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현장서 지도자들의 폭언·욕설 여전
성적지상주의 제도 변화만큼이나 지도자 의식 변화 절실

스포츠한국은 한국축구의 풀뿌리인 초·중·고교의 빗나간 학원축구 문화를 짚어보고 개선점을 점검하는 심층 취재 시리즈 '기획특집-위기의 학원축구'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스포츠한국미디어 김명석 기자] #1. 지난 8월 초순 초등학교 전국대회가 열린 지방의 한 축구경기장. 경기가 끝나자 한 지도자가 고압적인 제스쳐로 선수들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이다. 코치의 ‘한 소리’가 끝난 뒤 선수들은 우르르 관중석으로 올라가 각자의 부모님을 만난다. 부모님 앞에서는 영락없는 ‘아이’다.

#2. 중학교 전국대회가 열린 또 다른 경기장에서는 경기 내내 지도자들의 쓴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지도자는 선수들을 향해 욕설과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관중석에는 선수들의 부모님들이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 그 지도자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지친 선수들을 세워놓고 한참 동안 폭언이 이어졌다.

학원축구 현장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린 선수들을 향한 일부 지도자들의 욕설과 폭언도 여전했다. 지도자의 볼썽사나운 행태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부모도, 경기 관계자도 애써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있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전국 초중고리그(주말리그)를 진행하며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경기장 내 폭언 및 욕설 금지’다. 직·간접적으로 폭언 및 욕설에 노출되어 있는 어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캠페인은 폭언 및 욕설이 학원 축구계에 만연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수년째 고쳐지지 않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칭찬보다 작은 한숨 소리가 더 잘 들려요”

경기 중 지도자들에게 질책을 받은 아이들, 경기에서 패한 뒤 지도자 미팅을 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똑같다. 마치 큰 죄를 지은 듯한 표정이 가득하다.

물론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다. 누군가를 향한 죄송한 마음이 더 크다. 특히 경기중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불호령에 열중쉬어를 한 채 감독의 질책을 들어야 하는 선수들을 볼 때면 과연 누구를 위한 축구인지가 궁금할 정도다.

“경기에 뛰다보면 모든 소리가 다 들려요. 잘했다는 칭찬부터, 욕설이나 작은 한숨까지요. 신기한 건 칭찬보다는 한숨이 더 잘 들려요. “어휴~”하는 한숨 같은 것들이요. 부모님이 보고 계실 때면 더더욱 잘 들리죠. 그만큼 힘들고요.”

경기 중 지도자로부터 폭언을 들어본 경험이 있다는 한 중학생 선수는 초등학생 때부터 지도자의 폭언과 욕설 속에 공을 차야 했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이니 어느 정도 면역이 됐을 만도 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에는 그래도 아직 어린 나이다. 욕설을 들으면 여전히 힘겹다.

중학교 1학년인 또 다른 선수는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축구가 너무나 좋아서 시작한 축구지만 이제는 그 꿈을 놓으려는 고민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지도자로부터 받는 거센 압박이다.

“초등학교 때는 많이 무서웠어요. 울 때도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 선생님(감독님)은 초등학교 때보다 더 무서워요. 다른 어떤 학교는 맞는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래서 차라리 관두고 싶을 때가 많아요.”

선수들이 쓴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경기나 훈련 도중 나오는 실수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직 배우는 단계인 어린 선수들에게 실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시 가르치고 반복하는 것이 맞는 나이다. 그러나 선수들은 가르침이 아닌 욕설을 먼저 들어야 하는 것이 쓰디쓴 현실이다.


[ 사진 속 팀과 인물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대한축구협회 ]

지도자의 폭언과 욕설에 눈과 귀를 닫은 어른들

일부 감독들의 비틀어진 선수 지도 방식에 누구 하나 나서는 어른들은 없다. 학부모, 심판진 등 대부분이 눈과 귀를 닫고 있다. 지도자의 폭언과 욕설이 난무하던 한 경기장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이런 모습을 애써 웃어넘겼다.

“세상 그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욕을 듣고 있는데 좋겠습니까. 처음에는 당장이라도 뛰어 내려가 감독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죠. 그런데 다른 부모님들이 원래 그렇다고 참으라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면역이 된 것 같아요. 다 제 아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받아들입니다.”

자기 자식만큼은 싫은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일 터, 그러나 아이가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싫은 소리를 피하기는 어렵다. 그 학부모는 그래서 더 좋은 축구선수가 되는 과정 중 하나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쓰디쓴 합리화다.

