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세계 최고의 야구 무대인 메이저리그의 현역 감독 세명이 동시에 날아갔다. 당사자인 A.J 힌치 휴스턴 애스트로스 감독, 당시 코치로 있었던 알렉스 코라 보스턴 레드삭스 감독, 그리고 당시 선수로 있었던 카를로스 벨트란 뉴욕 메츠 감독이 휴스턴발 ‘사인 훔치기 스캔들’로 인해 해고 됐다.

현역 감독 세명이 날아간 것은 물론 우승 박탈 외에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징계까지 내려진 사인 훔치기 스캔들은 야구계를 넘어 스포츠 전체에 큰 충격을 던졌다.

사인훔치기 스캔들로 자리를 잃은 휴스턴 A.J 힌치 감독(왼쪽)과 제프 르나우 단장. ⓒAFPBBNews = News1
▶전자기기로 사인 훔치고 우승… 현역 감독 셋 날아갔다

휴스턴에서 뛰었던 투수 마이크 파이어스가 ‘2017년 휴스턴이 조직적으로 사인 훔치기를 했다’고 폭로했다. 휴스턴은 외야 카메라에서 상대 포수의 사인을 훔친 후 덕아웃에서 휴지통을 쳐 타자에게 속구인지 변화구인지 등을 알려준 것이다.

그동안 2루주자가 포수 사인을 훔치거나 투수나 포수의 버릇을 간파해 구종과 코스를 예측하는 것은 용인됐지만 이렇게 전자기기를 활용해 조직적으로 사인을 훔쳤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큰 파장이 일었다.

결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조사를 나섰고 지난 1월 중순, 제프 르나우 휴스턴 단장과 A.J. 힌치 감독에게 1년간 자격정지를 내렸다. 휴스턴은 이들을 해고했다.

사무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20, 2021년 2년간 신인 드래프트 1, 2라운드 지명권을 박탈했고, 메이저리그 규정상 최대 벌금인 500만달러(약 60억원) 징계를 내렸다.

사실상 우승박탈이라는 최고 수위 징계를 빼고는 매우 강력한 징계가 내려진 것이다. 자연스레 2017년 당시 휴스턴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인물들의 입지도 곤란해졌다.

보스턴의 코라 감독은 2017년 휴스턴 벤치 코치로 사인 훔치기에 결정적 역할을 했기에 보스턴 역시 코라 감독을 해고했다.

또한 선수 은퇴 후 처음으로 감독을 맡은 명예의 전당급 선수인 벨트란은 당시 휴스턴 선수로 활약해 사인 훔치기에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 역시 뉴욕 메츠에서 해고됐다. 벨트란은 감독으로 단 한경기도 치러보지 못한채 부임 후 해고라는 불명예를 떠안았다.

▶휴스턴의 뻔뻔함과 고통 받는 내부고발자… 부조리 사회의 축소판

사인 훔치기 당사자인 휴스턴의 태도가 오히려 팬들에게 더 큰 허탈감을 줬다. 사인 훔치기 보도가 처음으로 나온 후 르나우 단장은 “어차피 팬들도 구단들이 사인 훔치는 건 다 아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가 큰 비난을 받았다.

팀의 핵심 선발 투수인 저스틴 벌랜더는 사이영상을 받은 후 “휴스턴은 기술적으로, 분석적으로 진보해있다”고 말해 뻔뻔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내부고발자인 파이어스에 대해서도 휴스턴 선수들은 ‘배신자’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핵심 타자인 카를로스 코레아는 “우리가 한 팀이었기에 이런 발언을 한 것이 놀라웠다”며 비난했고 댈러스 카이클 역시 “클럽하우스의 일이 밖으로 공개됐다는 점에서 기분 나쁘다”고 언급했다.

만약 파이어스가 실명을 밝히지 않고 내부고발을 했다면 이정도로 큰 파장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 뛰었던, 그리고 현역 메이저리거가 직접 내부고발을 했기에 사인 훔치기에 대한 신뢰성과 심각성이 더욱 각광을 받았다.

내부고발자는 외부에서는 환영받지만 내부에서는 ‘배신자’ 취급을 당하며 비난받기 일쑤다. 메이저리그 역시 또 다른 사회이기에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셈이다.

내부고발자 파이어스는 고통 받고 있다. 팬 행사에서 계속되는 사인 훔치기 관련 질문에 “제발 지금은 야구, 야구, 야구에 대한 질문만 해달라”며 힘들어했다.

ⓒAFPBBNews = News1
▶어디까지 사인훔치기인가… 잘 던진공 홈런치면 의심될 현실

이번 사인 훔치기 스캔들은 여러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당연히 휴스턴이 전자기기를 활용해 조직적으로 사인을 훔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반칙’이다. 하지만 이미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이 보급화되고, 전자기기의 발전에 비해 스포츠 내에서 이를 제지할 관련 규정이 명확하지 않았던 약점이 드러난 사건이기도 하다.

또한 사인 훔치기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곱씹을 필요도 있게 됐다. 2루주자가 포수 사인을 훔치고, 상대가 내는 사인을 읽는 행위에 대해서는 ‘알면서도 넘어가는’ 사인 훔치기 행위로 유명하다.

‘훔친 것보다 훔쳐진 게 바보’라는 게 현장의 말이다. 하지만 이외에 경기 중 쪽지로 작전이나 사인을 전달하거나, 무선 장치를 통해 벤치와 소통하는 등 사인 훔치기 혹은 전자기기를 어디까지 스포츠 경기 중에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의논은 더 필요하다.

이번 사인 스캔들로 인해 가장 큰 문제는 앞으로 경기를 ‘마음 놓고’ 볼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투수가 정말 좋은 코스로 최고의 구종을 던졌을 때 타자가 이 공을 홈런을 때려내며 예전에는 ‘정말 잘 쳤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제부터는 ‘사인 훔친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게 됐다.

이번 휴스턴의 사인훔치기 스캔들은 기술 발전으로 인한 전자기기 사용에 대해 스포츠가 한번쯤은 짚고 넘어갔어야할 문제에 대해 논의의 장으로 삼을 필요도 있다. 스포츠의 최고 매력은 ‘각본없는 드라마’라는 점이다. 사인을 안다는 것은 각본을 혼자 알고 나서는 드라마와 같다. 팬들에게 신뢰받고 계속해서 각본없는 드라마를 써내려가기 위해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계속 보이는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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