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극작가 안톤 체호프는 ‘겨울은 희망이 없는 황량한 계절’이라 했다. 1월은 그 ‘희망이 없는 황량한 계절’의 정수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몇 유럽팀에게 2015년 1월은 더욱 희망도 없고 황량한 추위만이 감쌀지도 모르겠다. 바로 2015 호주아시안컵을 위해 소속팀의 아시아 선수를 의무적으로 내줘야하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나가토모, 혼다, 손흥민, 오카자키, 제디낙, 기성용

예전에 비해 그 수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아시아 선수들은 유럽 빅리그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동아시아, 특히 한국 일본 호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아무래도 중동 선수들의 유럽 진출의 맥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나마 중동 선수 중에는 러시아 루빈 카잔에서 백업 멤버로 활약 중인 사르다르 아즈문이나 한때 이름을 날렸던 알리 알 합시(위건), 자바드 네쿠남(오사수나) 등이 있긴 하지만 모두 2부리그에서 활약 중이다. 최근 중동선수들은 중동 내에서만 뛰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전체적인 하향평준화를 불러오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유럽 빅리그팀들 중 아시아선수가 빠짐으로서 가장 타격을 입게 될 팀은 어디일까. 공교롭게도 스페인을 제외한 유럽 4대 리그에 각각 소속된 두 팀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세리에A : AC밀란, 인터밀란

가뜩이나 갈 길 바쁜 두 밀라노 팀에게 아시안컵은 아쉽기만 하다. 4-3-3 전형에서 오른쪽 윙 포워드를 맡아주던 혼다 케이스케의 공백은 분명 크다. 공격수 제레미 메네즈(1,268분)에 이어 팀내 두 번째로 많은 출전시간(1,193분)을 가져가며 팀내 확고한 주전이었던 혼다는 이그나치오 아바테(4도움)에 이어 팀내 두 번째로 많은 도움(3개)을 기록하고 있었다.

내년 1월5일 페르난도 토레스마저 떠나는 것이 확정됐지만 다행히 맞임대로 오게 되는 알레시오 체르치가 혼다를 바로 대체할 것으로 보이지만 분명 ‘No.10’ 혼다의 공백은 뼈아프다.

인터 밀란도 윙백 나가토모 유토의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 스리백 전형을 고수함에 따라 오른쪽 윙백으로 주로 나서던 나가토모는 비록 올 시즌 9경기 출전에 그치며 예전만큼의 입지(20011~12시즌 리그 35경기, 2013~14시즌 리그 34경기 출전)를 꿰차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아시아 최고 풀백으로서 인터 밀란에서 활약 중이었다. 조나탄(브라질)이나 조엘 오비(나이지리아) 등으로 나가토모 없는 1월을 버틸 것으로 보인다.

▶독일 분데스리가 : 마인츠, 레버쿠젠

다행히 분데스리가는 다른 리그와 달리 겨울 휴식기가 1월 말까지로 길어 다른 리그보다는 아시아 선수의 차출이 큰 타격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쉬어야할 때 못 쉬고, 겨울동안 팀 훈련에 빠져 전술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면에서 아시아선수의 대회 출전은 전혀 반갑지 않다.

마인츠는 무려 세 명의 외국인선수가 아시아 선수(박주호, 구자철, 오카자키 신지)이기에 전 유럽팀을 통틀어 아시안컵을 통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됐다. 특히 가장 뼈아픈 것은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오카자키의 공백. 오카자키는 올 시즌 리그 16경기 8골이라는 엄청난 득점 기록(경기당 0.5골)으로 리그 득점 4위에 올라있다. 득점랭킹은 4위지만 팀 득점의 42%(19골 중 8골)를 책임져 이 기록에서 분데스리가 선수 중 전체 1위를 기록했다. 즉 마인츠는 오카자키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컸던 것.

반면 박주호나 구자철이 가는 것은 도리어 반가울 수도 있다. 특히 구자철은 좀처럼 경기력이 기대했던 것만큼 돌아오지 않았지만 자신을 스타덤으로 올려놨던 아시안컵을 통해 반등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

레버쿠젠은 ‘팀 전력의 핵심’ 손흥민 차출로 언짢을 수밖에 없다. 물론 리그 3위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치긴 했지만 문제점이 많이 노출됐기에 겨울 휴식기동안 보완해야할 점이 많다. 하지만 손흥민없이 손발을 맞춘다는 것은 ‘모 항공사의 사과문’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기에 아쉽기만 하다.

▶잉글랜드 EPL : 크리스탈 팰리스, 스완지 시티

사실 1월 차출에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은 다른 리그에 비해 겨울에 더 많은 경기를 가지는 EPL이다. 그 중 아시아 선수에게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맡겼던 크리스탈 팰리스와 스완지 시티는 더욱 한숨이 깊어진다.

일단 가장 급한 건 크리스탈 팰리스다. 30일까지 리그 18위로 강등권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는 크리스탈 팰리스는 그나마 팀내 득점 1위이자 가장 압도적 활약을 해주던 마일 제디낙이 호주 대표팀으로 떠나게 되면서 근심이 더욱 깊어졌다. 아시아축구연맹(AFC)로부터 2014 ‘올해의 인터내셔널 선수’(외국에서 활약 중인 아시아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로 선정되기도 했던 제디낙은 중앙 미드필더임에도 5골을 넣으며 팀내 득점 1위에 올라있다.

후스코어드 닷컴의 평점에 따르면 제디낙은 올 시즌 평균 평점 7.64를 기록했는데 그나마 팀내 2위인 제임스 맥알툴은 7.14를 기록했을 뿐이다. 무려 0.5 이상의 차이를 통해 제디낙이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얼마나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지 간헐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스완지 역시 기성용 차출로 골치 아픈 건 매한가지다.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티켓 마지노선인 4위까지 고작 승점 5점 차이(4위 사우샘프턴 승점33, 9위 스완지 승점28)밖에 나지 않으며 여전히 상위권을 노릴 법도 하지만 중원에서 팀 전술 자체를 조율하는 기성용의 공백은 아쉽기만 하다. 개리 몽크 감독은 30일 리버풀전에서 기성용을 선발에서 제외하며 ‘1월 예상 베스트 라인업’을 들고 경기에 나섰지만 1-4 처참한 패배만을 맛봤을 뿐이다.

전경기에 선발 출전시키며 기성용 없이 살아본 적이 없던 몽크 감독의 스완지는 이제 기성용 없이 살아가는 법을 억지로라도 익혀야 한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는 체호프의 말을 빌려 '겨울은 희망이 없는 황량한 계절'이라고 했지만 '겨울 역시 생명 순환의 일부이다. 길고 화려한 겨울보다 더 좋은 시절은 없을 것이다'는 말로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주인공의 마음을 표현했다. 아시아 선수없이도 버텨내는 법을 배우고, 아시안컵에서 더 많은 것을 성취한다면 팀이나 선수 모두에게 전화위복의 기회로 다가와 그 자체로 순환의 일부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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