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컬 팜, 식량난·농경지 부족 해소할 신개념의 실내 농경지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고층빌딩 속에 농경지를 개간하고 생선도 기를 수 있는 ‘버티컬 팜(vertical farm)’이 미래의 극심한 식량난에서 인류를 구원해줄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버티컬 팜은 도심 한 가운데에 수십 층 규모의 고층건물을 지은 후 각 층에서 수경재배 방식으로 다양한 농작물과 해산물, 축산물을 길러내는 새로운 개념의 실내 농경지다.

[2050년 세계 인구 92억명,,,식량난 예고]

2007년 현재 전 세계 인구는 약 67억명. 하지만 지금과 같은 증가세가 계속 유지된다면 오는 2050년에 이르러 전 세계 인구는 최대 92억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인구의 폭발에 맞서 인류가 준비해야할 첫 번째 과제는 바로 먹거리 문제의 해결이다.

인류가 먹을 식량을 추가로 생산해 내지 못한다면 지구촌은 극심한 식량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늘어난 25억명의 식량을 추가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존 농경지에 더해 브라질의 국토 면적보다도 큰 약 100만 헥타르(ha)의 땅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 농경지로 활용할 수 있는 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실제 인류는 이미 지구가 보유한 육지의 41%, 농작물을 키울 수 있는 토지의 80%에 해당하는 8억 헥타르 이상의 지역을 농경지로 사용 중에 있으며, 이중 15%는 반복된 경작으로 지력(地力)이 떨어져 농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현실적으로 추가적인 100만 헥타르는 커녕 기존 농경 면적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에 붙이는 실정이다.

결국 앞으로 수십 년 내에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오는 2050년경 최소 11억명의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기아의 원인이 곡식의 부족에 있기 때문에 이 신(新) 기아민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굶주림을 벗어나기 어렵다.

[21세기 첨단 농경지 ‘버티컬 팜’]

버티컬 팜(vertical farm, 수직농경)은 바로 이 같은 식량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컬럼비아대학 환경과학과 교수인 딕슨 데스포미어(Dickson Despommier) 박사가 제안한 21세기형 첨단 농경시스템이다.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버티컬 팜은 도심 한가운데에 수십 층 규모의 고층건물을 지은 후 각 층에서 수경재배(물과 수용성 영양분의 배양액 속에서 식물을 키우는 경작법) 방식으로 다양한 농작물을 경작하는 새로운 개념의 실내 농경지를 말한다.

전통 농경법이 1,000평의 땅에서 1,000평의 농지 밖에 얻을 수 없었다면 버티컬 팜은 건물의 층수를 높이는 방법으로 동일한 1,000평의 면적에서 최대 4만~5만평의 농경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 아이디어의 핵심.

땅을 건물 속으로 집어넣는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한정된 공간에서 토지의 이용효율을 극대화한 것이다.

외부와 격리된 실내 농경지인 만큼 온도, 습도, 빛, 농업용수 등 모든 조건을 인위적으로 완벽히 통제 가능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의 하나다.

이는 곧 식물 성장에 필요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 계절은 물론 낮과 밤에 관계없이 1년 내내 곡식을 생산해 낼 수 있으며 산출량 또한 실외 농지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높일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 데스포미어 박사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분석한 결과 농작물의 종류에 따라 버티컬 팜에서의 수확량이 동일면적의 야외농경지 보다 최대 10~12배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4,000평의 공간에 30층짜리 빌딩을 건설해 버티컬 팜으로 조성했다고 가정할 경우 최대 140여만평의 야외농지에서 거둬들인 양과 동일한 수확을 올릴 수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데스포미어 박사는 “1인당 하루 2,000칼로리를 기준으로 할 때 버티컬 팜 8.4평에서 도시민 1명에게 필요한 음식을 평생 공급할 수 있다”며 “58층 빌딩 하나를 지으면 약 3만5,000명분의 식량 생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물·전기·난방 등 모든 자원 자체 충당]

버티컬 팜은 컴퓨터로 제어되는 완벽한 환경과 수경재배, 365일 쉼 없는 영농으로 대변되는 ‘마천루 농장’이다.

하지만 버티컬 팜의 진정한 가치는 이처럼 통념을 깬 창조적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 속에 구현된 첨단과학기술에 의해 더욱 빛을 발한다.

그중에서도 증발산(蒸發散) 회수시스템(ERS), 태양열 발전시스템, 하수·중수 정제시스템, 메탄 발전시스템 등은 버티컬 팜을 단순한 빌딩형 농장에서 미래 농업혁명의 주역으로 끌어 올릴 4대 핵심 기술로 꼽힌다.

이 기술들에 기반해 버티컬 팜은 어떠한 외부적 지원 없이도 전기, 난방열, 식수, 농업용수 등 빌딩 운용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와 자원을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자가운용 빌딩으로 거듭날 수 있다.

먼저 ERS는 식물의 잎이나 수경재배용 물에서 증발된 수증기를 포집하는 장치로서 각 층의 천정에 설치된다.

