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기본기·창의력 무시한 채 이기는 전술에만 초점

지도자들 "성적 쫓게 만드는 학원스포츠 시스템이 문제"

[스포츠한국미디어 김명석 기자]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이 있다. 어린 시절 길들여진 습관은 고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어릴 때 습관을 잘 들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축구도 예외는 아니다. 어린 시절의 습관, 즉 기본기는 그 선수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축구 선수로서 필요한 창의력도 어린 시절에 키워야 한다. 모두가 유소년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벽과 부딪히면 그 중요성의 의미는 사라진다. 어린 선수들은 기본기보다 승리를 위한 전술과 전략을 먼저 배운다. 틀에 박힌 전술로만 움직이니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도 잃는다. 이유는 하나다. 학원축구의 문화가 선수의 성장이 아닌 팀의 승리로 목적이 전도된 까닭이다.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할 나이에 선수들은 그 기회를 철저히 억압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팀의 승리에만 집착하고 있는 학원축구

초등리그가 열린 지난달 지방의 한 경기장. A팀을 상대한 B팀은 이날 경기 내내 수비만 했다. 가끔 공의 소유권이 넘어오면 무조건 최전방에 있던 선수에게 롱패스로 전달했다. 전방에 있던 선수가 빠른 스피드로 역습을 펼치는 전략이었다.

결과적으로 B팀이 이겼다. 그 하나의 전략이 먹혀들었다. 골대를 맞는 등 실점 위기를 수차례 넘긴 뒤 단 한 번의 역습 기회를 골로 연결했다. 수비를 강화한 뒤 역습으로 승부를 보는 전술이 성공한 셈이다.

이날 승리로 B팀은 승점 3점을 얻었다. 그러나 이 경기는 이제 겨우 초등학생 선수들이 펼치는 경기였을 뿐이었다. 승점 3점의 가치보다는 경기를 통한 경험과 배움이 더 중요한 경기였다. 그러나 정작 승리한 선수들에게는 어떠한 의미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억울한 패배를 당한 A팀 선수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경험이자 배움이 됐을 것이다.

경기 후 경기를 관전하던 한 학부모에게 의견을 물었다. 먼저 경기를 치른 팀의 학부모였다. 그는 씁쓸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저렇게 하면 애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지금 저 나이대의 애들이 이렇게 이긴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말입니다. 일단 이기고 봐야 하는 것이 이 세계이긴 하지만 참 아쉬움이 남죠. 어쨌든 문제가 참 많아요.”

축구선수가 축구과외를 받아야 하는 현실

이처럼 승리에만 목을 매다보니 자연히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어린 선수들의 기본기 훈련이다. 제한된 훈련 시간 속에 승리만을 위한 전술과 전략 훈련에만 몰두하다보니, 기본기를 훈련시킬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아침이랑 저녁에 개인운동 시간이 있어요. 학교 수업 마치고 나면 팀 훈련을 2시간 정도 하고요. 팀 훈련 때는 주로 팀을 나눠서 연습경기나 전술훈련을 자주 해요. 세트피스 같은 것도 하고요. 개인 운동할 때는 그때그때 주제를 정해서 알아서 하죠.”

한 중학생 선수가 밝힌 하루 일과에 따르면 기본기를 배울 수 있는 훈련은 거의 없다. 그나마 오전과 저녁 개인운동 시간을 활용할 수 있지만, 지도자들이 함께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팀 훈련 시간에는 주로 특정한 상황을 설정한 뒤 그 훈련만을 반복한다. 이때는 감독이나 코치가 설명하지만, 움직임과 대처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도 기본기에 대한 훈련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아이들 훈련하는 것을 지켜볼 때가 많죠. 걱정이 많아요. 훈련 대부분이 연습경기나 전술훈련으로 채워지거든요. 특히 우리 아들은 다른 친구들보다 축구를 늦게 시작했어요. 아직 배울 것이 많아요. 그런데도 전술부터 배우고 무작정 경기부터 뛰고 있는 셈이에요.”

서울의 한 초등학교 축구부 훈련을 지켜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20여 분간 슈팅 훈련이 진행됐지만 무의미한 반복일 뿐이다. 선수들의 슈팅이 제각각으로 날아가는데도 코치들의 가르침은 거의 없었다. 그저 선수들이 슈팅을 할 수 있도록 패스를 건네주는 것이 전부다. 감독은 아예 그늘에 앉아 핸드폰에 열중이다. 슈팅 훈련이 끝나자 이날 훈련은 조끼를 입은 팀과 입지 않은 팀으로 나누어 자체 연습경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 위 사진의 팀과 선수는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축구선수가 축구과외를 받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평일에는 축구부에서 축구를 하고, 주말과 휴일에는 따로 기본기와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최근 부쩍 이러한 레슨 업체나 개인이 늘어난 것을 보면 그만큼의 수요가 있다는 의미다. 축구부에서 성장해야 하는 선수들이 축구과외를 받아야 하는 웃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또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보통 1시간~2시간 교육에 5만~8만원, 혹은 그 이상의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주말과 휴일에 참가해도 한 달이면 만만치 않은 액수다. 그래도 주변 선수들이 모두 하니 덩달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금전적인 부담도 적지 않죠. 그런데 회의감도 많이 듭니다. 아들이 축구부에 있는데, 왜 돈을 또 주고 축구를 다른 곳에서 배워야 되는지 한숨이 나올 때가 많아요.”

