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공불락'의 아성에 도전하는 신예

2002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한국 축구에 골키퍼는 이운재(33.수원 삼성) 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김병지(36.포항 스틸러스)와 최은성(35.대전 시티즌)을 벤치에 눌러 앉히고 한국이 치른 7경기 전 경기를 교체없이 소화했던 이운재는 그 이후에도 다른 '골리'들의 도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국 국가대표팀이 한.일 월드컵 이후 치른 공식 A매치는 모두 50경기(2005년 8월 14일 남북통일축구 제외)다.

이 중 이운재가 선발 출전한 경기는 무려 90%에 해당하는 45경기이며, 이 중 41경기를 풀타임 뛰었다.

김영광(23.전남 드래곤즈)은 2004년 6월 터키전(2-1 승), 지난해 1월 파라과이전(1-1 무)과 3월 부르키나파소전(1-0 승) 등 세 차례 평가전에서 풀타임을 뛰는 등 총 5경기에 출전했을 뿐이다.

김용대(27.부산 아이파크)는 2003년 9월 네팔과 아시안컵 2차 예선(16-0 승)에서만 90분을 소화했고, 그라운드를 밟은 것을 다 합해야 고작 4경기에 불과하다.

1998 프랑스월드컵 본선 3경기에 모두 뛰었던 김병지는 한일월드컵 이후 첫 A매치였던 2002년 11월 브라질과 친선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이운재 대신 후반 40분 교체 투입됐던 게 태극마크를 달고 뛴 경기의 마지막이었다.

2004 중국 아시안컵과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및 최종예선, 2003년 및 2005년 동아시아축구연맹(EAFF)선수권대회 등 굵직굵직한 경기에서 골문 앞에는 항상 이운재가 서 있었다.

거스 히딩크, 움베르투 코엘류, 요하네스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등 4명의 외국인 감독을 거치면서도 이운재는 흔들림없이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심지어 "대표팀의 정기동 골키퍼 코치가 이운재의 고등학교 선배이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시기 어린 시선들도 생기며 "이운재에게도 이제 자극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잇따르고 있다.

오는 15일부터 시작되는 대표팀의 해외전지훈련에는 이운재를 비롯한 김영광과 조준호(33.부천 SK) 등 3명의 골키퍼가 따라 나선다.

독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명 중 골키퍼가 3명인 점을 감안하면 '아드보카트호' 승선 경쟁은 어느 정도 매듭지어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현재로선 기량과 경험을 두루 갖추고 한국 최고 골키퍼로 군림해온 이운재가 독일에서도 골문을 지킬 가능성이 크다.

결국 김영광과 조준호가 이운재의 아성에 도전하는 형국이다.

청소년-올림픽대표를 거치며 '리틀 칸'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철벽 수비를 자랑했던 김영광은 김용대를 제치고 일약 대표팀의 '넘버2'로 올라섰다.

프로 입단 4년 만에 올해 프로축구 자유계약선수(FA) 중 최대어로 꼽힐 만큼 실력도 일취월장했으며 이운재를 넘어 설 '영순위 후보'로 꼽히고 있다.

늘 "이운재의 침착함과 김병지의 순발력을 닮고 싶다"고 말해왔던 김영광으로서는 이번 전지훈련 기간 주어질 몇 차례 기회에서 이운재에게 고정된 아드보카트 감독의 눈길을 잡아 끌어야 한다.

서른셋의 나이에 태극마크를 달게 된 조준호는 대표팀 골키퍼 경쟁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조준호는 실업팀을 거쳐 1999년 포항에서 뒤늦게 프로 생활을 시작했지만 김병지에 밀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다 지난해 부천으로 둥지를 옮긴 뒤 K리그 정상급 골키퍼로 거듭났다. 수비진 리드와 위기관리 능력 면에선 이운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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