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 길을 묻는 가요계

H.O.T 염색
1990년대는 가요계의 황금기로 통한다. 무엇보다 10대를 전략적으로 겨냥한 아이돌 시장의 태동이 있었던 시기다. H.O.T를 시작으로 대형기획사에서 내놓는 기획형 아이돌이 시장을 뒤흔들었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2012년 가요계가 1990년대로 눈을 돌리고 있다. 1990년대 '원조'아이돌의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무한경쟁체제 속에 놓인 가요계가 1990년대에서 찾은 해법을 짚어봤다.

# Back to the Basic! 기본으로 돌아가자

신인 그룹 비에이피(B.A.P)는 대범한 역주행을 택했다. 1월26일 발표된 데뷔 싱글 '워리어(WARRIOR)'는 1990년대를 수놓은 '원조' 아이돌 H.O.T의 향기가 물씬 배어 있다. 강렬한 비트와 선이 굵은 안무, 여기에 혁명과 전쟁 등의 내용을 담은 반항적인 가사는 '전사의 후예'를 연상시킨다. '짐승'과 '펫'의 이분법에 함몰된 남자 아이돌의 무리에서 변종의 등장을 알린 셈이다.

비에이피는 정확히 말하면 변종이라기 보다 순종이다. 남자 아이돌 본연의 길을 택했기 때문. 경제력을 가진 누나ㆍ이모 팬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애교나 미소는 없다. 대신 로우틴 여성 팬을 겨냥해 과감한 염색과 과장된 몸짓 그리고 비현실적인 컨셉트(외계인) 등으로 '오빠'의 주목도를 높였다.

B.A.P 염색
이들의 소속사 TS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진정한 의미의 오빠부대가 사라진 지 오래됐다"면서 "타깃 팬층의 연령대를 낮게 잡고 멤버들과 함께 성장하는 장기 전략을 바탕으로 팀을 메이킹 했다"고 말했다.

# Memory the Pattern! 유행코드만 외워도 절반은 성공!

걸그룹 티아라만큼 온고지신(溫故知新)에 능한 팀도 없다. 원더걸스가1960~70년대를 재해석해 재미를 봤다면 티아라는 1980년대와 90년대가 주전공이다. 지난해 발표한 '롤리폴리'는 복고 디스코 리듬에 1980년대 일명 롤러장 패션과 허슬 춤으로 장안의 화제가 됐다. 복고바람을 몰고 온 영화 '써니'의 흥행이 맞물린 것은 행운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배출한 기획형 아이돌의 조상 격인 현진영이 토끼춤과 함께 '슬픈 마네킹'을 발표한 것이 1990년. 티아라는 12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러비더비'를 부르며 토끼춤의 현대 버전인 셔플댄스로 중무장했다. 역시 '섹시'와 '청순'의 이분법에 정신을 잃은 여성 아이돌의 무리에서 친근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걸그룹은 10대 팬들 외에 중장년층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면서 "걸그룹이 끊임없이 복고풍을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현진영 '토끼춤'
# Never be the same! 다양성으로 승부하라!

1990년대가 가요계의 중흥기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양성에 기반한다. 댄스와 발라드가 자웅을 다퉜고 알앤비와 힙합이 싹을 움텄다.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었고 뮤지션과 아이돌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원이 넘쳤다. 서태지와 듀스가 지배력을 키웠지만 드렁큰타이거와 솔리드도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아이돌 세력들도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자신만의 정체성 구축에 공을 들였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아이돌 그룹이 같거나 닮은 것을 경멸했던 1990년대 가요계의 분위기부터 배워야 할 것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한 대형기획사의 기획팀 담당자는 "팀을 구분하는 정체성이 모호해지면서 팀간의 경쟁도 무의미 해졌다"면서 "판을 이끌어 갈 라이벌 구도가 1990년대처럼 등장하지 않는 것은 가요계로선 안타까운 현실이다"고 말했다.

티아라 '셔플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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