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골키퍼 제한을 만든 장본인 신의손(왼쪽)과 이범영(왼쪽 두번째), 김승규(왼쪽 세번째), 정성룡.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세계 축구계는 새로운 흐름 속에 빠져들었다. '스리백의 귀환', '티키타카의 몰락', '세계 축구의 상향평준화' 등 여러 가지 흐름이 발견됐지만 특히 눈에 띈 것은 '골키퍼의 중요성'이다.

이번 월드컵 최고 이변의 팀인 코스타리카는 그야말로 골키퍼 케일러 나바스덕에 8강까지 진출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세계 최고 화력의 브라질을 무실점으로 막은 멕시코의 기예르모 오초아, 월드컵 사상 한 경기 최다세이브(16개)를 기록하며 16강전 스타로 떠오른 미국의 팀 하워드까지 골키퍼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오죽하면 16강전 8경기 중 절반이 넘는 5경기에서 최우수선수로 골키퍼들이 뽑혔을까.

하지만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골키퍼 덕을 전혀 보지 못했다. 정성룡은 2경기에 출전해 5실점을 했고, 김승규 역시 벨기에전에 출전해 골을 허용하며 한국의 1무2패의 성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외신들 역시 한국의 골키퍼 문제를 약점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어쩌다 한국의 골키퍼 수준은 이렇게 된 것일까? 이 방법을 타계하기 위해선 최우선적으로 골키퍼 전문 코치 육성과 골키퍼 유망주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첫 번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좋은 골키퍼가 나오기 위해서 현재 K리그에 있는 외국인 골키퍼 진출 제한을 푸는 것이 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국내 골키퍼 육성을 위해 외국인 골키퍼 영입 금지

K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는 원년인 1983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골키퍼 신의손(러시아명 발레리 사리체프)이 압도적 기량으로 성남 일화와 안양 LG의 우승을 이끌자 각 구단은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하기 위한 붐이 일었다. 그러나 외국인 골키퍼의 수준 높은 기량은 역설적으로 `국내골키퍼 보호'라는 보수적인 여론에 시달리는 단초를 제공했다.

마침내 프로축구연맹은 1996년부터 단계적으로 외국인 골키퍼의 리그 출전 횟수를 축소해 나갔고, 1999년에 이르러 전면 금지시켰다. 골키퍼의 포지션 특성상 한 명밖에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다. 또한 한번 주전이 되면 좀처럼 후보로 밀려나지 않는다. 자연스레 비싸게 데려온 외국인 골키퍼가 오면 국내 골키퍼가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현실이었다.

그렇게 1999년 이후 외국인 골키퍼는 더 이상 K리그에서 볼 수 없었고 15년이 흐른 현재도 이 제도는 유효하다.

▶일정수준 이상으로 올라온 국내 골키퍼의 기량, 하지만…

분명 약 15년간 지속된 이 제도 덕에 확실한 보호를 받은 국내 골키퍼들의 전체적인 기량은 계속해서 주전으로 경기 감각을 쌓으며 향상됐다.

하지만 문제는 골키퍼의 기량이 일정한 수준에서 더 이상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환경이 만든 미필적 안일함이다. 외국인 골키퍼가 없다 보니 자연스레 내국인 골키퍼들은 외부 경쟁 없이 내부경쟁만으로 주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한번 주전이 되면 자연스레 자신 밑에 있는 내국인 골키퍼 보다만 잘 하면 계속해서 주전을 보장받는다. 구단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 주전 골키퍼들도 이 같은 구조를 잘 알기에 기량 향상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그저 더 많은 연봉을 구단에 요구하는 '갑'이 되곤 한다.

안일한 마음가짐은 외국 진출의 동기도 꺾는다. 외국의 힘든 환경에서 홀대를 받는 것보다 K리그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이 더 낫기 때문. 이 같은 이유로 유럽 빅리그에 진출하지 못한 유일한 포지션이 골키퍼다.

▶골키퍼도 시장논리에 맡겨야

대부분의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고 자기발전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이런 극단적 상황을 가져올 수 있는 제도의 모순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행여 국제무대에서 골키퍼의 활약이 부진하면 개인의 문제로 보기보다 '외부 경쟁이 없다 보니 안일해진 것'이라는 '골키퍼 무사안일주의'로 보는 외부시선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울산 현대의 조민국 감독 역시 최근 인터뷰에서 "난 오랫동안 K리그에 외국인 골키퍼 제도 부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수한 외국인 골키퍼가 오면 K리그 수준이 올라간다"며 "실력 있는 골키퍼를 뚫기 위해 공격수들의 슈팅 질부터 좋아진다. 또한, 함께 훈련하면서 국내 골키퍼들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며 외국인 골키퍼 영입금지 조항 철폐를 주장했다.

조 감독의 얘기처럼 일정 수준 이상 올라온 국내 골키퍼들에게 외국인 골키퍼들은 신선한 바람이 될 수 있다.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우는 골키퍼가 아닌 비바람을 견딘 잡초가 돼야 하는 것이 바로 국내골키퍼이다.

외국인 골키퍼 영입금지 조항이 시행된 지 어언 15년이 흘렀다. 이 제도와 함께 국내 골키퍼들은 성장해왔고 또한 퇴행되고 있다. '골키퍼의 기량 상승과 중요성 증가'라는 세계 축구의 흐름과 이미 외국인선수를 4명(외국인선수 3명+아시아선수 1명)이나 영입할 수 있는 국내무대에서 골키퍼만 영입할 수 없다는 시대착오적인 제도는 이제 폐지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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