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바꿔야 한다.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누군가 날 대신해서 오물을 치워줄 것이라 기다려선 안 된다. 기다리고 침묵하면 온 사방이 곧 발 하나 디딜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이제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고 장막을 치워 비밀을 드러내야 한다. 나의 이것이 시작이길 바란다.”

2018년 제 54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받은 명품 드라마 ‘비밀의 숲’ 유재명 배우(이창준)의 마지막회 유서 내용이다.

썩어버진 나라를 바꾸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길 택한 이창준 청와대 민정수석의 유서는 비밀의 숲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명대사로 회자되고 있다.

이용 국회의원 제공
트라이애슬론(수영, 사이클, 달리기를 연달아서 하는 종목) 국가대표 고(故) 최숙현 선수가 투신했다. 사망 이유는 경주시청팀 코치진과 ‘팀닥터’로 불린 인물의 지속적인 폭행과 가혹행위였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마지막까지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고 부모님에게 말했을 정도다.

공개된 녹취는 충격적이었다. 상상도 못할 폭행이 자행됐고 이 폭행은 너무 당연시 여겨져 콩비지찌개를 먹으라는 말과 함께 폭행이 이루어졌을 정도다.

사망 이유가 밝혀지고 녹취도 공개되자 전국민적 분노가 치밀고 있다. 최숙현을 죽게 만든 이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특별히 지시했을 정도다. 조사과정을 지켜봐야하겠지만 사실이 밝혀진다면 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당연할 것이다.

지금은 초점이 최숙현을 죽게한 사람들에게 맞춰져있고 이는 당연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른다면 이 문제를 체육계 전체의 문제로 보고 위기에 놓인 피해자를 구해내며 다시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해야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지금 피해를 당하고 있는 현역 선수들, 유소년 선수들이 일어서야한다. 물론 무고는 안된다. 확실하게 증거를 모으고 그릇된 인식을 가진 지도자와 관계자들을 완전히 옭아맬 수 있게 준비해야한다. 어설프게 터뜨렸다가 후환을 걱정해야할 수 있다. 빼도박도 못하게 해야한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감독. ⓒ연합뉴스
‘비밀의 숲’의 대사처럼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된다. 기다리고 침묵하며 누군가 해결해줄거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피해자들이 일어나야한다. 이제 입을 벌려서 누가, 어떻게, 무슨 이유로, 얼마나 폭력을 가했는지 정확히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켜야한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자행되던 폭력과 가혹행위의 장막을 치워 비밀을 드러내야한다.

최숙현은 죽음으로 '끝'을 바라면서도 자신을 통해 이런 문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 '시작'이길 바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피해를 당하고 있는 이들이 일어서줘야한다. 그래야 최숙현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더 강력하게 뿌리깊은 체육계의 폭력을 없앨 수 있다. 자신이 받는, 받았던 고통을 다음 세대도 받게 해서는 안된다. 지금이라도 자신이 당하는 폭력을 끊는 것과 동시에 미래에 같은 일이 없게 하기위해서는 용기있게 일어서야만한다.

그동안 체육계의 폭력은 군기, 선후배간의 위계질서 등으로 인해 용인되고 묵인되어왔다. 물론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트라이애슬론 경주시청팀과 같이 무식하고 비상식적인 폭력과 폭언이 자행되는 곳은 있기 마련이다.

ⓒ연합뉴스
최숙현은 투신 전날 대한체육회로부터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식의 대답을 들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최숙현이 받았을 절망감은 얼마나 컸을까. 용기를 냈지만 그 용기가 거절당했을 때의 고통은 가늠할 수 없다. 이제 최숙현을 통해 용기를 가지는 이들이 일어설 때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등은 더 이상 바보같이 외면하고 공무원적인 마인드로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대해서는 안된다.

피해자는 용기를 내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고 장막을 치워 비밀을 드러내야하고, 이를 해결해줄 수 있는 곳은 더 이상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 잠시 주목받고 끝나서는 곤란하다. 이번을 통해 완전히 뿌리뽑혀야 최숙현의 억울함이 1%라도 풀리지 않을까.

TVN

-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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