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7년차라면 어깨에 힘 깨나 들어가 있을 법하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10대라고 해도 믿을 법할 정도다. 여전히 뽀얀 피부와 해맑은 미소, 나지막한 목소리의 소유자다. ‘어린왕자’라는 별명이 괜히 붙여진 게 분명 아니다.

지난 3월30일 개인적인 아픔을 겪은 뒤라 어두운 얼굴은 아닐까 지레 걱정했었다. 오히려 그는 탄탄한 몸매로 자신감 넘치는 밝은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이승환은 인터뷰 말미가 돼서야 “개인적으로 위기를 넘길 때 열심히 운동을 했고 지금도 하루 3~4시간씩 웨이트 트레이닝에 전념한다”고 언급했다.

이승환은 자신의 표현대로 ‘숭고할 정도로 자기 절제가 필요한 행위’인 운동을 통해 더욱 강한 사람이 돼 있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고리타분한 격언을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 이승환은 한층 맑아진 느낌이었다. 11일, 2년 만에 ‘Hwantastic 9’를 내놓는 그는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 ‘어린왕자’ 이승환-사랑에 눈물 흘리고 만든 노래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제목은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다. ‘혹시 개인적인 경험은 담은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다. 의외로 다큐멘터리를 본 뒤 만든 노래다. MBC ‘사랑’을 본 뒤 감동을 받아 바로 작곡했다. 불치병에 걸린 약혼녀와 그를 살뜰히 돌보는 남자의 사랑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이승환은 “작곡가 황성제, 기타리스트 그리고 저, 이렇게 남자 셋이서 TV를 보고 있었다. 모두 얼굴을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 솟아난다며 집으로 가는 황성제 붙잡아, 그 자리에서 바로 작곡했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이승환표 발라드’다. 이승환은 이밖에도 영화 ‘비밀’의 감동을 담은 ‘남편’, 보디 빌더를 위한 곡 ‘No Pain,No Gain’ 등 13곡을 새 앨범에 담았다.

이승환은 이번 앨범을 자신의 마지막 앨범으로 생각하고 있다. 가수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이승환은 “CD는 이제 기념물이 되는 시대인 것 같다. CD가 안 나오기 전에 내놓으려 서둘렀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연주자와 함께 녹음 작업을 끝냈다. 사운드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기둥 뿌리’를 뽑힐 정도로 돈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모바일에서 한 번 듣고 흘려버리는 음악이 아니라,잘 만들어진 앨범을 만드는 게 그가 말하는 중견가수의 책임이다.

# ‘음악독립군’ 이승환-홍보비 내놓으라는 말에 직접 제작

이승환은 온화한 미소의 ‘어린왕자’ 이미지와 가요계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첫 앨범부터 자신이 직접 제작했다. 그 흔한 팬클럽도 따로 없다. 어찌 보면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혼자만의 길을 가는 스타일이다.

이승환은 “팬클럽도 없어도 내 음악을 사랑해주는 이들은 분명 있다고 믿는다. 나 같은 가수도 한 명 있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승환은 “팬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홈페이지에 와서 글을 올리면 되고, 나를 만나고 싶으면 공연에 오면 된다. 팬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회비를 걷고 관리하는 게 싫다”고 말했다.

이승환은 1989년 1집부터 자신이 직접 회사를 차려 앨범을 제작했다. 제작자로부터 곡을 받고 컨셉트를 정하고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요즘 가수와 다른 행보다. 당시에도 이단아 격이었다.

이승환은 “음반 제작사에서 거절하는 바람에 혼자 제작했다고 말하는데사실과 다르다. 어느 한 회사에 소속이 돼서 일부 녹음도 마쳤었다. 계약금도 없고, 인세도 없는 이상한 계약이다. 그래서 과감히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고 털어놨다. 이승환은 당시 아버지께서 미리 형제들에게 500만원씩 나눠준 유산으로 빚을 갖고 앨범을 직접 제작했다.

이승환은 “바람막이가 없어서 일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언론에서도 외면당했다. 지상파 음악프로그램에서 1등하는 건 꿈도 못꿨다”고 회상했다.

# ‘공장장’ 이승환-죽어도 여한이 없어

이승환은 ‘꿈의 공장’이라는 뜻의 드림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다. ‘공장장님’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지난 1994년 더 클래식, 1996년 지누를 비롯해 HUE 이소은 등 가수들을 발굴했다. 지누는 엄정화의 이번 앨범을 프로듀싱할 정도로 성장했다. 소속 작곡가로 활동하는 작곡가 황성제 등 가요계의 보물들도 많이 캐냈다.

이승환은 “그때 같이 한 사람들이 제 곁에 여전히 있다는 게 좋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같은 울타리 안에서 음악을 한다는 게 기쁜 일이다”고 말했다. 이승환은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나 창작에만 전념하고 있다. 같은 소속 연기자인 김시후 박신혜 등을 격려하는 일은 발벗고 나선다. 이승환의 집에서 같이 운동하고, 함께 영화도 보러간다.

오롯이 가수의 길만 걸어온 이승환. 최고의 공연팀을 가진 ‘공장장’이 되고 싶다는 꿈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이승환은 “야망이나 목표는 없다. 사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만큼 행복하다. 음악이 있고, 그 음악을 들어주는 팬들 덕분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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