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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 윤승재 기자] 지난해 이강인을 필두로 한 U-20(20세 이하) 남자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준우승은 한국의 축구팬들을 열광케했다. 비록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한국 남자축구 사상 ‘최초로’ FIFA 주관 대회서 결승전에 오른 것만으로 값진 결과물을 만들어낸 대표팀이었다.

하지만 한국 축구 역사 전체를 따지자면 ‘최초의’ 결승 무대는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인 2010년 9월 26일, FIFA 주관 대회에서 결승 진출은 물론 우승컵까지 들어 올린 한국 선수들이 있었다. 바로 당시 17세 이하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 2010 U-17 여자월드컵 우승 당시 멤버들. 가장 왼쪽의 장슬기와 득점왕의 여민지. ⓒFIFA


▶ 한일전 결승전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 “솔직히 진짜 나가기 싫었어요”

지금은 여자축구 대표팀의 ‘기둥’으로 우뚝 선 장슬기(26·인천현대제철)는 우승을 확정지은 그 날은 물론, 대회 한 경기 한 경기, 한 장면 한 장면이 생생하기만 하다. 남아공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둔 첫 경기부터 나이지리아와 연장 승부 끝에 승리한 16강전, 그리고 승부차기로 승리한 한일전 결승전까지.

장슬기가 U-17 월드컵 이야기에 당시의 벅찬 감정을 다시 느끼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장슬기는 전화 인터뷰에서 “벌써 10년이나 됐어요? 나이를 벌써 열 살이나 먹었네요"라고 웃으면서도 “그때만 생각하면 뭉클해요. 10년이 지났어도 정말로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죠”라며 되돌아봤다.

이 중 장슬기는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과 한일전 결승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1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놀림’과 ‘환호’를 동시에 받고 있다는 부연설명과 함께.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은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전반 3분 만에 내리 두 골을 내주며 경기를 어렵게 시작했다. 그 때 첫 번째 골이 장슬기의 자책골이었다. 공식 기록은 나이지리아 아일라의 골로 기록됐지만 그의 슈팅이 장슬기의 발을 맞고 한국 골망으로 들어갔다.

장슬기는 그 때 자책골로 아직까지 놀림을 받고 있다며 웃었다. 하지만 오히려 당시에는 의연했다고. 장슬기는 “그 때는 심장이 강했나봐요(웃음). 자책골로 짜증이 나긴 했는데 나이지리아 선수들이 너무 빨라서 짜증을 낼 겨를도 없었어요. 일단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0-2로 시작했지만 장슬기를 비롯한 대표팀의 의지는 강했다. 이금민과 여민지의 골로 곧바로 동점을 만든 대표팀은 한 골을 더 내주며 전반전을 마쳤지만, 후반전 여민지의 해트트릭 달성으로 역전까지 성공했다. 후반 추가시간 동점골을 내주며 연장 승부로 이어졌음에도 대표팀은 김아름과 여민지의 쐐기골로 6-5 짜릿한 연장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진출했다.

  •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 장슬기(가운데 왼쪽)가 성공 후 동료들과 얼싸안고 있다. ⓒFIFA
준결승에서 강호 스페인을 꺾은 대표팀은 결승전에서 일본 대표팀과 만났다. 숙명의 한일전. 하지만 당시엔 여자축구만큼은 일본이 한 수 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대표팀은 화끈한 중거리포 세 방(이정은, 김아름, 이소담)으로 승부를 연장까지 끌고갔고, 결국 승부차기까지 이끌며 우승 앞으로 한걸음 더 다가섰다.

일본의 선축으로 시작된 승부차기도 치열했다. 한국은 첫 키커 이정은의 슈팅이 골키퍼에 막혔지만, 바로 다음 일본 선수의 실축이 이어지며 다시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점수는 4-4까지 쭉 이어진 상황. 일본의 여섯 번째 키커 무라마쓰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으며 다시 대표팀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이어 여섯 번째 한국 대표팀의 키커로 나선 선수는 바로 장슬기. 장슬기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솔직히 진짜 나가기 싫었어요(웃음). 옆에 있던 언니랑 계속 미루면서 실랑이를 벌였는데 결국엔 제가 나갔죠”라고 당시를 고백했다.

손에 땀을 쥐는 상황. 하지만 장슬기는 과감했다. 바로 전 일본 선수가 크로스바를 맞춘 것을 봤음에도 장슬기는 왼쪽, 오른쪽 사이드가 아닌 정면 그것도 위쪽 코스를 택했다. 장슬기는 “솔직히 어디로 차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라고 웃으면서 “인스텝으로 그냥 슈팅을 때렸다는 기억밖에..”라고 전했다.

