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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처음부터 강팀의 지휘봉을 잡은 감독들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의 꼬리표가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만약 약팀의 감독이라도 이 정도 성적을 낼 수 있을까' 혹은 '약팀을 끌어올린 적이 없으니 더 증명해야 해'와 같은 시선에 세계적 명장인 펩 과르디올라(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역임) 같은 감독에게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의미로 김학범 감독은 FA컵 우승을 통해 진정한 명장의 의미를 '약팀' 성남의 지휘봉을 통해 증명해냈다.

성남은 2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의 2014 하나은행 FA컵 결승전에서 0-0 무승부 후 승부차기 끝에 박준혁 골키퍼의 선방쇼에 힘입어 4-2 승리를 거두며 올 시즌 성남 일화에서 성남 FC로 재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김학범 감독은 "성남 일화라는 기업구단에서 성남FC라는 시민구단으로 재창단 하자마자 우승을 따낸 것은 분명 큰 의미가 있다"며 우승의 무게감을 설명한 바 있다.

이전까지 김학범 감독의 능력에 대해 다소 과소평가하는 시선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가장 큰 업적으로 기억되는 2006 성남의 리그 우승도 성남이 2001~2003시즌 3연속 리그 우승을 기록했던 강팀이었다는 배경이 작용하면서 평가절하 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이후에도 2007 K리그 준우승 등 좋은 성적을 냈음에도 '처음부터 강팀을 맡은 운장'이라는 평가를 지울 수는 없었다. 결국 2008시즌을 끝으로 성남 지휘봉을 내려놓고 중국에서 야인생활을 마친 후 2012년 7월 다시 국내무대로 복귀했을 때는 보란 듯이 '강팀'이 아닌 강등권인 강원의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강원은 강등 유력 후보 중 한 팀이었지만 김학범 감독 부임 이후 시즌 막판 3연승을 비롯해 확 달라진 팀 분위기를 앞세워 극적으로 강등을 면할 수 있었다. 강원을 강등에서 구해낸 것으로 김학범 감독은 자신의 능력이 강팀에서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리고 2014년 9월 갑작스럽게 부임한 '친정팀' 성남FC는 그 옛날의 성남이 아니었다. 기업구단에서 시민구단으로 탈바꿈하며 선수 자원, 재정 등 모든 부문에서 달라졌다. 게다가 성남은 현재까지도 강등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전력 면에서도 '약팀'에 수렴한 팀이었다.

그럼에도 김학범 감독은 '약팀'이 되어버린 성남으로 FA컵 4강에서 '리그 우승팀' 전북을 꺾더니 결승에서는 '한국 최고의 빅클럽'인 서울마저 누르며 팀에 3년 만에 우승컵을 안겼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두 원정경기였다는 점이고 그 누구도 성남의 승리를 점친 사람은 없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김학범은 감독 초기 '강팀으로만 잘하는 감독'이라는 인식을 강원과 다시 돌아온 성남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강팀에서도 잘하고 약팀에서도 잘했으니 이처럼 '명장의 조건'에 더 부합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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