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부터 더 강한 상대 '전술 재처방' 시급

베어벡호가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축구대표팀의 전력은 여전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아시안컵축구 8강에 오르긴 했지만 지금껏 보여준 전력으로는 더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 수 없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베어벡호는 1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안컵축구 조별리그 D조 최종전에서 김정우의 결승골로 인도네시아를 간신히 이겼다.

한 골 차는 도저히 성이 차지 않는 스코어다. 같은 조 사우디 아라비아가 바레인을 4-0으로 대파했길래 망정이지 반대로 바레인이 사우디를 2-1 이상의 다득점 스코어로 이겼다면 한국은 바레인, 사우디에 밀려 이기고도 탈락할 뻔 했다.

여러 모로 마지막 천운이 따라준 듯 베어벡호의 8강 진출을 도왔지만 `자력'으로 부진의 터널을 탈출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베어벡호는 인도네시아를 시종 거세게 몰아붙였지만 고질적인 결정력 난조는 여전했고, 상대 역습에 허둥대는 수비라인의 불안감도 씻어내지 못했다.

인도네시아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43위로 한국(51위)보다 92계단이나 낮은 약체.

역대 전적에서도 32승4무2패로 압도적이고 1975년 이후 32년 간 단 한번도 지지않고 19연승을 이어온 상대다.

그러나 베어벡호 태극전사들은 그 어느 상대보다도 인도네시아를 힘겨워했다.

글로라 붕카르노 경기장을 메운 8만 관중의 성원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실망스러운 장면이 한 둘이 아니었다.

축구 팬들이 애타게 가슴을 졸여야 했던 순간은 전.후반 세 차례나 나왔다.

전반 28분 엘리에 아이보이에게 역습을 허용할 때 포백 수비진은 제대로 대인방어를 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쫓아다녔다.

상대 공격수가 조금만 더 좋은 기술과 스피드, 슈팅력을 겸비했다면 그대로 실점할 수 있는 위기였다.

1-0 리드를 잡은 전반 인저리타임 엘리에의 오른쪽 측면 돌파에도 쩔쩔 맸다.

후반 종료 2분 전 역습 상황에서도 협력 수비가 이뤄지지 않아 동점골을 내주는게 아니냐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공격력은 더 큰 문제를 드러냈다.

베어벡 감독은 1, 2차전에서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최성국-조재진-이천수 조합을썼다.

김정우가 결승골을 뽑아낼 때 이천수가 수비수 세 명을 제치는 현란한 드리블로공간을 열어주며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정확도가 떨어지는 크로스에다 단조로운 고공 플레이는 전체 선수 중 최장신이 183㎝에 불과한 단신 인도네시아 수비진도 허물어 뜨리지 못했다.

후반 이천수가 골키퍼와 1대1로 맞선 기회에서 크로스바를 넘겨버린 것이나 김정우, 조재진이 연속 골 찬스에서 골키퍼에 막힌 것은 결정력 부족으로만 탓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도 노출했다.

베어벡 감독은 지옥 문턱에서 탈출하긴 했지만 8강까지 앞으로 남은 사흘 간 전술적인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전반적으로 공수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8강 이후 토너먼트부터는 어떤 팀을 만나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고전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악몽을 경험했던 자신의 전략, 전술을 고집할 게 아니라 코칭스태프와 기술위원회 분석관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빠른 시간 안에 `부분적인 수술'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악몽의 자카르타'를 떠나 22일 8강 결전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베어벡호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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