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2010년 10월 28일(이하 한국시간). 검은머리의 한 동양 소년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코메르츠방크 아레나에 들어섰다. 그때만 해도 누구도 몰랐다. 이 소년이 10년 후 아시아를 넘어 유럽의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닐 공격수로 거듭날 줄은.

포칼컵(독일 FA컵) 프랑크푸르트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18분 교체투입됐던 손흥민은 함부르크SV 유니폼을 입고 18세 111일의 나이로 프로 무대에 등장했다. 그리고 2020년 10월 28일, 프로 데뷔 10주년을 맞는다.

한국 축구를 넘어 아시아 축구 역대 최고 선수가 되어 세계 축구의 정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손흥민(28·토트넘 훗스퍼)의 10년. 그가 발전하면 한국축구도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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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골부터 남달랐던 손흥민, 함부르크서 21세에 10골 선수가 되다

2010년 10월 28일 프로 데뷔전을 가진 손흥민은 이틀 후인 10월 30일 프로 데뷔골을 터뜨린다. 분데스리가 쾰른 원정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리그-선발 첫 경기를 가진 손흥민은 1-1로 맞선 전반 24분 대형 신인의 등장을 알린다.

미드필드 진영에서 빌드업 과정 중 한 번에 길게 투입된 패스때 손흥민은 절묘하게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고 전방으로 내달렸다.

패스가 다소 길어 곧바로 골키퍼가 튀어나왔고 손흥민은 골키퍼가 나온 것을 보고 그대로 오른발로 높이 공을 띄워놓는다. 골키퍼는 완전히 속았고 손흥민은 떨어지는 공을 바짝 따라붙은 수비를 따돌리고 침착하게 왼발을 갖다대 빈 골대로 밀어넣었다.

그동안 100골 이상 넣고 있는 손흥민의 수많은 득점 중 ‘번리전 마라도나 빙의골’, ‘독일전 질주골’ 등과 함께 ‘인생골’로 평가받는 기술적으로 완성된 득점이었다.

이 골은 손흥민의 장점을 축약적으로 보여주는 골이기도 하다. 수비 뒷공간을 파고드는 빠른 스피드,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능력, 문전에서의 침착함이 한 번에 드러나는 골로 ‘손흥민’이 어떤 선수인지 세계에 알렸다.

만 18세의 소년은 그렇게 함부르크라는 독일 내에서도 큰 클럽의 일원이 됐고 데뷔시즌 14경기 3골로 가능성을 보였다. 2011~2012시즌은 본격적으로 1군 준주전급 멤버가 됐고(30경기 5골 1도움) 2012~2013시즌에는 무려 34경기 12골 2도움으로 만 21세에 유럽 빅리그 두자리숫자 득점을 넣는 선수가 됐다. 두자리숫자 득점은 ‘준수한 주전 공격수’의 지표와도 같다.

함부르크의 선봉으로 폭발적인 속도를 활용한 역습은 함부르크의 공격 주루트였다. 손흥민은 차범근 이후 25여년만에 분데스리가에서 10골 이상을 넣은 한국선수가 됐고 리그 득점 랭킹 10걸에도 들었다.

바이어 레버쿠젠으로 이적해서는 3시즌밖에 뛰지 못했지만 손흥민은 2018년 분데스리가 공식 홈페이지가 선정한 함부르크 역대 베스트11에 들 정도로 ‘함부르크가 낳은 월드클래스’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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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이 뛰었던 레버쿠젠으로… 17골+챔스 활약으로 대폭발

21살의 동양소년의 반짝이는 재능을 리그 탑클럽들도 당연히 눈여겨봤다. 2013~2014시즌을 앞두고 손흥민은 직전시즌 3위로 유럽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레버쿠젠으로 1000만유로(당시 약 150억원)에 이적한다.

재밌게도 레버쿠젠은 ‘대선배’ 차범근이 꼭 30년전인 1983년 여름, 프랑크푸르트에서 이적한 팀. 에이스의 등번호인 7번을 부여받으며 이때부터 ‘No.7’ 손흥민의 경력도 시작된다.

