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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영원한 것은 없다.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70~80년대 씨름의 인기는 남녀노소 성별을 가리지 않았다. 급기야 1983년 프로씨름이 출범하면서 그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슈퍼스타 이만기의 등장과 발칙한 강호동의 신선함까지, 민족과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씨름은 국민 스포츠가 됐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씨름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급격하게 위축됐다. 사라진 스타, 힘과 무게의 씨름이 대세가 되면서 지루해졌다. 줄어드는 관중은 신경 쓰지도 않았던 협회와 연맹의 밥그릇 싸움, 여기에 IMF 외환위기까지 겹치자 10개가 넘었던 프로 팀들이 하나 둘 해체됐다.

위기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방관했다. 순식간에 무너졌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프로스포츠라 불리는 야구에도 비슷한 바람이 분다.

스타플레이어의 부재, 파이 늘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현저하게 저하된 경기력, 툭하면 터지는 음주운전과 도박, 승부조작으로 얼룩진 선수들, 그리고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몸값에 비해 오만에 가까운 나 몰라라 팬 서비스까지.

지난 2016년 834만 관중을 시작으로 2017년 840만, 2018년 807만 명으로 3년 연속 800만 관중 기록을 이어온 KBO리그의 인기는 매번 상승세였다.

하지만 올해는 전혀 아니다. 작년에 비해 대략 100만 명이 줄었다. 9월 23일 기준, KBO리그를 찾은 총 관중은 698만 2962명에 불과했다. 급격한 관중 저하는 우려의 수준을 넘어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동안 승승장구하며 한국 프로스포츠 최고의 자리를 지켰던 야구가 1982년 출범 이후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 다들 보러 오겠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완벽한 착각이다.

스포츠 콘텐츠는 더이상 야구가 전부가 아니다. 볼거리가 너무 많다. 야구는 특별하지 않다. KBO와 각 구단,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있다. 말 그대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KBO리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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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콘텐츠인 경기력의 수준 저하, 프로야구 인기 몰락의 가장 큰 이유

위기의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핵심은 있다. 바로 경기력이다. 핵심 콘텐츠인 '경기력'은 종목의 성패 여부를 가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은 9전 전승의 금메달 신화를 이뤄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한국은 한 수 위라고 생각했던 미국과 일본을 만나서도 기죽지 않았다.

경쟁력 있는 야구를 보여준 대표팀 선수들은 리그로 돌아와 각자의 소속팀에서 활약을 이어가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최근 한국 야구는 이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혹자는 현 프로야구의 인기가 그때의 '10년짜리 베이징 약발'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예선 탈락에 이어 2018년 아시안게임까지, 한국 대표팀이 보여준 야구는 답답 그 자체였다. 리그를 중단하면서까지 최고의 선수를 꾸려서 나갔더니 사회인, 실업야구 수준의 대만과 일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너희가 프로냐' 이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실망스러운 경기력, 여기에 군 면제라는 민감한 사안이 화두에 오르면서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선수들은 죄인처럼 귀국했다. 선동열 대표팀 감독은 국정감사에 끌려갔고 책임을 지고 스스로 사퇴했다. 야구를 향한 시선은 차가워졌고 팬들의 마음에는 분노가 심어졌다.

시작부터 틀어진 2019시즌, 텅텅 빈 관객석을 탓하기엔 야구를 너무 못했다. 공인구 반발계수 조정으로 투고타저 현상이 두드러지자 선수들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이는 리그의 수준 차이로 연결이 됐다. 수준이 고르게 된 것이 아닌 실력의 극명한 부익부 빈익빈, 그 편차가 너무 심해졌다.

리그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롯데는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걸핏하면 실책을 범했고 툭하면 연패에 빠졌다. 개그 야구로 폄하된 롯데를 지켜본 부산 팬들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2017시즌 우승을 따냈던 KIA는 리그 최하위에 머물다가 감독이 사퇴하는 등 내홍을 겪었다.

작년 가을야구에 진출, 희망의 불씨를 살렸던 한화는 순식간에 하위권으로 추락했고 명가 삼성도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SK, 두산, 키움, LG까지 수도권 구단이 강세를 보인 반면, 전국구 인기를 과시하는 지방 구단의 몰락은 KBO리그의 흥행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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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스타와 높아진 팬들의 눈높이, 위기의 프로야구

인기 팀의 몰락도 몰락이지만, 항간에는 더딘 세대교체와 사라진 스타플레이어의 부재를 리그 수준 및 인기 저하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스타는 리그를 먹여 살린다. 그리고 스타는 스토리를 통해 탄생을 한다. 하지만 현 KBO리그에서는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선수가 없다.

좌완 트로이카, 언제적 양현종과 김광현인가. 올해 KBO리그 토종 투수 가운데 평균자책점 1, 2위가 바로 양현종, 김광현이다. 두 선수 모두 10년 전부터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였다. 그런데 지금도 두 선수밖에 없다. 그대로다. 이정후, 강백호 등 싹이 보이는 야수는 있지만 투수는 단연코 없다.

여기에 류현진이라는 걸출한 스타의 존재로 인해 국내 야구 팬들은 KBO리그 만큼이나 메이저리그를 즐겨보게 됐다. 하필 LA 다저스다. 빅리그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팀의 경기를 매번 본다. 그리고 KBO리그를 보니 수준 차는 더욱 명확하다. 높아진 국내 야구 팬들의 눈높이에 KBO리그는 성에 차지 않았다.

야구계가 이러한 위기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난 8월 KBO리그 각 구단의 단장이 모인 실행위원회에서 '라커룸 개방'에 대한 논의가 나왔다.

팬들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고 이야기를 만들고 흥미를 끌 수만 있다면 '성역'이라 불리던 라커룸 개방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목소리였다. 그 외에도 신인 지명권 트레이드와 FA(자유계약) 제도 변경, 포스트시즌 제도 변화 등 여러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변화도 중요하지만 실력도 함께 증명해야 한다. 철저한 투트랙 전략으로 한국 야구의 위기 탈출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렇기에 오는 11월에 열리는 '프리미어12' 대회의 중요성이 크다. 김경문 국가대표 야구 감독의 어깨가 무겁다. 이 대회에서 탈락하거나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2020년 도쿄올림픽 야구에 참가할 수 없다.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은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 당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변수는 항상 존재한다. 보장된 올림픽 티켓은 없다. 밀리면 절벽 아래다. 베이징의 전성기를 지나 도쿄의 암흑기가 된다면 승승장구했던 KBO리그에 역사상 최악의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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