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집에 없어도 음성인식으로 집안의 기기들을 작동시키고 저 멀리 브라질의 조그만 상점에서 파는 옷도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으로 크로아티아 2부리그 경기 영상도 찾아볼 수 있는 최첨단의 2019년.

이 2019년에 대한축구협회 출입기자단이 모였다. 급하게 소집되느라 30여명만 모였고 한 장소에서 모두 같이 SD보다 못한 저화질의 4:3 비율의 80년대식으로 찍힌 이틀전 축구 영상을 봤다.

ⓒ대한축구협회
기자단 내부에서도 ‘우리가 이러고 있는게 웃기다’라고 말할 정도로 말도 안되는 상황이 실제로 펼쳐졌다.

땡전뉴스때나 볼법한 상황을 2019년에 취재하고 있는 한국 축구기자들의 처지야말로 80년대식 표현으로 ‘유우머’같았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취재를 하는 기자들의 모습이 해외토픽감이 아니었을까.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15일 오후 5시 30분 북한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H조 3차전 북한과의 원정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뒀다.

축구대표팀은 17일 오전 귀국해 해산했다. 북한에서 중계를 허용치 않아 방송이 불발돼 간단한 경기상황만 전달됐을 뿐이었다.

이에 대한축구협회는 17일 오후 취재기자단에만 북한을 통해 받은 경기영상을 취재목적으로 상영했다. 상영 1시간 반 전에야 급하게 공지됐기에 이날 자리에는 약 30여명 모자라는 기자들만 참석했다.

상업적 이용이 되지 않고 영상의 사용범위도 불분명했기에 취재기자들만 볼 수 있는 이 영상을, 즉 축구대표팀의 북한 원정을 실제로 본 사람이 3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단히 경기내용을 요약하면 북한은 경기 초반부터 매우 거칠고 강한 전방압박을 했고 이에 당황한 한국대표팀은 전반전 가히 최악의 경기력을 보였다. 유효슈팅 하나 때리지 못했다. 북한은 후반들어 체력이 떨어진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물러나지 않고 계속 전진하고 투박하지만 위협적인 공격을 했다. 한국은 후반들어 공을 점유하고 만들어가는 축구를 하려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결국 0-0으로 승리하지 못했다.

취재기자단 30여명만 이 경기를 보는 상황 자체가 황당했다. 북한은 무슨이유에서인지 중계를 불허했고 한국은 전혀 여기에 힘을 쓰지 못한채 북한에 끌려다녔다. 심지어 영상을 받아와서도 이 영상을 어떻게 어디까지 쓰면 될지 북한에 다시 물어봐야할 정도로 힘이 약했다.

물론 축구협회는 이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약 6분 가량의 하이라이트 영상은 홈페이지를 통해 배포했다. 하지만 90분 풀영상이 아닌 6분짜리로 편집된 영상밖에 볼 수 없는 것도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대한축구협회
최첨단의 기술 진보를 이룬 2019년에 마치 1980년대급 화질의 영상을 제한된 사람만 모여서, 그것도 이틀전에 열린 경기영상을 본다는 황당한 상황 자체가 해외토픽감이다. 외신이 이날 기자단을 취재했다면 재밌는 해외토픽으로 전세계에 알려졌을만한 일이다.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축구, 그것도 대표팀 축구에서 북한과의 경기를 모두가 볼 수 없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 그리고 북한의 비상식적인 대응에 대체 어떤 리액션을 하는지조차 알기 힘든 상황은 취재기자들조차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취재였다.

이날 경기영상을 보러 온 한 취재기자는 ‘살다살다 이런 취재를 해본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덕분에 한국 축구 기자들은 전세계 어느기자들도 해보지 못한 특이한 취재를 해본 경험을 쌓게 됐다.

-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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