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아공월드컵 출정식 경기 한국에 완패 후 16강 진출...홍명보호 실망 아닌 격려 필요

2010 남아공 월드컵 일본 대표팀의 출정식 경기에서 골을 넣은 직후의 박지성. 스포츠코리아 제공
SBS 예능 프로그램 '자기야 - 백년손님'에는 '그랬구나'라는 코너가 있다. 상대방에게 '그랬구나'라고 하며 내 입장은 잠시 제쳐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생각하는 이 코너는 MBC '무한도전'에서 패러디를 하며 더욱 유명해졌다.

상대방의 몰랐던 감정, 서운했던 감정을 뒤늦게 알고 '그랬구나'라고 이해했던 모습에서 웃음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딱 한국대표팀이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아~ 그랬구나. 우리에게 지고 출정식을 맞이했던 일본 대표팀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잠시 시간을 꼭 4년 전으로 돌려보자.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에 나서기 전 한국대표팀은 특별한 초청을 받게 된다. `영원한 라이벌' 일본이 자신들의 출정식에 한국을 초대한 것. 한국을 홈에서 이겨 남아공으로 떠나는 대표단에 힘을 불어넣겠다는 게 일본의 계산이었다.

한국은 일본이 원하는 대로 출정식 상대가 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넜고, 2010년 5월 24일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양팀은 전력을 풀가동해 맞서게 된다.

MBC '무한도전'의 무한상사의 한 모습. MBC
일본 관중들의 압도적 응원 속에 펼쳐진 사이타마 스타디움은 전반 6분 만에 박지성의 슈팅 한방에 침묵에 휩싸이게 된다. 박지성이 단독 드리블 돌파 후 오른발 땅볼 슛으로 선취골을 기록한 것. 골을 넣은 박지성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트랙을 돌며 전설이 된 '산책 세레모니'를 펼쳤고 이날 한국은 박주영의 PK골을 포함해 2-0으로 승리하며 일본의 출정식에 찬물을 제대로 끼얹게 된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마음을 헤아릴 분위기가 아니었다. 일본 적지의 심장부에서 '캡틴' 박지성이 무표정하게 경기장을 돌며 '산책 세레모니'를 하는 그 짜릿함은 물론 경기력, 스코어 모든 부분에서 한국은 최초 월드컵 원정 16강의 단꿈을 꾸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대표팀은 경기 직후 열린 출정식 행사에 제대로 인사도 못한 채 황급히 짐을 챙겨 일본을 빠져나가야했다. 일본 내 비난여론은 들끓었고 경기 후 기자회견에선 당시 지휘봉을 잡았던 오케다 다케시 감독을 향해 "할복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 정도로 일본 국민들은 자국대표팀에 분노했고 아쉬워했으며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을 접었다.

물론 당시 일본의 분위기만큼은 아니지만 28일 튀니지와의 출정식 경기에서 0-1로 참패한 한국대표팀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주장 구자철도 "내부적으로 생각할 때도 100%가 아닌 건 사실이다. 체력적으로 더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크다"며 대표팀의 문제를 시인했다. 홍명보 감독 역시 "오늘은 100% 전력이 아니었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다"며 패배를 받아들였다. 부주장 이청용, 미드필더 기성용, 공격수 손흥민 등도 한결같이 "국민들께 죄송하다. 더욱 나은 모습을 보이겠다"며 졸전을 지켜본 국민들에게 미안함을 나타냈다.

경기 직후 가진 출정식 행사를 가졌지만 분명 김이 빠진 모양새였다. 관중들, 선수단 서로서로가 민망할 수밖에 없는 출정식이었다. 홍 감독 역시 마이크를 잡고 경기장에 모인 5만7,000여 관중들에게 "팬 여러분께 죄송하다. 남은 경기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며 경기 소감을 밝혔지만 몇몇 팬들은 이 소감을 듣기도 전에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28일 튀니지전 패배 후 낙담하고 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자연스럽게 2010년 일본 대표팀의 모습이 오버랩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그랬던 일본 대표팀이 정작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는 8강까지도 넘봤다는 점이다. 일본은 한국전 패배 후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월드컵을 임했고 조별예선에서 네덜란드-카메룬-덴마크(E조)라는 강호들과 맞붙었음에도 2승1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도리어 한국보다 좋은 조별예선 성적(한국 1승1무1패)으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 만난 파라과이와는 0-0 접전 끝에 승부차기까지 가 아쉽게 패했을 정도로 당시 최악이었던 국민 여론을 단번에 결과로 반등시켰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대표팀이 일본의 선례를 따를 차례다. 월드컵이 끝났을 때는 새로운 버전의 '그랬구나'가 나오길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그랬구나. 출정식 때 괴로워했지만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국민들의 마음을 달랬던 일본팀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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