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대전=이재호 기자] 문대성 이후 한국 태권도를 대표했던 이대훈(29)이 코트를 떠난다. 이대훈은 2020 도쿄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뒤 은퇴를 선언했다.

소속팀인 대전시청 태권도팀 체육관에서 만난 이대훈은 “솔직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후배들을 위해 그만 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은퇴 이유를 밝혔다.

태권도 역사상 첫 아시안게임 3연패와 올림픽 은메달-동메달을 보유한 이대훈은 ‘즐기는 올림픽’, ‘박수 쳐주는 패자’의 문화를 만든 첫 한국 선수였기에 체육사에 남긴 흔적은 남다르다.

▶아쉬움 남는 마지막… “찬란한 끝일 거라 믿었는데”

도쿄 올림픽에서 국민들의 큰 기대와 달리 이대훈은 1회전부터 신성 울루그벡 라시토프(우즈베키스탄)에게 연장패를 당해 충격을 안겼다. 이전 올림픽에서 은메달-동메달을 땄기에 이번 만큼은 금메달이 기대됐던 이대훈이 패할 거라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솔직히 열받고 ‘큰일났다’ 싶었죠. 응원하고 도와주신 분들이 너무 많은데 고개 들기 창피하고 부끄러웠죠. 그리고 패자부활전은 생각 못하고 ‘이제 코트 내려가면 다시 밟을 일 없겠다. 이렇게 내 선수생활이 끝이구나’하는 생각이 스쳐가더라고요. 제 스스로에게 열받고 어이없었죠.”

패자부활전을 통해 동메달 결정전까지 진출했지만 자오 슈아이(중국)에게 패하며 이대훈의 올림픽, 선수 생활은 마무리됐다. “도쿄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된 직후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이라고 마음먹었다”는 이대훈은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까지 모두 석권했지만 눈앞에서 물거품이 된 그랜드슬램에 대해 “멋진 올림픽을 기대했다. 내가 생각한 끝은 이게 아니었다. 밝고 찬란한 금빛 끝을 기대했는데 끝나고 나니 늪지대였다”라고 아쉬워했다.

“예전에 져도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끝이잖아요. 학창시절 때 실력이 있어도 경험이 부족해 졌을 때의 기분을 나이 서른이 되어서 느끼니 아쉬움이 더 크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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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경쟁’ 한국 태권도 국가대표로 12년…‘간판’으로의 중압감

태권도는 한국이 종주국이다보니 자연스레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모여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며 한 체급에 한 명만 선발될 수 있는 국가대표를 연달아 하기란 쉽지 않다. 올림픽을 연속해서 나오는 선수도 보기 드물다.

하지만 이대훈은 고등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 지금까지 무려 12년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2 런던 올림픽 결승 진출 당시에는 ‘태권도 역사상 최연소 그랜드슬램’이 가능하다며 기대를 받기도 했다.

“저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결국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죠. 맞습니다. 하지만 전 종주국에서 태권도 국가대표를 무려 12년이나 하며 세계 최고로 태권도계에서 인정받았던 것을 올림픽 금메달 하나보다 더 명예롭게 생각할 수 있다고 봐요. 오랜기간 사람들 기억 속에 ‘최고의 선수’, ‘태권도하면 이대훈’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성공한 선수생활이었다고 생각해요.”

12년이나 최고의 자리에 군림하다보니 그에 따르는 중압감과 부담감도 컸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고 싶을때도 있었어요. ‘금메달 못딸 것 같아요’라고 인터뷰에서 말하고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많이 기대하고 믿어주시는데 그렇게 말할 수 없었죠”라며 속내를 털어놓은 이대훈은 “장준 등 좋은 선수들도 많은데 저한테만 관심이 집중돼 부담스럽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제 경기에 관심이 많다보니 ‘이기면서 재밌게 해야 태권도 인기에 도움된다’는 생각이 잠재의식 속에 있었어요. 특히 2012 런던 올림픽 때 ‘저게 뭐냐, 재미없다. 경기 못한다’는 비판을 많이 들어서 ‘이대훈은 재미없게 하는 스타일’이라는 편견을 깨려고 더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하려고 했어요. 결국 대중들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경기를 많이 보시니까 특히 그 두 대회에서 재미도 잡으면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졌나 봐요.”

‘태권도 이게 뭐냐는 소리가 싫었다’는 말을 인터뷰 내내 몇 번에 걸쳐 할 정도로 이대훈은 태권도 간판 스타로서 단순히 승리 그 이상의 가치에 대한 중압감을 선수생활 내내 가져왔음을 고백했다.

▶새삼 조명된 패자의 품격… 제2의 인생은 지도자로

도쿄 올림픽은 여느 올림픽과는 달리 ‘즐기는 올림픽’, ‘패자가 승복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올림픽’으로 남았다. 여자 배구 대표팀, 높이뛰기 우상혁 등 4등을 차지한 선수들도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이면 ‘최선을 다했다’며 축하를 보내줬다. 유도 조구함은 결승에서 연장 승부 끝에 패한 후 승자의 손을 높이 치켜세워줘 금메달이 아니라도 최고 스타에 등극하기도 했다.

그 시작에는 이대훈이 있었다. 2016 리우 올림픽 당시 이대훈은 경기에 지고도 승자의 손을 높이 들어주며 엄지를 보여 승자를 인정하는 모습으로 크게 화제가 됐다. 당시 이대훈은 “이기고 나면 패자들이 슬퍼하는 모습이 마음이 안 좋았다. 내가 지면 승자를 축하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새삼 5년이 지난 도쿄 올림픽에 크게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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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새삼 그 모습이 화제가 되는 것에 놀랐어요. 재조명돼 감사하기도 했고 제가 노리고 한 것도 아니고 진심으로 했기에 더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이번 올림픽에 후배들이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 저 역시 그 선수들을 멋있게 봤죠.”

5살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해 25년간 하나의 일만 해왔던 제1의 인생이 마감된 지금 이대훈은 어떤 제 2의 인생을 생각하고 있을까.

“세종대에서 체육학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고 있는데 제가 직접 했던 것을 이론적으로 배울 수 있으니 흥미롭더라고요. 선수로 뛰면서도 지도하고 훈련하며 바뀌어가는 것에 재미를 느꼈고 좋은 훈련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제가 했던 레벨을 뛰어넘는 선수를 만들어보고 싶다. 결국 좋은 지도자는 ‘소통이 원활한’ 지도자라고 믿어요. 막상 지도자가 됐을 때 어린 선수들과 어떻게 진정으로 소통하며 좋은 선수로 키울지 고민하는 시간 끝에 해답을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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