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상은 그 대회, 시상식의 권위와 위상, 신뢰도를 나타낸다.

미국 영화가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신뢰를 받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기 때문이다. 축구매체 프랑스 풋볼이 인정받는 것은 ‘발롱도르’라는 세계 최고의 축구 시상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매해 공중파 3사 시상식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제 식구 나눠주기, 상 퍼주기 때문이고 어느새 연말 시상식은 그들만의 잔치가 됐고 시청률은 수직 하락하고 있다. AFC 올해의 선수상이 그 어떤 대륙의 올해의 선수상보다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시상식날 참가하지 못하는 선수에게 상을 주지 않는 말 도 안되는 규칙 때문이다(박지성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 수상 0회).

2018시즌부터 프로축구연맹은 시즌 종료 후 열리는 시상식에서 기자단 투표 100%로 선정된 주요상들을 선수단과 감독들의 의견까지 반영하는 방식으로 바꿔 축구계 내부에 큰 호응을 얻었다. 치우칠 수 있는 기자단 투표만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투표 방식은 더 공정한 시상식을 만들었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해야할 점은 있다. K리그는 총 38라운드(2020년은 27라운드)가 진행되고 매라운드 종료 3일 안에는 라운드별 MVP와 베스트11을 선정한다. 하지만 어떤 기준에서 선정됐는지 모를 결과가 나와 상의 권위와 연맹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곤 한다.

이청용(왼쪽)과 송범근. ⓒ프로축구연맹
▶다소 이상한 2020 개막 라운드 베스트11 선정

프로축구연맹은 지난 13일, 2020 K리그1 개막 라운드(1라운드) 베스트11과 라운드 MVP를 발표했다. 포지션별 선정된 선수 중 전북 현대 송범근이 라운드 최고 골키퍼로 선정됐다.

하지만 송범근은 수원 삼성과의 개막전에서 단 하나의 유효슈팅을 막은게 전부였다. 전반 19분 수원 타가트가 수비라인을 깨고 스루패스를 이어받아 왼발 슈팅을 했고 송범근이 넘어지며 멋지게 선방해냈다.

그러나 알고보니 이 슈팅전 타가트가 오프사이드를 범했었고 선심의 깃발이 올라갔다. 하지만 주심은 이미 전북의 공이 됐기에 오프사이드 선언 없이 넘어갔기에 유효슈팅이 인정됐다. 만약 송범근이 이 슈팅을 막지 못해 골이 됐다 할지라도 오프사이드가 선언돼 VAR을 통해 노골로 인정됐을 상황이기에 90분 전체 흐름으로 볼 때 크게 중요하지 않은 상황의 슈팅이었다.

이날 수원은 전북을 향해 5개의 슈팅을 했고 유효슈팅은 이 타가트의 것이 전부였다. 결국 송범근은 골이 됐어도 VAR로 취소됐을 슈팅을 막고 개막 라운드 최고 골키퍼로 선정된 것이다.

송범근과 반대의 경우도 있다.

9일 울산 현대와 상주 상무전 이후 팬들과 언론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이청용의 이름은 베스트11에 없었다. 모두가 극찬을 마다하지 않고 뛰어난 활약을 했다고 평가받은 이청용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청용은 공격포인트가 없었고 공격포인트가 있는 다른 선수들에게 밀려 라운드 베스트11에도 선정되지 못했다.

아이러니한 두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인천 유나이티드와 대구FC의 경기에서 인천은 경기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대구의 13개 슈팅 중 7개의 유효슈팅을 모두 막아낸 정산 골키퍼 덕에 0-0 무승부를 거뒀다. 팀은 고작 3슈팅에 유효슈팅 하나 때리지 못했어도 정산 골키퍼가 있었기에 승점 1점을 따낼 수 있었던 인천이었다. 골이 됐어도 취소됐을 유효슈팅 하나를 막고 베스트11 골키퍼에 선정된 송범근보다 더 팀에 기여하고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프로축구연맹 측은 “골키퍼를 무실점이나 단순히 유효슈팅을 몇 회 막았느냐로 평가하진 않는다. 수비진에 영향을 주고 라인을 잘 조정한 것도 평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 지표’도 중요하게 여긴다면 이청용은 누가 봐도 라운드 MVP, 못해도 라운드 베스트11에 들어갈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이청용이 베스트11에 선정되지 않은 것은 결국 공격포인트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2020 K리그1 개막라운드 베스트11. ⓒ프로축구연맹
▶최근 2년간 K리그1 라운드 MVP 분석 ‘76번 중 5번만 골 없이’

프로축구연맹에 따르면 라운드 베스트11 선정하는 방식에 대해 ‘1.경기감독관이 당일 경기를 관전하며 양팀 선수 평점 작성, 2.라운드 종료 후 경기평가회의 진행(포지션별 가장 활약이 높았던 선수 선정, 주료 경기별 MOM중 라운드 MVP 선정), 3.배점 기준과 실제 경기 활약상, 경기 기록을 참고 한다’고 한다. 선수 평점의 경우 공헌도 50%, 포지션 수행능력 20%, 기술 순력도 20%, 경기매너 10%로 평점 4점부터 10점 만점으로 평가된다.

스포츠한국은 최근 2년(2018, 2019)간 K리그1 라운드 MVP에 선정된 선수들을 모두 체크했다. 여기에서 골을 넣지 못한 선수가 라운드 MVP에 선정된 경우는 2018년 3회, 2019년 2회밖에 없었다.

