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본부, 계열사 부당지원 내부공문 폐기 지시… "대응 논리 개발" 지침까지 내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앞두고 관련 서류 조작과 폐기 등을 통해 위법사실의 은폐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재경위 소속 박영선 의원은 삼성 구조본이 1999년 공정위 조사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그룹의 계열사 부당지원과 관련된 내부 공문을 폐기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담긴 내부문서를 지난달 31일 공개했다. 이들 부당지원은 구조본이 직접 지시했으며, 그 과정에서 공정위가 문제를 지적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안에 대해 대응 논리를 개발하라는 지침까지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박 의원이 입수한 '공정거래 조사관련 문제점 및 대응방안'이라는 삼성그룹 내부 문서에 따르면 지난 99년 삼성 구조본은 공정위의 5대 기업 집단조사를 앞두고 "구조본 공문 및 지원결정 보고서를 폐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문건에는 삼성전자가 97년부터 99년 3월까지 구조조정본부(1,226억원)와 중앙일보(323억원), 에버랜드(221억원) 등에 모두 1,986억원의 돈을 부당 지원한 내역과 함께, 이런 내용이 공정위 조사과정에서 문제가 될 것에 대비해 관련 자료를 폐기하거나 고치도록 해당 계열사 등에 지시한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이건희 회장의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에버랜드와 삼성SDS(131억원)에 대한 삼성전자의 부당지원 규모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삼성 구조본은 삼성그룹 국내 광고비의 65%, 국외 광고비의 91%를 삼성전자가 분담한 내역이 담긴 공문 일체를 파기하도록 지시하고, 삼성전자가 단독으로 그때 그때 광고를 집행한 것으로 '대응'하도록 책임을 떠넘겼다.

구조본은 또 삼성전자가 삼성SDS가 운영하는 유니텔에 대해 131억원의 광고를 지원한 자료를 수정토록 지시했다. 경쟁사인 천리안과 하이텔 등에는 광고 실적이 전혀 없었던 반면 유니텔에는 단가가 높은 광고가 대량 집행된 사실이 문제가 되리라고 예측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에버랜드 시설을 이용한 광고를 게재하면서 5년치를 일시불로 지불한 데 대해서는 "장시간 안정되게 광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응하라"고 공정위 조사과정에서 불거질 문제에 대한 대응 논리까지 제공했다.

이 문건에 담긴 계열사 부당지원 금액 1,986억원은 당시 공정위가 적발한 삼성그룹의 부당지원 거래규모 3,997억원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박영선 의원은 "구조본이 이렇게 경영에 직접 개입하고 부실계열사 지원을 계열사에 부담시키는 행위는 불법"이라며 "구조본을 규율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이중대표소송제의 적용대상을 지분율 25% 이상의 모자 기업으로 확대하고 △이사에 해당하는 업무집행지시자에 구조본을 포함해 법적책임을 묻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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