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대한민국은 예능 하나면 다 된다. 무명의 배우, 언더그라운드 가수가 주목도가 큰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면 순식간에 유명 인사가 된다.

화제가 되는 순간,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오르고 동시에 관련 기사가 홍수처럼 쏟아진다. 어제는 평범했던 이가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스타가 된다.

예능이 갖고 있는 파급력과 힘은 상상 이상이다. 기업에서는 앞다퉈 예능 프로그램 전후에 광고를 끼워 넣고 자신들의 제품을 PPL(간접광고)을 통해 자연스럽게 노출시킨다. 이처럼 예능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각 방송사의 경쟁 역시 점점 과열되는 추세다.

기존 공중파에 이어 이제는 종편까지 예능의 비중을 크게 늘리면서 시장 자체의 파이는 상당히 커졌다. 각 방송사 예능국에서는 시청률이 보장되는 스타 모시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새로워야 한다. 익숙한 얼굴이 자주 나오면 식상하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도 매번 비슷한 느낌이면 시청자에 어필하지 못한다.

방송사는 신선한 얼굴, 그러면서도 예능에 적합한 인물을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기존 주류였던 개그맨 중심에서 벗어나 배우나 가수, 심지어 프로그램 작가나 스타들의 매니저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스포츠인들이 예능에 출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스포츠인의 경우,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는 이들과 달리 예능에서 자리를 잡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대세 중의 대세가 되어 예능 프로그램 섭외 1순위 목록에 이름을 올린다. 스포츠인의 예능 사냥, 이들은 어떻게 예능인이 됐을까.

김동현. 스포츠코리아 제공
경계를 넘나드는 스포츠 스타, 예능에서도 존재감 '갑'

스포츠 스타에서 연예인이 된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강호동이다. 씨름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80~90년대, 강호동은 당대 최고의 스타인 이만기를 제압하고 천하장사가 됐다. 어린 나이에 전 국민이 모두 아는 스포츠 스타가 됐지만, 그는 은퇴 후에 씨름이 아닌 연예계로 진출했다.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개그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대중의 웃음을 자아내는 캐릭터를 시작으로 점점 그 영역을 확대했고 스포츠인 특유의 넘치는 끼와 박력, 카리스마와 앞세워 예능을 주도하는 역할로 성장했다. '1박 2일'이나 '무릎팍 도사' '스타킹'에 이어 '아는 형님'까지 스포츠인 출신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예능인이 된 이가 바로 강호동이다.

2002년 월드컵 신화의 주인공인 안정환 역시 스포츠인이자 예능에서 자리를 잡은 인물이다. 일단 외모에서 받는 점수가 높다. 여기에 덤덤한 말투와 간간히 터지는 입담은 보는 이로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마이리틀텔레비전' '아빠! 어디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친근한 이미지가 더해졌고 '냉장고를 부탁해' 등에서는 MC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안정환이 보여주는 예능에서의 신선함을 오히려 극대화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해설이다. 월드컵이나 국가대표 축구 중계에서 안정환의 해설을 보고자 채널을 바꾸는 이도 상당하다. 이전 스포츠 스타들의 어설픈 해설, 거슬리는 발성이나 어휘 사용에 비해 안정환은 전문성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내며 그 매력을 더욱 크게 키웠다.

최근에 스포츠 스타 중에서 대세로 떠오른 것은 서장훈이다. 국보급 센터라는 별명과 함께 한국 농구 최고의 스타로 활약했던 서장훈은 특유의 날카롭고 차갑고 반항적인 이미지가 오히려 예능에서 확실하게 통했다. 그저 보여주기 식의 따뜻한 말이 아닌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라는 특유의 멘트는 보는 이로 하여금 통쾌함을 선사한다.

'무한도전'을 시작으로 '동상이몽' '너는 내 운명'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기존 예능인과 다르게 매우 직설적으로 말을 쏟아내며 동시에 '아는 형님'에서는 농구선수로의 최고의 강점이었던 207cm라는 큰 신장을 무기 삼아 콩트를 하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잡기도 했다.

매서운 이미지를 갖고 있던 이종격투기 UFC 웰터급 랭킹 10위에 올랐던 김동현은 오히려 예능으로 와서는 매번 서툴고 망가지고 바보 같은 이미지로 탈바꿈하면서 흔히 말하는 'B급 개그'로 승화, 개그맨과 어울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스포츠인 예능 신성으로 떠올랐다. 배구여제 김연경 역시 '나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특유의 털털함과 반전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인기를 몰고 있는 '뭉쳐야 찬다'는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스포츠 전설들이 한 자리에 모여 조기축구팀을 결성, 새롭게 도전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이다.

이만기, 허재, 양준혁, 이봉주 등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스타들이 다른 종목에서 보여주는 엉성함, 그 사이에서 터지는 허당 넘치는 이들의 몸 개그와 아웅다웅 다툼은 유치하지만 계속 보게끔 만드는 매력이 있다. 최근 시청률은 무려 7.6%까지 오르면서 같은 날 비지상파 프로그램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안정환.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와 예능, 이름은 달라도 세계는 비슷해

그렇다면 왜 스포츠 스타들이 예능에서도 주목을 받는 이유는 뭘까. 한 예능 프로그램 PD는 안정환을 놓고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추는 능력이 뛰어나며 필요한 멘트를 언제 적재적소에 해야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지 순발력까지 갖춘 MC다"라고 이야기한다. 선수 특유의 순발력과 빠른 상황 판단은 예능이라는 종목을 새로운 스포츠로 생각하고 적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능력이다.

꾸미지 않은 순수한 모습, 여기에 기존 예능인들에 비해 이미지 소비가 적기 때문에 신선하다. 유니폼에 익숙했던 선수의 모습에서 일상에서 보여주는 평범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롭다는 느낌을 준다. 스포츠 특유의 단체 생활에서 비롯된 협동심이나 승부 근성은 예능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또한 태생적으로 끼가 넘치고 대중의 시선을 끄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안다. 상대적으로 준수한 외모와 신체적 우위에서 오는 특별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언론과 방송을 대하는 방식도 기존 스포츠 스타로 활약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했기에 낯설지 않다.

각 분야의 정점을 찍은 인물이기에 결코 가볍지 않다. 예능에서는 어설픈 웃음 제조기지만, 자신의 종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다시금 전문가가 된다. 동시에 이전 선수 시절의 추억을 끄집어내면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스토리텔링까지 가능하기에 재미와 감동, 모두를 챙길 수 있다.

여기에 전성기가 짧고 그 생명력이 길지 않다는 점도 스포츠와 예능의 공통점이다. 2019년 현재, 한국 예능은 말 그대로 스포테이너(스포츠와 엔터테이너의 합성어)의 시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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