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아이를 망친다] 초·중·고생 10명중 6명이 사용…인터넷 보다 중독률 더 심각

# 지난해 12월 중순 서울 A여고 2학년 교실. 화상 TV로 방학식이 열리고 있는데, 교실 한 편에서 학생들이 쑥덕거렸다.

교장 선생님이 “위 학생은 애교심이 뛰어나고…’라고 상장 내용을 읽어나가자, 한 학생이 “애교를 잘 떠는데 무슨 상이냐?”고 물었다. “그 애교가 아닌 것 같은데”라는 반응이 나왔지만, 제대로 뜻을 말하는 학생은 없었다.

→ 담임 이모 교사 “믿기지 않겠지만 휴대폰 문자 탓에 애들 어휘력이 실소를 자아낼 정도로 형편없다. 두개 이상의 문장이 접속사나 복문(複文)으로 이어지면 영 이해를 하지 못한다. 글쓰기 능력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초등학생 때부터 문자메시지에 익숙하다 보니 40자 이내의 단문 쓰기에 길들여져 긴 호흡의 논리적인 글 쓰기는 힘이 부친다.”

# 지난해 10월 서울 S중학교 2학년 교실. 한 학생의 손놀림이 수상해 슬며시 가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책상서랍 안에서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책상 바닥에 작은 구멍이 하나 뚫려있는 게 아닌가. 선생님의 감시를 피해 문자를 보내려고 칼로 뚫은 구멍이었다.

→ 담임 박모 교사 “요즘 아이들은 말과 스킨십 대신, 휴대폰 문자로 소통한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문자를 ‘날린다’. 압수에 대비해 아예 휴대폰을 2개씩 갖고 다니는 학생도 드물지 않다. 맘만 먹으면 하루 대여섯 대는 쉽게 압수할 수 있다. 휴대폰과 씨름 하느라 수업 흐름이 중간중간 끊기다 보니 아이들의 집중력이 갈수록 떨어진다.”

휴대폰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동영상 음란물과 게임, TV 등이 결합된 유해 콘텐츠의 백화점으로 변질돼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떨어뜨리고 성(性)비행을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는 컴퓨터나 TV에 비해 중독성도 훨씬 심각하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경제논리에만 매몰돼 휴대폰의 노예가 돼가는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휴대폰을 보유한 10대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은 약 478만 명. 전국의 초등학생(402만 명)과 중ㆍ고교생이 총 779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어린이와 청소년 10명 중 6명 이상이 휴대폰을 사용하는 셈이다.

사용 연령은 갈수록 낮아져 SK텔레콤 전체 가입자 중 초등학생 비율이 2004년 3월 1.1%(20만 명)에서 지난해 10월 2.1%(41만 명)로 1년6개월 새 2배나 늘어났다. KTF 역시 2001년 말 전체의 1.3%(12만 명)였던 초등학생 비중이 지난해 말 3.7%(45만 명)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현재 3개 이동통신사의 초등학생 가입자 수는 약 118만 명이지만 부모 이름으로 가입한 경우가 40%나 돼 실제 초등학생 이용자는 2.7명당 1명 꼴인 15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휴대폰이 빠른 속도로 보급되면서 10대 청소년의 휴대폰 중독률은 지난해 사상 처음 인터넷 중독률을 2%포인트 차이로 앞질렀다(한국정보문화진흥원 2005년 9월 보고서).

또 중ㆍ고생 10명 중 1명 꼴로 휴대폰을 음란물 접속, 심야 미팅, 원조교제 등에 활용하고 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중독예방팀장 김혜수 박사는 “정부와 학부모 모두 휴대폰 중독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게 진짜 문제”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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