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중에 알려주고 싶었다."

'라이언킹' 이동국(34·전북)이 일본 축구의 심장부에서 3년 전 박지성(퀸스파크레인저스)의 골 뒤풀이를 그대로 재연하며 한국 축구의 힘을 과시했다.

이동국은 3일 일본 사이타마의 사이타마 2002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F조 3차전 우라와 레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1골·2도움으로 이날 전북의 모든 득점에 관여하며 3-1 짜릿한 역전승의 주인공이 됐다.

0-1로 뒤지던 후반 45분 윌킨슨 대신 그라운드를 밟은 이동국은 전반 6분 이승기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한 뒤 후반 19분 헤딩으로 결승골을 넣었고 후반 25분에는 에닝요의 기습 중거리포를 도왔다.

이동국의 발에서 시작되고 완성된 이날 승리의 하이라이트는 그가 직접 뽑아낸 결승골과 그 이후 이어진 뒤풀이 장면이었다.

1-1로 팽팽히 맞선 후반 19분 에닝요가 올린 프리킥에 이동국이 몸을 날려 헤딩으로 역전 결승골을 터뜨렸다.

프리킥에 앞서 맹렬하게 깃발을 흔들며 야유를 퍼붓던 우라와 팬들은 일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골을 확인한 이동국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골대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망연자실한 우라와 팬들을 돌아보며 역전골의 기쁨을 누렸다.

2010년 5월 박지성이 일본과의 친선 평가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일본 서포터들 앞을 여유 있게 달려갔던 일명 '산책 세리머니'를 그대로 재연한 것이다.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과 원정 친선전에 나선 한국은 박지성의 활약에 힘입어 2-0 완승을 거두고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반면 한국을 제물로 월드컵 출정식을 자축하려던 일본은 한순간에 기세가 꺾였다.

한·일 양국 축구팬이라면 각기 다른 의미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당시 박지성은 "경기 시작 전 한국 선수가 소개될 때 야유를 퍼붓던 울트라 닛폰 응원단에 대답을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때 그 장면'을 3년 만에 다시 펼쳐보인 이동국도 마찬가지 마음이었다.

2만2천여명의 우라와 홈 관중의 일방적 응원 속에서도 '원맨쇼'로 존재감을 과시한 이동국은 "박지성이 3년 전에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했던 세리머니가 생각났다"며 "나를 지켜보는 일본 관중에 (내 존재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골을 넣고 난 뒤 경기장 안이 너무 갑자기 조용해져서 뭔가 잘못 된 줄 알았다"고 돌아봤다.

한편 이날 일부 우라와 팬들이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를 들고 응원을 펼치고 전북 원정 응원단 70여명을 향해 물을 뿌리고 욕설을 하는 등의 매너없는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다행히 보안요원이 배치돼 있어 물리적 충돌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전북은 해당 장면의 사진을 확보해 우라와에 전달하는 등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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