2018년은 9라운드 수원 삼성 이기제가 2도움을 기록했고 37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 이창근 골키퍼가, 38라운드 상주 상무 윤빛가람이 1도움을 기록해 골없이 라운드 MVP를 탔다.

2019년에는 9라운드에 울산 현대 김태환이 2도움을, 21라운드 대구FC 골키퍼 조현우가 MVP를 탄 바 있다. 즉 골키퍼를 제외하곤 골을 못 넣으면 도움이라도 해야 라운드 MVP가 그나마 가능한 것이다.

2018년 38번의 라운드 MVP중 골을 넣은 선수가 MVP에 선정된건 35회에 달했고 2019년에는 38번의 라운드 MVP 중 36번이 골 넣은 선수가 MVP를 탄 것이다다. 2년간 총 76회 중 71회가 골 넣은 선수가 라운드 MVP를 탄 것이다.

결국 골을 넣지 못하면 라운드 MVP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렇게 되면 골을 넣는 포지션인 공격수와 공격 쪽 미드필더를 제외한 수비수, 골키퍼 포지션은 선수 커리어를 길게 가져가도 라운드 MVP에 뽑히지 못한채 선수생활을 마칠 수도 있다.

2018년 전북 현대 이용이 아주 좋은 예다. 당시 이용은 시즌 종료 후 K리그 시즌 MVP 최종후보에 올랐고 전체 MVP 투표 2위에 올랐다(경남FC 말컹 MVP 수상).

하지만 이용은 재밌게도 2018시즌 단 한번도 라운드 MVP를 수상하지 못했었던 선수였다. 라운드 MVP를 한 번도 못 받은 선수가 시즌 MVP 투표 2위에 올랐고, 시즌 MVP를 할 뻔한(말컹 55.04점, 이용 32.13점) 매우 엽기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2018년 이용의 모습. ⓒ프로축구연맹
▶골 넣어야만 MVP? ‘진짜’ MVP에게 MVP를

물론 축구의 꽃은 ‘골’이다. 골이 들어가야 승부가 나고 골을 보기위해 팬들은 경기장을 찾는다. 골 없이 축구의 존재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골이 전부가 아니다. 현대축구는 골만 넣는 선수에 대한 가치가 바닥을 치고 있다. 팀플레이, 수비, 전술 이해도, 패스 등 수많은 요소를 갖춘 선수를 최고로 친다. 리오넬 메시를 단순히 골을 많이 넣었다고 세계 최고로 여기는 것이 아니다.

지난 1월 열린 AFC U-23 챔피언십에서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3대표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MVP는 수비형 미드필더인 원두재가 선정됐다. 원두재는 대회 내내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하지만 대표팀 중원의 핵심으로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고 대회 MVP에 선정되자 축구계는 물론 팬들이 보기에도 ‘정말 MVP받을 선수가 받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0골의 원두재에게 MVP를 수여한 것만으로 AFC U-23 챔피언십 대회의 신뢰성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 AFC U-23 챔피언십 대회 MVP에 선정된 '0골'의 원두재. 연합뉴스 제공
반면 2019 KEB 하나은행 FA컵에서 수원 삼성의 이임생 감독과 고승범이 대회 감독상과 MVP를 수상해 의문을 낳은 바 있다. 수원은 당시 4부리그인 화성FC, 3부리그인 대전 코레일과 맞붙는 천운이 따르는 대진표에도 정말 힘겹게 우승을 차지했다. 고승범은 FA컵 대회 내내 단 2경기만 출전했고 1경기는 종료 14분을 남기고 교체투입된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임생 감독과 고승범이 감독상과 MVP를 받으며 오히려 대회의 권위가 상실됐다. 3부격인 내셔널리그 팀을 이끌고 결승까지 오른 대전 코레일 김승희 감독이 더 감독상에 맞았고 5골이나 넣고 대회내내 맹활약을 했던 수원 염기훈이 ‘대회 MVP’에 알맞을지도 모른다. 고승범은 결승 2차전 2골을 넣은 ‘결승전의 영웅’이지만 ‘대회 MVP’를 받기에는 대회 내내 활약도가 없었다.

왜 한국의 FA컵이 그저 ‘우승하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티켓이 주어지는 대회’로 여겨지고 ‘아마추어와 프로를 통틀어 최강팀을 가리는 대회’라는 취지가 퇴색됐는지는 상을 어떻게 주고, 그 상을 어떻게 협회에서 대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상은 그 대회, 시상식의 권위와 위상, 신뢰도를 나타낸다. 평생을 바쳐 축구를 한 선수들에게 세월이 지나 흘러가는 한 경기일지라도, 그 경기에서 매우 잘해 라운드 베스트11, MVP를 받은 것은 평생의 훈장이며 자랑이다.

한 선수는 “정말 잘해서 기대했던 라운드들이 있는데 이름값있고 상위권팀의 선수들이 받아가더라”라며 한숨섞인 푸념을 했다. 한 시즌 정말 뛰어난 활약을 펼쳐 시즌 베스트11 수상이 기대됐지만 이름값에 밀려 시상식에서 박수만 치고 돌아간 선수들도 많다.

상을 만들었고 그 상에 신뢰성과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정말 잘한 선수가 베스트11과 MVP를 받게 하면 된다. 매우 간단하지만 어려운 일을 위해 대회사부터 노력해야 한다.

ⓒ대한축구협회

-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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