기본기를 소홀히 하는 우리나라의 문제점은 일부 지도자들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굳이 유럽이나 남미까지 갈 필요도 없다. 가까운 일본의 축구를 접해본 지도자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일본의 유소년 축구 문화가 부럽다던 한 초등학교 지도자 역시 쓴소리를 던졌다.

“예를 들면 우리 선수들은 패스를 할 때 공만 보고 감으로만 줍니다. 패스의 정확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반면 일본 아이들은 속도가 설령 떨어지더라도 한 번 보고 정확하게 패스를 해요. 물론 그래도 경기는 우리가 이길 수도 있어요. 하지만 경기 내용면에서는 완전히 밀리는 경우가 많죠. 이기고도 찝찝하죠. 의미가 없는겁니다.”

“개인기를 하면 감독님께 혼나요”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승리를 위한 전술 훈련에만 몰두하다보니 자연히 선수들의 플레이도 제한을 받는다. 뛰고 싶은 포지션이 있어도, 하고 싶은 플레이가 있어도 지도자가 만들어낸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지난 1편에서 지적했던 지도자들의 폭언과 욕설 역시 그 범위에서 어긋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팀에서는 수비수에요. 공격수를 하고 싶었는데 선생님(감독)이 그렇게 정해주셨어요. 자신있는 건 개인기에요. 인터넷에 올라오는 동영상 보면서 혼자 많이 연습했어요. 하지만 경기중에는 안써요. 저번에 했다가 선생님한테 혼났었거든요.”

축구가 좋아서 축구부에 가입했다던 한 초등학생 선수의 한 마디는 억압된 학원축구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축구화를 신은지 아직 1년도 채 안됐다는 그 선수는 벌써부터 정해진 틀 안에서만 축구를 하고 있다. 하고 싶은 플레이가 있음에도 혼이 날까 두려워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제한된 틀에 갇히는 순간, 선수들의 성장 가능성도 함께 사라진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숨겨진 재능을 찾거나 선수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지도자가 만든 틀에 맞는 플레이를 하다가 졸업하고, 새로운 학교에서는 또 다른 지도자의 틀 안에서 뛰어야 하는 사이클이 반복되는 셈이다.

이처럼 플레이나 역할 등 선수들을 제한하는 지도자들의 명분은 ‘팀을 위해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감독은 팀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있고, 선수 선발과 훈련을 총괄하는 권한을 가진다. 명확하고 합당한 기준이 있다는 전제 하에 이러한 권한들은 존중 받아야 한다.

다만 팀을 위한다는 명분 뒤에는 당장의 승리와 성과를 위한 또 다른 목적이 숨겨져 있음을 모두가 잘 안다. 거듭 강조하지만 넘어지고 실패하며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할 어린 선수들이다. 또 제한된 틀이 아닌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 올려야 할 나이다. 제한된 틀 안에서만 뛰어서 얻는 '승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 위 사진의 팀과 선수는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시스템의 문제… 교육부-축구협회 머리 맞대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껏 만난 대부분의 지도자들 대부분 기본기의 중요성에 공감했다는 점이다. 또 제한적인 틀이 선수의 창의성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있다.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어린 나이부터 성적만을 쫓아야 되는 문화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여전히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다. 지도자들 나름대로 가지고 있을 지도철학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고충이 있는 것이다. 역시나 결론은 하나다. 성적에 대한 압박이다. 다만 지난 1편에서 지적한 일부 지도자들의 폭언과 욕설과는 달리, 이 문제는 지도자의 인성보다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차이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기본기를 반복해서 훈련시키면 저희도 편해요. 선수들이 기본기만 확실히 갖추게 하고 중학교로 진학시키면 끝이거든요. 그러나 지금 시스템이 어디 그런가요. 당장 성적이 필요한데 어쩌겠습니까. 성적을 내지 않으면 당장 저희 일자리도, 축구부의 존재도 위험해지는데요.”

결국은 초등부나 중등부에서조차 성적을 내야 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이러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초등학생 선수들조차 평소에는 주말리그를 준비해야 하고, 방학중에는 전국대회에 참가하기 바쁘다. 훈련할 시간보다는 당장 팀끼리 경쟁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더구나 팀끼리 경쟁을 펼치게 만든 시스템은 등수로 곧 평가된다. 지도자들 입장에서는 자신과 자신의 팀의 평가에 대해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기본기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성적을 위한 고민을 놓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선수들의 기본기 교육을 소홀히하고, 선수들의 창의성을 제한하면서까지 성적을 쫓아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지도자들과 학부모들이 제시한 대안들도 방향은 결국 같다. 중요성을 알고 있고,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책임있는 단체들의 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가령 시행중인 리그와 대회의 최소화를 통한 훈련 시간의 보장, 내지는 성적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도 개선 등이다. 그러나 대안을 제시하면서 기대의 목소리를 던지는 사람은 없다. 오랜 기간 동안 제기되어 온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게 하루이틀의 문제는 아니에요.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교육부도, 축구협회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요. 잘못된 시스템임을 그들도 잘 알고 있을텐데, 비슷하게 유지만 하는 상황입니다. 교육부와 축구협회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될 문제에요. 아니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학원축구는 변하지 않을 거에요. 장담합니다.”

'기획특집-위기의 학원축구'는 한국축구의 풀뿌리인 초·중·고교의 빗나간 학원축구 문화를 짚어보고 개선점을 점검하기 위해 기획된 기사입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되는 기사에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기획특집-위기의 학원축구]
 ①폭언과 욕설에 시달리는 아이들
 ②성적지상주의에 피기도 전에 시드는 '동심 축구'
 ③무책임한 의무요원, 안전 문제 우려
 ④돈 때문에 축구를 그만두는 현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