물론 가끔씩 지도자들의 욕설에 항의를 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그러나 혹독한 대가가 이어진다. 자기 자식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간다. 학원축구에서 지도자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왜 학부모들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 속에서도 강력하게 대처할 수 없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떤 아버지가 ‘내 아들에게는 욕설을 하지 말아 달라’고 얘기를 했대요. 경기가 끝난 뒤 정중하게 따로 ‘부탁’을 한거죠. 그 아버지의 아이는 다음 경기부터 선발에서 제외됐어요. 지도자는 학부모의 부탁을 항명(抗命)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아요. 결국 그 학부모는 아이에게 축구를 관두게 했어요. 이 세계에서 지도자요? 학부모들에게는 ‘갑(甲)’이죠.”

또 다른 학부모 역시 반응은 비슷했다. 현실은 안타깝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왕이나 다름없는 지도자에게 밉보였다가는 자식의 미래가 가로막힐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학부모들은 차라리 훈련장이나 경기장에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자칫 잘못된 행동을 했다가 한 번 틀어지기 시작하면 제 아들의 꿈도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무엇보다 당장 훈련부터 경기출전, 상급학교 진학까지 감독이 제 아들의 운명을 쥐고 있으니까 무조건 잘 보여야 되죠. 부끄럽지만 자식을 위해서는 못본 척 해야죠.”

이 학부모는 학교 관계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습을 보이자 황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는 “학교 이름 같은 개인 정보가 나오면 안된다”며 거듭 익명 보장을 요구했다. 학부모들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한국축구 문화의 씁쓸한 단면이기도 했다.

심판진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정도가 지나칠 경우 주심이나 대기심이 “책임감 있게 행동해달라”며 주의를 주지만 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내 아이들에게 내가 욕하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반응하는 지도자들도 많다.

물론 경기 후 작성하는 보고서에 관련 내용을 적어 징계를 건의해볼 수는 있다. 그러나 심판진을 향한 폭언과 욕설이 아닌 이상 굳이 일을 크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반응이다. 한 팀의 문화로 받아들인 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 사진 속 팀과 인물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대한축구협회 ]

지도자들 “성적 위해서는 불가피”… "의식변화 필요" 자성의 목소리도

지도자들도 할 말은 있다. 누군들 자기 선수들에게 쓴 소리를 하고 싶겠냐고 반문한다. 다만 경기력과 성적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경기 중 폭언과 욕설에 대한 지도자들의 입장이다.

“저도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쓴소리 하기 싫어요. 알아서 잘 해준다면 누가 억지로 욕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이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아요. 당장 성적을 내려면 아이들이 한 발 더 뛰게 해야 됩니다. 성적이 안 나면 누가 손해겠어요? 저도 그렇지만 당장 아이들도 손해예요.”

현재 학원축구는 소속팀의 성적과 출전 기록이 상급학교로의 진학에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성적이 나지 않으면 좋은 학교로의 진학이 어려워진다. 지도자들이 폭언과 욕설을 합리화하는 가장 큰 이유다.

다른 지도자 역시 제도상의 문제를 꼬집었다. 굳이 성적을 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지도자들 역시도 굳이 욕설과 폭언이 난무하는 지도법을 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성적에 대한 무리한 압박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굳이 폭언과 욕설이 교육의 능사만은 아니라는 의식, 나아가 다른 방법으로도 선수들을 지도하는 방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지도자들이 있다. 지도자들의 의식 변화는 어쩌면 폭언과 욕설의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엄하신 감독님들은 폭언과 욕설, 나아가 폭력을 참아내며 축구를 배워 오신 분들이에요. 그러한 지도방법이 익숙하고, 몸에 배어있는 분들이죠. 그러나 시대가 많이 바뀌었잖아요. 특히 축구 선진국의 경우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우리처럼 화를 내는 지도자는 거의 없어요. 굳이 화를 내거나 욕을 하지 않아도 축구를 가르칠 방법은 존재한다는 얘기죠. 다른 것보다 지도자들의 의식 개선이 제일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획특집-위기의 학원축구]
 ①폭언과 욕설에 시달리는 아이들
 ②성적지상주의에 피기도 전에 시드는 '동심 축구'
 ③무책임한 의무요원, 안전 문제 우려
 ④돈 때문에 축구를 그만두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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