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스포츠의 진정한 미학은 ‘순간’에 있다. 찰나와 같은 순간에 ‘조금만 더 길었다면, 빨랐다면’과 같은 아쉬움이 들게하는 플레이들이 쌓이고 쌓여 스포츠의 위대함을 만든다.

스포츠의 또다른 재미는 ‘각본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와 장면으로 인해 감동 혹은 절망으로 팬들을 들었다놨다한다.

여기 단 한 순간, 한 번의 장면으로 인해 각본 없는 스포츠의 재미 혹은 절망을 만든 이들이 있다. 딱 한 번만 넘어갔다면 역사를 쓸 수 있었지만 그 고개를 넘지 못했기에 회자되는 이들을 만나본다.

김동성의 날내미기. KBS
▶2011 텍사스 레인저스

130년이 넘는 미국프로야구(MLB) 역사상 가장 안타깝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놓친 팀이 있다면 텍사스 레인저스다.

2011년 텍사스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한 이후 포스트시즌에서 승승장구하며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상대는 90승으로 포스트시즌 진출팀 중 최저 승률로 올라와 내셔널리그 챔피언을 차지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텍사스는 1승2패 이후 내리 2연승을 하며 3승2패로 7전 4선승제 월드시리즈 우승에 단 1승만 남겨둔채 6차전에 돌입한다. 4-4로 맞선 7회초 3득점에 성공하며 7-4까지 앞서자 텍사스의 우승이 유력해 보였다. 8회말 1실점했지만 여전히 7-5로 앞선채 9회말에 돌입한다.

9회말 텍사스는 32세이브의 마무리 투수 네프탈리 펠리즈가 올랐다. 선두타자 삼진 후 2루타-볼넷을 맞으며 흔들렸지만 이어진 타자를 삼진으로 잡으며 이제 월드시리즈 우승에 단 아웃카운트 1개만 남겨둔 텍사스였다.

펠리즈의 상대 타자는 데이빗 프리즈. 프리즈에게 초구 볼넷을 줬지만 연속해서 스트라이크를 잡아내며 볼카운트 1볼 2스트라이크가 됐다. 텍사스 우승에 딱 스트라이크 하나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바로 그 장면. ⓒAFPBBNews = News1
하지만 펠리즈가 던진 4구째 패스트볼을 프리즈가 밀어쳤고 이 공은 담장을 직격 하는 3루타가 된다. 루상에 있던 주자 두 명이 홈플레이트를 밟기는 충분했다. 결국 7-5로 앞서며 스트라이크 단 하나만 남겨뒀던 월드시리즈 우승이 7-7 동점으로 무산됐다.

이후 텍사스는 연장 10회초 2득점을 했지만 10회말 1실점 후 2사 3루에서 또 스트라이크 하나만 남겨둔 2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투수 스캇 펠드만이 이번에는 랜스 버크만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하며 9-9 동점을 내준다.

결국 11회말에 9회말 2타점 동점 3루타의 주인공 프리즈가 끝내기 홈런을 때리며 텍사스는 패하고 말았다.

텍사스는 7차전에서 무기력하게 2-6으로 패하며 4승째를 내주고 월드시리즈 우승에 실패한다. 6차전 무려 두 번의 ‘스트라이크 하나만 잡으면 우승’의 기회를 잡고도 우승을 놓친 것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텍사스가 1961년 창단 이후 지금까지도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는 팀이라는 점이다. 메이저리그 30개팀 중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한 6팀 중 가장 오랫동안 우승이 없는 팀(59년째)이다. 2011년 이후 텍사스가 월드시리즈를 나가본 적이 없기에 지금까지도 텍사스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잡지 못한 스트라이크’가 된 셈이다.

ⓒAFPBBNews = News1
▶김동성과 전이경, ‘날 내밀기’로 역전 금메달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1000m 남자 결승에는 김동성, 여자 결승에는 전이경이 올랐다.

김동성은 명승부를 펼치다 막판까지 중국의 리자준에게 밀려 2위를 달리고 있었다. 마지막 결승선을 앞두고 코너를 돌았을때도 2위였기에 이대로 금메달이 물 건너가는가 했다.

하지만 김동성은 몸은 뒤에 있었지만 오른발 스케이트 날을 쭉 내밀었고 리자준보다 몸은 늦어도 스케이트날이 먼저 결승선을 들어왔다. 쇼트트랙에서는 스케이트 날이 들어오는 것으로 순위를 매기기에 김동성의 역전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스케이트 날을 내밀었기에 0.0053초 차 금메달이었던 것.

전이경 역시 비슷한 금메달을 따냈다. 1000m 결승에서 2위로 마지막까지 달리다 결승선 앞에서 중국의 양양S보다 몸은 늦었지만 거의 넘어지며 스케이트 날을 내밀었고 결국 0.0057초차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중국 입장에서는 두 번 연속이나 한국 선수에게 날 내미기로 인해 목에 거의 걸었던 금메달을 내준 셈이니 속이 터질 수밖에. 반면 한국은 1992 동계올림픽부터 시작돼 아직은 다소 생소했던 쇼트트랙이 지금까지 효자종목이자 전국민적 인기를 끌게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과 전이경의 ‘날 내밀기’가 준 짜릿함이었다.

▶‘마지막 코너킥’에 갈린 역사

2013~2014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레알 마드리드간의 ‘마드리드 더비’ 결승으로 열린 경기에서 전반 36분 아틀레티코의 수비수 에딘 고딘이 헤딩골을 넣으며 1-0으로 앞서간다.

세계 최고의 수비력을 가진 아틀레티코 입장에서 한골을 버티는 것은 해볼만 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끌던 레알은 어떻게해서든 동점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틀레티코의 벽을 넘지 못했다.

ⓒAFPBBNews = News1
그렇게 아틀레티코의 1903년 창단 이후 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눈앞에 다가온 듯 했다. 111년만에 우승을 단 1분만 남겨둔 후반 추가시간 4분.

이미 추가시간 5분이 주어졌기에 남은 시간 단 1분이며 이 코너킥만 막고 걷어내면 그대로 종료 휘슬이 울릴 것이 확실시됐다.

레알 마드리드는 루카 모드리치가 코너킥을 감아올렸고 이 공이 공격에 가담한 라모스의 머리로 향한다. 라모스를 막는 수비수가 순간 없었고 라모스는 홀로 뛰어올라 정확하게 헤딩슛을 했고 버티고 버티던 아틀레티코의 골문이 열리고 말았다.

추가시간 1분을 남겨둔 마지막 플레이에서 동점골이 터진 것이다. 황망한 아틀레티코는 연장전 내리 3골을 내주며 전의를 상실해 준우승에 머무르고 만다.

결국 111년만에 우승이 날아갔고 지금까지도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없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2002년이후 무려 12년만에 ‘빅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챔피언스리그 3연패의 역사를 쓸 수 있었다.

아틀레티코 입장에서는 단 한번을 버티지 못해 111년의 염원이 날아갔고 레알 입장에서는 새로운 역사로 가는 시작이었던 1분인 셈이다.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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