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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대구=윤승재 기자] 지난 6월에 열렸던 프랑스 여자월드컵은 한국 여자축구 역사에 있어서 가장 기대가 되는 대회였다. 지소연(29.첼시)과 조소현(32.웨스트햄) 등 유럽 무대를 누비는 베테랑 선수들과 2010년 U-17 월드컵 우승 세대 선수들이 함께 모인 한국 여자축구의 황금기를 이끄는 선수단이 꾸려졌기 때문.

이민아(29.고베아이낙) 역시 그 중간 세대에서 큰 각광을 받았다. 처음에는 예쁜 외모로 주목받았지만, 빠른 스피드와 수준급의 기술로 자신의 경쟁력을 스스로 증명하면서 국가대표 에이스 자리까지 올랐다. 더불어 이민아는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 지소연과 함께 공격의 한 축을 담당할 한국 여자축구의 미래로 주목받았다.

황금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함께 뛰는 월드컵이기에 어느 때보다 기대가 컸다. 무엇보다도 베테랑들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이 될 확률이 높았기에 이 대회에 큰 기대가 모아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유럽의 강호 프랑스(당시 FIFA 랭킹 3위)와 아프리카 복병 나이지리아(39위) 등과 한 조에 묶인 여자축구 대표팀(14위)은 세계 축구의 높은 벽만을 실감한 채 조별리그 3전 전패(1득점 8실점)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생애 첫 월드컵이었던 이민아에게도 아쉬움이 가득했던 대회였다. 2017 E-1 동아시아컵과 2018 아시안게임 등을 통해 국가대표 에이스로 부상한 이민아지만, 정작 월드컵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부여받지 못했다. 수비에 집중한 전술에 피지컬이 강한 유럽.아프리카 팀들을 상대로 체격이 작은 이민아가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윤덕여 감독의 고민이 영향을 끼쳤다.

이민아는 2차전 나이지리아전을 빼고는 모두 후반에 교체 투입됐다.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펼치기에는 다소 부족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비교적 경쾌했고, 그의 플레이는 팀 전술에 작게나마 변화를 주기 충분했다.

그러나 겉에서 보이는 움직임과는 달리, 오히려 이민아는 당시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밸런스가 완전히 깨진 상태였다”라고 회상했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져 온 햄스트링 부상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앉지도 못하는 최악의 몸상태로 대회에 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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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악물고 버틴 이민아, “너무 아파서 축구 그만둘 생각까지”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강행군이 그의 부상을 더욱 악화시켰다. 올해 1월에야 2018시즌을 마무리한 이민아는 중국(1월)과 호주(2,3월) 친선 대회에 소집돼 대표팀 일정을 소화했고, 이후에는 리그 일정과 대표팀 일정을 병행하면서 월드컵을 준비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절대적인 휴식이 필요한 햄스트링 부상이었지만, 별다른 휴식기 없이 강행군을 이어온 탓에 부상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민아의 사명감도 오히려 그의 부상을 악화시켰다. 월드컵 전부터 이민아는 “월드컵에서 반드시 좋은 성적을 거둬서 여자축구의 인기를 끌어올리고 싶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하지만 이런 책임감 속에 이민아는 부상 중에도 꾹 참고 뛰어다니며 자신을 혹사시켰고, 이는 결국 그의 부상을 악화시켰다.

“이제 솔직히 얘기하는 거지만 그 때는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여서 집에서 펑펑 울었어요. 계속 아프니까 ‘이 다리로 축구를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축구를 그만 둘 생각까지 했죠. 하지만 월드컵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꾹 참았어요. 그런데 너무 욕심을 많이 냈나 봐요. 너무 참다보니까 더 나빠지더라고요.”

아쉬웠던 월드컵을 뒤로 한 채 일본으로 돌아가 소속팀에 합류했지만 이민아는 더 이상 공을 찰 수 없었다. 더딘 회복 속도에 계속되는 고통으로 팀 훈련을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민아는 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받았고, ‘전치 4~6개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았다. 보통의 햄스트링 부상은 한 달 전후의 회복 기간을 필요로 하는데, 전치 6개월이 나왔다는 것은 그 정도로 이민아의 상태가 최악이었다는 것.

“저도 처음에는 못 믿었어요. 그런데 정말 심각했더라고요. 근육이 계속 찢어지면서 뼈에 자극을 줘서 멍이 들었대요. ‘내가 정말 미쳤구나. 얼마나 참았으면 이 정도까지 심해질 정도로 내버려뒀나’라고 생각이 들었죠.”

이민아는 인터뷰 때마다 대표팀의 사명감과 책임감에 대해 강조해왔다. 하지만 사명감이 부담감으로 이어지고,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부담감이 이민아의 부상을 악화시켰다. (사진=KFA)
◆ “부상으로 도움 못 돼 미안, 부진한 성적에 무관심으로 이어질까 걱정”

하지만 자신의 몸 상태가 최악으로 치닫는 와중에도 이민아는 한국 여자축구를 생각했다. 부상으로 팀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월드컵에서 좋지 못한 성적이 앞으로의 여자축구 미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 토로했다.

특히 이민아는 최근 AFC U-16 여자 챔피언십 대회를 치른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달했다.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대회에 나가야 할 어린 선수들이 언니들의 월드컵 성적 부진으로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출전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우리(성인 대표팀)가 잘 못해서 팬들의 실망이 여자축구 전체에 미치고, 어린 선수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것 같아 정말 미안해요. 후배들이 팬들의 관심을 받으며 활약하고 그 흐름이 성인팀까지 이어져야 여자축구가 발전하는 건데 우리가 역할을 제대로 못해준 것 같아 아쉬워요.”

(사진=윤승재 기자)
비록 월드컵은 아쉬운 성적으로 끝이 났지만 한국 여자축구는 새로운 출발선상에 놓였다. 이제는 조소현, 전가을 등 베테랑 선수 없이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이민아, 장슬기, 이영주 등 이제 30대를 바라보고 있는 중간 세대들이 그 중책을 맡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민아의 부상 회복에 한국 여자축구의 미래도 걸려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이민아는 소속팀의 배려 속에 장기 휴가를 받아 귀국한 상태다. 이렇게 긴 휴식은 처음이라 어색하다는 그는 12월 복귀를 위해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이민아는 그동안 자신이 짊어진 책임감을 잠시 내려놓고 차분히 복귀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먼 미래에 대한 목표는 없어요. 지금은 부상 회복밖에 생각 안 해요. 아직까지 통증이 느껴지는데 통증만 가시면 조금씩 재활을 하려고 해요. 일단은 12월 복귀가 목표지만, 조급해하다가 오히려 더 덧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엔 차분히 준비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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