2013년 11월 손흥민은 새로운 역사를 쓴다. 전 소속팀이던 함부르크를 상대한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역대 수많은 한국 선수의 유럽진출사에서 첫 리그 해트트릭을 달성한 선수가 된다.

손흥민이 첫 시즌만에 레버쿠젠에서 얼마나 중요한 선수가 됐는지 명확히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2013~2014시즌 리그 최종전, 베르더 브레멘 전에서 손흥민은 1-1로 맞선 상황에서 헤딩 결승골을 넣었고 이 골 덕분에 승리한 레버쿠젠은 승점 1점차로 4위 수성에 성공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을 따낸다. 손흥민의 득점이 아니었다면 5위로 밀려 유로파리그로 떨어질뻔 했던 팀을 구한 것이다.

레버쿠젠 첫 시즌도 두자리숫자 득점에 성공한 손흥민은(43경기 12골 7도움) 2014~2015시즌에는 무려 17골까지 넣으며 ‘대폭발’을 한다(42경기 17골 3도움).

특히 챔피언스리그에서 10경기 5골 1도움의 엄청난 활약을 하며 이제 유럽 무대 전체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챔피언스리그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전에서 기록한 프리킥골은 UEFA 기술위원회가 선정한 ‘2014-15시즌 챔피언스 리그 최고의 세트피스 골’로 선정될 정도로 수준높고 환상적인 골을 넣기도 했다.

2015년 2월 볼프스부르크와의 리그경기에서 자신의 통산 2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하기도 했던 손흥민은 2015~2016시즌, 8월 2경기를 뛴 후 레버쿠젠과 안녕을 고한다. 세계 최고 무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이 손흥민을 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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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가 직접 제작한 '메이드 인 분데스리가 : 손흥민 영상 https://youtu.be/xx14qOSQyE0

▶2년만에 3배뛴 몸값… 하지만 힘겨웠던 첫시즌

2015년 8월말, EPL의 토트넘 훗스퍼는 손흥민 영입을 공식발표한다. 이적료는 3000만유로(당시 약 400억원)로 2년전 함부르크를 떠나 레버쿠젠으로 이적하며 기록했던 1000만유로의 이적료에 3배였다. 2년만에 몸값이 3배가 오른 것.

토트넘에서도 등번호 7번을 받은 손흥민은 ‘선배’ 이영표가 뛰었던 토트넘에서 독일 무대처럼의 성공을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독일과 잉글랜드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자신의 강점인 빠른 속도와 강력한 양발 슈팅으로 맹활약을 하며 성공신화를 이어가는가 했다.

하지만 시즌 중반부터는 EPL에서도 손흥민에 대한 파악이 됐는지 손흥민이 빈번히 막히는 모습이 나왔다.

EPL의 강력한 피지컬에 왜소한 손흥민이 밀리는 모습이 나왔고 토트넘의 전술에 녹아들지 못해 겉돌며 부진한 활약이 이어졌다. 부상도 겹쳤고 후반 추가시간에 교체투입되는 굴욕까지 겪었다.

결국 독일에서 3시즌 연속 두자리숫자 득점에 성공했던 손흥민은 잉글랜드 첫시즌에 리그 4골 포함 총 40경기 8골 6도움의 다소 실망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토트넘 입장에서도 거액의 이적료를 주고 데려온 선수에 대한 기대치를 충족시키진 못했다. 그래서인지 2016년 여름,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토트넘이 1년전 영입한 금액 이상의 이적료를 제시하자 토트넘도, 손흥민도 흔들렸다. 손흥민 역시 진지하게 다시 독일 복귀를 고려했지만 결국 한번 더 토트넘에서 도전하는 것을 택했다.

▶마음 굳게 먹은 손흥민,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되다

부진한 첫 시즌을 보낸 뒤 손흥민 스스로도 나중에 쓴 자서전에 ‘사생결단의 마음을 풀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2016~2017시즌을 준비했다. 배수의 진을 친 손흥민은 시즌을 시작하자마자 EPL 공식 ‘9월의 선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아시아 선수 최초의 ‘이달의 선수상’ 수상이었고 자신을 향한 야유를 환호로 바꾼 변곡점이었다.

