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윤승재 기자] 프로 스포츠는 스토리 싸움이다. 선수와 구단이 만들어가는 스토리는 물론, 구단과 구단, 심지어 모기업과 모기업의 경쟁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재미와 흥행을 배가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올 시즌 프로야구는 재미가 한층 배가된다. 신세계그룹이 프로야구판에 뛰어들면서 롯데와 유통가 모기업 더비가 완성됐고, 두 그룹은 야구를 활용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많은 관중이 야구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지만, 온라인과 유통시장에서는 이미 경쟁이 후끈 달아올라 있다. 올 시즌 프로야구의 흥행은 신세계와 롯데의 마케팅 싸움에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사진=스포츠코리아, 윤승재 기자
유통+야구단 원조는 롯데, 원조 아성에 도전하는 신세계

신세계그룹의 SSG 랜더스 창단은 시작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어렸을 적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염원을 담아 창단된 SSG 랜더스에는 유통과 스포츠를 접목시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도 함께 담겨 있었다.

신세계그룹은 현재 추진 중인 청라 스타필드 지구에 돔구장을 설립해 ‘신세계 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또 현재 홈 구장 인천 SSG랜더스필드에는 세계 최초로 야구장 내 스타벅스를 입성시키고 ‘이마트24’나 ‘노브랜드 버거’ 등 신세계그룹과 연계된 브랜드들도 투입해 ‘신세계화’ 시키고 있다. 공격적인 입점과 입소문으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신세계그룹이다.

당연히 유통가 라이벌 롯데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롯데도 이미 부산 사직야구장에 엔제리너스 등 롯데 계열 브랜드를 입점하고 부산시와 연계된 마케팅도 꾸준히 하고 있다. 유통과 스포츠를 접목시키겠다는 야망도 롯데가 먼저 추진했다. 하지만 선거철 공수표로 전락한 신구장 추진의 거듭된 실패와 신세계그룹의 단기간 집중포화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롯데온 홈페이지 캡쳐, 스포츠코리아 제공
“울며 겨자먹기로” vs. "고수는 아닌 듯" 유쾌한 설전에 라이벌 분위기 ‘후끈’

이같은 심상치 않은 경쟁 분위기에 불을 더 지핀 것은 정용진 부회장이었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3월 음성 기반 SNS인 ‘클럽하우스’에서 "야구단을 가진 롯데를 보면서 많이 부러워했었다"라면서도 "(롯데가) 본업 등 가치 있는 것들을 서로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본업과 연결할 거다. 걔네(롯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이라며 도발을 걸기도 했다.

롯데도 반응했다. 정용진 부회장의 발언에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롯데는 대신 계열사 행사에 신세계를 겨냥한 문구들을 넣어 대응했다. 롯데마트는 할인 행사 보도자료에 “야구도 유통도 한 판 붙자”라는 제목을 붙인 데 이어, 통합온라인쇼핑몰 ‘롯데온’은 ‘원정 가서 쓰윽 이기고 ON’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쓰윽’은 신세계그룹의 ‘SSG닷컴’과 SSG 랜더스를 연상케하는 단어로, 신세계를 겨냥한 문구였다.

롯데 자이언츠도 라이벌의 도발에 도발로 맞대응했다. 허문회 롯데 감독은 SSG의 도발에 “보통 고수들은 그런 말 잘 안하지 않나. (SSG가) 고수는 아닌 것 같다”라고 여유로운 반응을 보였고, 핵심 타자 이대호 역시 “우리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우리가 많이 이겨서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라면서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물론, 이 모두가 ‘날선’ 발언들은 전혀 아니었다. 경쟁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할 ‘트래시 토크(trash talk)’이자, ‘유쾌한 설전’일 뿐이었다. 정용진 부회장도 롯데의 대응을 보고 “롯데가 내 의도대로 반응했다"면서 "누가 1승을 하는 것보다 야구판이 커지길 원한다. 그래서 도발하고 언쟁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도발의 숨은 뜻을 이야기했다. 정 부회장의 말대로 두 유통가의 장외 설전에 프로야구 분위기도 후끈 달아올랐다. 일종의 ‘윈윈’ 전략이다.

ⓒSSG
유통가 경쟁에 볼거리도 살거리도 많아진 야구팬들은 ‘싱글벙글’

두 유통가 싸움을 지켜보는 야구팬들도 싱글벙글이다. 우선 야구에 볼거리가 많아졌다. SSG 랜더스가 공격적인 투자로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영입하면서 야구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데 이어, 추신수와 ‘고향팀’ 롯데, 추신수와 ‘절친’ 이대호의 경쟁 구도도 만들어져 스토리를 더했다.

유통가 싸움에 스토리를 더해 야구판을 키웠다. 두 팀 간의 라이벌 의식이 한층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SSG와 롯데가 맞붙는 경기, 추신수와 이대호가 1루에서 만나는 장면 등 야구장에서 볼 수 있는 스토리들이 다수 만들어지면서 단숨에 야구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볼거리 뿐만 아니라 살거리도 많아졌다. 앞서 언급했듯이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은 야구 라이벌 구도를 유통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마트는 4월 초 SSG 랜더스 창단을 기념해 ‘랜더스데이’라는 최대 규모의 할인행사를 진행했고, SSG닷컴은 4월 5일부터 11일까지 '랜더스위크'라는 할인행사를 열기도 했다. 롯데마트 역시 창립 기념일과 롯데 자이언츠 개막에 맞춰 4월 한 달 동안 할인행사를 열었다. 야구판을 활용한 두 유통가의 대규모 할인 전쟁에 야구팬들의 살거리도 많아졌다.

두 유통가 고래싸움에 지켜보는 야구팬들은 ‘싱글벙글’이다. 코로나19로 볼거리도 살거리도 줄어든 이 시기에 신세계와 롯데의 유쾌한 장외 전쟁이 장기 팬데믹에 지친 야구팬들에게 쏠쏠한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윤승재 스포츠한국 기자 upcoming@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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