플레이오프가 막을 내린 12월6일부로 완전히 종료됐다. 그리고 그날 이후 한 팀은 지금까지도 극심한 내홍을 겪으며 휘청이고 있다.

광주는 12월 6일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1차전 3-1 승리를 묶어 스코어 합계 4-2로 경남을 꺾고 2015시즌 K리그 클래식 승격을 확정했다. 이는 클래식에서 활동하던 경남이 창단 후 처음으로 2부리그 챌린지로 강등됐음을 의미한다.

남기일 감독대행의 마술 같은 힘으로 챌린지 4위에서 승격까지 오른 스토리는 그 자체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이보단 경남이 강등 후 ‘해체 위기’까지 몰린 것이 더욱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경남은 강등 직전부터 이미 홍준표 구단주가 ‘강등을 당할 경우 해체를 고려하겠다’는 강도 높은 발언으로 움츠러들었고 실제로 강등 후 홍준표 경남 도지사는 고강도 감사를 실시했다. 이로 인해 경남 수뇌부는 모두 물갈이 됐고 박성화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새롭게 사령탑에 부임하는 등 큰 변화를 겪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을 비롯한 많은 축구인들이 한 뜻으로 얘기했듯 강등이라는 것은 축구가 발전한 나라에는 매우 흔한 일이라는 점이다. 물론 경남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팬들이나 축구인 모두가 공감한 내용이지만 가장 극단적인 방법인 ‘해체’까지 운운한 것은 경남FC와 K리그 팬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는 점이다.

사진= ⓒAFPBBNews = News1,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FC서울, 경남 F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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