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양현종(33)의 별명은 ‘대투수’다. 그 어떤 스포츠 스타에게도 이런 대단한 별명이 붙은 사례가 있었던가.

그런 대투수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도전’이라는 키워드만 빼고는 미국을 향하는 시기, 계약조건, 경쟁 등 모든 것이 최악만 기다리고 있다. 양현종은 대투수답게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까.

텍사스 레인저스는 13일(한국시간) 양현종과의 마이너리그 계약을 알렸다. 메이저리그에 있을때와 마이너리그에 있을때 계약이 달라지는 스플릿 계약이다. 일반적인 ‘메이저리그 계약’은 어디에 있든 보장된 금액을 받지만 양현종이 맺은 스플릿 계약은 마이너리그에 있을 경우에는 마이너리그 일반 수준의 계약, 메이저리그에 있을 경우에는 보장 연봉 130만달러(약 14억4000만원)에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 55만달러(약 6억1000만원)을 받는 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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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게 도전을 위해 국내에서의 안정적일 수 있는 생활을 포기한 도전정신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도전과 현실은 다르다. 양현종이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미국행을 택하면서 최소한 3가지 시련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안 좋은 것은 미국행 시기다. 양현종의 계약 시점은 매우 늦었다. 물론 이번 스토브리그가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계약 시기가 늦어졌지만 양현종은 스프링캠프가 열리기 직전에야 계약했다. 미국 비자 발급 등의 문제까지 해결하려면 더 시간이 필요하다. 스프링캠프가 시작되는 18일까지 도착하는 것도 쉽지 않다. 도착해서 캠프에 합류해도 시차적응도 필요하다. 또한 그동안 혼자 훈련을 해왔지만 팀훈련을 했을때만큼 몸을 제대로 끌어올리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2014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하면서 미국행을 택한 윤석민도 첫 시즌 마이너리그에서의 부진 이유로 너무 늦었던 계약을 언급한 바 있다. 윤석민 역시 2월에야 계약하면서 입단시기가 늦어졌고 자연스레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었다. 가뜩이나 미국 무대는 국내와 달라 준비를 철저히 하고 가도 쉽지 않은데 몸도 제대로 끌어올리지 못하다보니 실패의 원인이 됐다.

국내에서 훈련을 한 류현진과 김광현, 최지만도 이미 2월초 미국으로 향했다. 양현종은 가뜩이나 처음인데 미국 합류부터 늦으면서 제대로 몸을 끌어올리기도 쉽지 않다.

양현종을 기다리는 또 다른 시련은 바로 ‘마이너리그 계약’이라는 점이다. 소액의 메이저리그 계약도 아닌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으면서 텍사스 입장에서는 굳이 양현종을 써야할 이유가 없다. 텍사스 입장에서는 냉정하게 스프링캠프에서 잘해주면 써보고 아니면 마이너리그에 데리고 있을 정도의 자원이다. 게다가 메이저리그에 승격해도 130만달러밖에 안되는 저렴한 연봉은 패전처리급 불펜투수도 받지 않을 수준의 돈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돈이 곧 기회다. 같은 활약을 해도 계약된 연봉이 높으면 기회가 더 주어진다. 어떻게해서든 돈값을 위해 써야하기 때문이다. 소액이라도 보장된 메이저리그 계약도 아니고 소액의 마이너리그 계약은 텍사스 입장에서는 5선발은커녕 불펜이라도 들어올수 있을지 미지수인 선수일 뿐이다.

메이저리그 진입 경쟁 역시 쉽지 않다. 선발 진입을 목표로하지만 이는 최상의 시나리오일 때 가능하다. 일단 불펜이라도 메이저리그에 드는 것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일단 텍사스는 카일 깁슨-조던 라일스-아리하라 고헤이-데인 더닝까지는 선발진이 확정적인 상황이다. 네 명의 선수가 부진하지 않는 이상 선발진은 5선발 한자리만 빈다.

이 5선발 자리를 놓고 양현종을 포함해 최대 6명의 선수가 스프링캠프 초청장을 받았고 마이너리그 트리플A와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있는 선수까지 포함하면 최대 10명 이상은 된다. 고작 한자리를 놓고 10명 가량이 경쟁하는 것.

물론 텍사스는 리빌딩 팀이며 좋은 선발투수들이 많은 타팀에 비해서는 그나마 경쟁이 덜한 편이다. 타팀의 경우 확고한 선발투수들이 있어 자리를 꿰차기 힘들다면 텍사스는 그나마 확실한 선발투수들조차 언제 부진해도 이상치 않은 선수들이기에 조금 더 기회가 날 수 있다. 양현종 역시 이를 감안하고 텍사스를 택했다.

그러나 양현종이 불펜으로도 뛰어본 경험이 적고 구속도 빠르지 않다는 점, 선발 경쟁자들은 굉장히 많다는 점에서 선발 경쟁은커녕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드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국내에서 보여준 전성기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양현종은 텍사스 선발진에 진입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2020시즌,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평균자책점 4.71)을 보였고 나이도 많아 예전처럼 던질 수 있을지 의문인 상황이다. 그렇기에 냉정하게 마이너리그 계약밖에 받지 못한 양현종이다. 만약 리그 최하위권 팀인 텍사스에서도 선발진은 커녕 메이저리그 진입도 하지 못한다면 그게 한계일지도 모른다.

양현종이 진짜 ‘대투수’라면 이런 시련을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대투수’ 별명이 괜히 붙은게 아닌 것을 증명할 시간을 맞은 양현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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