대회의 마침표를 찍는, 한국의 우승을 확정짓는 골이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4강 진출을 확정 짓는 골만큼의 희열이 쏟아졌고, 골을 성공시킨 장슬기는 곧장 동료들에게 달려가 서로를 얼싸안고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나이지리아전과는 반대로 장슬기의 한일전은 동료들에게 무수히 많은 칭찬을 듣는 경기로 남아있다.

  • 연합뉴스 제공
▶ 장슬기의 아쉬움 “그 때가 여자축구 터닝포인트였는데…”

한국 축구 최초의 FIFA 주관 대회 우승. 금의환향한 여자축구 대표팀을 향한 관심은 뜨거웠다. 귀국장부터 취재 열기가 뜨거웠고 이후에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등 팬들과 매체의 관심이 쏟아졌다.

장슬기도 그 때 당시를 회상하며 흐뭇해했다. 장슬기는 “그 때가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할 때였어요. 대회 중에 갑자기 팬들이 글 남겨주시고 그래서 처음 받는 관심에 기뻐서 일일이 댓글을 달고 그랬죠. 호텔에서 인터넷이 잘 안 터졌는데 어떻게든 댓글 달려고 난리를 쳤던 기억이 있네요(웃음)”이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자축구를 향한 ‘폭발적인’ 관심은 여기서 끝이었다. 이후 성인대표팀의 여자 월드컵 진출과 사상 최초 16강 진출 등 굵직한 대회에서의 의미 있는 성과로 관심이 이전보단 조금씩 올라오긴 했지만, 국내 여자축구리그나 여자축구에 대한 전반적인 인프라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장슬기 역시 아쉽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붐을 일으키긴 했지만, 여자축구 통틀어 봤을 땐 큰 변화로 이어지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정말 아쉽죠. 그 때가 터닝포인트였는데 못 살린 것이 너무 아쉬워요”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당시 월드컵에 나선 선수들도 현재 여자축구 그라운드에 남아 있는 선수는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장슬기를 비롯해 이금민(영국 브라이튼), 신담영, 이소담(인천현대제철), 여민지, 이정은(이상 수원도시공사), 김아름, 김민아, 백은미(이상 세종스포츠토토), 김빛나(서울시청), 김인지(경주한수원) 등 21명 중 절반이 조금 넘는 선수들만이 남아있다. 장슬기와 비슷한 만 26세 전후의 선수들이지만, 월드컵 이후 부상이나 아쉬운 지원 혹은 개인적인 이유로 축구를 그만뒀다.

장슬기는 “월드컵 멤버들 뿐만 아니라 여자축구 선수들 그만두면 아쉽죠. 진심으로 여자축구를 사랑하고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어떤 이유가 됐든 그만 두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에요”라며 아쉬워했다.

  • 10년 전 앳된 모습의 장슬기는 이제 대표팀의 대들보가 됐다. 사진은 지난해 월드컵 나이지리아전 경기 당시 장슬기. ⓒAFPBBNews = News1
▶ "언젠간 일본-유럽같이 여자축구가 사랑받는 날이 오겠죠"

여자축구의 발전을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이제는 여자축구의 대들보가 된 장슬기에게 묻자 “내가 이를 말할 위치인가 싶은데..”라고 웃으면서도 “WK리그가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주말에 열렸으면 좋겠어요. 또 지금은 리그가 늦게 개막해 어쩔 수 없지만 일주일에 한 경기로 여유 있게 해서 선수들이 제대로 된 컨디션에서 좋은 경기를 치르게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조심스레 전했다.

일본(고베아이낙)과 스페인(마드리드 CFF 페메니노) 등 해외에서 선진 여자축구 무대를 뛰고 온 장슬기다. 장슬기는 일본에서 배워 온 구단의 노력과 유럽의 여자축구 분위기를 한국에도 이식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전했다.

“일본에선 구단이 더 적극적으로 팀과 리그 홍보에 나서요. 저도 직접 거리에 나가 직접 전단지도 돌려봤고 심지어 구단 사장도 직접 나서서 함께 해요”라면서 “이렇게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을 높힌다면, 한국도 나중에는 유럽처럼 가만히 있어도 여자축구의 열기가 뜨거운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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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20/09/26 06: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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