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쌩라자르역 인근 프낙에 전시된 나윤선 앨범 코너
그 나라의 오늘을 보려면 대형서점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쌩라자르역을 마주한 프낙(Fnac)을 찾게 된 것은 그 이유다. 이 곳은 프랑스 최대규모의 문화 관련 체인으로 책과 음반 그리고 각종 전자제품을 판매한다. 전자마트와 대형서점의 결합 모델인 셈.

파리에만 10개의 지점이 있는 프낙을 찾게 된 것은 '문화의 도시' 파리의 단면을 보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 여기에 혹여 국내 음반을 파리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발길을 재촉했다. 프랑스에만 10만 명이 넘는 K-POP 애호가가 있다는 한국관광공사 파리지사의 최근 통계는 만남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점원은 'K-POP'이라는 단어에 머리를 긁적였고 남한을 뜻하는 '꼬헤 디 수드(Coree de sub)'라는 단어를 접하자 본연의 미소를 되찾았다. 그가 안내한 곳은 다소 의외였다. 전체 3층 가운데 2층 한쪽에 마련된 재즈 관련 코너였다.

재즈보컬리스트 나윤선의 앨범이 벽면에 단독으로 디스플레이 돼 있었다. 졸지에 '남한의 상징'이 된 나윤선의 앨범이 차분하게 프랑스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시아 코너에서 궁중제례악 앨범을 추가로 찾아낸 것이 '꼬헤 디 수드'의 전부였다. 부스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 음악과 여전한 차이를 보였다.

파리 한복판에서 확인한 K-POP은 여전히 변방의 음악이고 존재 조차 확인이 어려웠다. 재즈와 국악이 간신히 한국 음악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은 프낙의 칸 지점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파리 쌩라자르역 인근 프낙 전경
사실 낙담할 일은 아니다. 정식 판매 루트를 아직 찾지 못한 K-POP 관련 음반은 현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오히려 유럽에서 공연 몇 번 했다고 주요 매장에 앨범이 진열되는 것을 상상한 것 자체가 섣부르고 순진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국내 매체에 비친 K-POP은 당장 유럽을 발칵 뒤집은 것처럼 보였다. 세계 주류 음악 시장에 진입한 것처럼 포장되기도 했다. 지상파 3사는 올해도 주요 가수를 동원해 해외 각지에서 이 같은 거품 형성에 경쟁적으로 뛰어들 태세다.

틈새에서 전면으로 지하에서 지상으로 문화는 확산되기 마련이다. 이를 물리적으로 막기란 어렵다. 다만 단발적이자 소비적으로 그리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문화의 동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유럽 땅에 막 싹을 틔운 K-POP이 우려되는 이유다. 손에 잡히지 않는 허상을 좇기 보다 공식적인 소비자 접점을 늘리며 내실을 다지는 것은 어떠냐는 프낙의 나지막한 충고를 귀담아 들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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