2016년 9월 맹활약(5경기 5골 1도움)을 펼치면서 손흥민은 토트넘의 주전선수로 거듭났고 20대 중반이 됐어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독일 시절에는 빠르고 역습에만 특화된 슛이 좋은 선수였다면 토트넘에서 몸집을 늘리고, 약점으로 지적됐던 수비와 오프더볼(공 없는 상황에서의 움직임)에 대한 움직임을 향상시켰다.

손흥민은 무리뉴 감독 부임 후 ‘윙백같다’고 할 정도로 수비에 많이 가담하고 수비력도 탄탄해졌다. 공 없는 상황에서도 동료를 돕거나 패스를 받을 좋은 위치로 갈수록 잘 찾아 들어갔다.

가뜩이나 양발 강슈팅은 물론 감아차는 정확한 슈팅에 세계 최고 수준의 스피드, 역습에 최적화된 드리블이 강점이던 손흥민은 완전체로 거듭났다.

2016~2017시즌 손흥민은 EPL에서만 14골을 포함해 시즌 전체 47경기 21골 7도움으로 한국 선수 최초의 유럽리그 20골이상 시즌을 만들었다. 차범근도 해내지 못했던 대기록이었다.

2017~2018시즌에도 손흥민은 18골 11도움으로 이젠 도움까지 두자리숫자를 넘기며 골만 잘 넣는 것뿐만 아니라 협업까지 잘 하는 선수로 거듭났다. 이때부터 손흥민은 완전히 유럽 정상급 윙어로 분류됐다.

2018~2019시즌에는 완전히 토트넘의 핵심선수로 클럽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결승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맨체스터 시티와의 4강 2차전에서 2골이나 넣으며 영웅이 됐고 박지성의 뒤를 이어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까지 밟았다. 이 시즌도 20골 9도움으로 다시금 20골에 성공했다.

지난시즌은 포체티노 감독에서 무리뉴 감독으로 변화하고 팀 성적도 곤두박질 치며 쉽지 않았음에도 손흥민은 EPL에서만 11골 10도움을 기록해 골과 도움에서 모두 완벽한 선수가 됐음을 전세계에 알렸다.

지난시즌 토트넘 팀내 올해의 선수상 등 대부분의 상의 주인공은 모두 손흥민이었다. 2019년 12월 번리를 상대로 넣은 ‘마라도나 빙의골’은 세계 축구 올해의 골 강력한 후보다.

그리고 올시즌에는 시즌 초반임에도 7경기 8골 4도움(22일까지)이라는 기록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우스햄튼전에서 해트트릭도 아닌 4골을 달성하며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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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차범근의 기록 넘은 손흥민, 걸어가는 길이 역사

손흥민은 차범근이 독점했던 골기록 대부분을 깼다. 차범근이 가지고 있던 리그 98골의 기록을 101골로 최근 넘어섰고 모든 대회 통틀어 차범근의 121골의 기록은 2019년 11월에 이미 넘었다(142골).

이뿐만 아니라 아시아 선수 유럽 챔피언스리그 최다골, 아시아 선수 EPL 최다골 등 대부분의 기록을 가진 손흥민은 아시아 역대 최고순위인 세계 최고 축구선수상인 발롱도르 22위에 오르기도했다.

국가대표로도 두 번의 월드컵에서 3골로 박지성-안정환과 함께 한국선수 최다골의 주인공이며 2018 아시안게임에서는 40년만에 원정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장으로 활약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아시아팀이 최초로 피파랭킹 1위팀(독일)을 꺾는데 쐐기골까지 넣은 손흥민은 이제부터는 자신이 걸어가는 길이 한국, 그리고 아시아 축구의 역사가 된다.

2010년 10월,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몰랐던 손흥민의 이름은 2020년 10월 지금은 ‘모르면 간첩’인 국민 스포츠 영웅의 이름이 됐다.


토트넘 구단에서 제작한 손흥민 베스트10골 https://youtu.be/BKInZGOqc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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