여기서 모아진 수증기는 정제기를 거쳐 사람이 음용 가능한 수준으로 전환된다. 데스포미어 박사는 50층 이상의 버티컬 팜 한 곳에서 연간 2억2,000만 리터(하루평균 62만 리터) 정도의 물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RS가 빌딩 내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을 공급한다면 수경재배에 필요한 농업용수는 하수·중수 정제시스템이 책임진다.

대도시의 하수처리장에서는 매일 수천만 리터의 하수 및 중수가 강으로 방출되는데, 이를 제공받아 여과·살균·생물학적 정화 등의 추가공정을 거쳐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태양열 발전시스템과 메탄 발전시스템은 버티컬 팜에서 쓰이는 모든 전기를 충당한다.

이중 냉방용 전력수요는 태양열 발전의 몫이며, 음식물 쓰레기에서 발생한 메탄가스를 태워 전기를 만들어내는 메탄 발전이 나머지 필요전력을 공급한다.

이 두 가지 방법에 의해 충분한 전력생산이 어렵다면 옥상에 별도의 풍력발전 설비를 추가 장착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기술들 모두가 머나먼 미래에나 구현될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설치·운용할 수 있는 개발완료 단계의 기술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현재 캐나다의 제1 도시인 토론토에서는 ‘스카이 팜(Sky Farm)’이라는 이름으로 지하 6층, 지상 58층의 세계최초 버티컬 팜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과일, 야채, 해산물, 축산물도 가능]

데스포미어 박사가 이 같은 버티컬 팜의 개념을 처음 고안해낸 것은 최근이지만 그는 인류가 이미 15년쯤 전부터 버티컬 팜의 근본 취지와 유사한 초기 단계의 실내 농경시스템을 광범위하게 이용해오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수많은 농산물과 계절 과일들을 사시사철 식탁 위로 공수해주고 있는 비닐하우스(온실)가 그것이다.

이 점에 있어 주목할 만한 부분은 우리가 농작물들을 넘어 송어, 장어, 조개, 새우, 가재 등 다수의 해양 수산물들도 실내공간에서 양식하고 있다는 것.

즉 버티컬 팜이 현실화된다면 인근지역 주민들의 식습관에 따라 곡식은 물론 과일, 야채, 해산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소, 돼지 등과 같은 가축들까지 길러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지하층은 가축, 저층은 수산물, 고층은 농산물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데스포미어 박사는 왜 부지 확보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농촌이나 도시외곽 지역을 놓아두고 굳이 도시 한가운데에 버티컬 팜을 건설하려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명확하다. 도심이 소비자와 가장 인접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의 확대와 주민의 이주로 오는 2030년에는 전 인구의 50%, 2050년에는 80%가 도시 거주자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며 “버티컬 팜은 소비지와 생산지가 동일 장소에 있어 대폭적인 운송비 절감이 가능하고 생산단가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기존의 빌딩을 리모델링해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 기존 농지를 녹화(greening)해 자연환경을 복원하거나 최소한 지력을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휴식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 등도 도시 내에 버티컬 팜을 세워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다.

[사막에서 쌀과 생선을 기른다]

이와 관련, 데스포미어 박사는 “버티컬 팜은 농경지 부족을 해소하고 식량난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 이외에도 인류에게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주는 이득이 무수히 많다”고 강조한다.

우선 토양에 의존하지 않는 수경재배를 모태로 하고 있기에 세월이 흘러도 지력의 하락에 따른 수확량 감소 없이 안정적·반영구적인 농작물 생산을 가능케 해준다는 것이 첫 번째 이점.

신규 빌딩의 건설 또는 기존 빌딩의 리모델링을 위해 적지 않은 초기 투자비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인류가 얻게 될 혜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외부환경과 격리된 실내 농경지이기 때문에 환경적·입지적 이유로 농사용 토지가 부족한 국가, 농경 자체가 불가능한 국가들에게까지 식량 자급자족의 꿈을 실현해 줄 수 있다는 사실도 핵심 메리트의 하나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국가들도 사막 위에 마천루를 세워 쌀과 보리, 생선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버티컬 팜은 날씨는 물론 홍수, 태풍, 가뭄, 해일 등 자연재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 흉작을 피할 수 있고 조류 등 동물들의 침입이나 이들에 의한 바이러스(병해충) 전이의 우려도 전혀 없다.

특히 인간의 필요에 따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유전자 조작 식물들이 자연으로 유입돼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 또한 막을 수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봐도 버티컬 팜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100% 유기농 식품만을 생산, 저렴한 가격에 신속히 공급하므로 건강 및 식생활 개선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단지 도심지역에 수천 평 이상의 부지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 만은 않을 것이며, 초기 투자비용이 개인이나 기업이 부담하기에는 다소 버거운 수준이라는 점은 향후 버티컬 팜이 넘어야할 숙제다.

데스포미어 박사는 이에 대해 “버티컬 팜의 도입에는 국가적·정책적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것이 사실”이라며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달이나 화성에 우주 식민지를 개척하는 것 보다는 버티컬 팜이 훨씬 쉽고 저렴한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