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파울루 벤투 감독이 오는 30일 10월 A매치에 나설 선수단 명단을 발표한다. ‘당연히’ 손흥민도, 이강인도, 권창훈도, 이재성도, 황의조도 뽑힐 것이다. 벤투 감독은 최정예 멤버로 팀을 꾸릴 것이다.

축구대표팀의 2022 카타르 월드컵으로 가는 장도이기 때문에 벤투가 최정예로 멤버를 구성할 것에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발칙한 상상을 해보자.

꼭 피파 가맹국 211개국 중 랭킹 202위인 스리랑카를 '홈'에서 상대하기 위해 영국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을 써야할까. 조금 더 과감하게 한창 K리그 순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각팀의 핵심 K리거들까지 소집해야할까.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U-22 대표팀과 와일드카드 후보군으로는 안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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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체’ 스리랑카-북한과 연속 대결, 이렇게 여유있는 일정은 다신 없다

스리랑카는 피파랭킹 202위의 팀이다. 북한은 113위. 이런 팀을 상대로 스리랑카와는 홈경기, 북한은 원정경기를 가진다. 향후 월드컵 예선을 치르며 이정도로 널널한 매치업이 주어지는 때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리 세계 축구가 평준화 되고 아시아 축구의 수준이 올라갔다 하지만 냉정하게 스리랑카는 프로 하위권팀이 나가도 충분히 이길 수준의 팀이다. 피파 가맹국이 211개국인데 202위란 말은 그냥 전세계에 가장 약한 팀이라는 것이다.

그런 팀을 상대로 홈에서 맞붙는다. 한국 축구 수준에서 질래야 질수가 없다. 굳이 이런 경기에 머나먼 영국에서 손흥민을 불러야할까. 그리고 유럽에서 해외파를 불러야할까.

이럴 때 매번 쓰는 해외파들이 아닌 K리그의 알짜배기 선수들이나 어린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시험해보며 국가대표로 뛰어보는 기회를 줘보면 어떨까.

그렇다고 ‘굳이’ 손흥민 등 해외파를 안 부를 이유가 없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박지성, 기성용, 구자철 등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선수들이 서른살의 한창일 나이에 국가대표에서 은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런 경기들까지 일일이 다부르고 그에 응해 유럽과 한국을 오가는 강행군을 매번 해왔기 때문이다. 이럴때라도 귀중한 자원들을 아껴쓰자는 것이다.

실제로 손흥민도 지난해 아시안게임 차출로 인한 반대급부로 지난해 11월 A매치에 차출되지 않았다. 이때 열흘 가량을 푹 쉰 손흥민은 이후 EPL 이달의 선수상을 받는등 맹활약을 할 수 있었고 본인 역시 이때의 휴식이 큰 도움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해외파를 부르지 않는다면? 국내파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이번 기회에 해외파를 부르지 않는다면 그 기회는 국내파에게 돌아갈 것이다. 냉정하게 축구대표팀에서 주전급으로 뛰는 선수 대부분은 해외파다. 해외파가 없는 골키퍼, 풀백 포지션을 빼면 더욱 그렇다.

이 기회에 그동안 수비, 골키퍼를 빼고 국내파 미드필더, 공격진이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에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

이미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있는 선수들일 것이기에 조합만 잘하면 분명 일정 수준 이상의 활약을 할 것이다. 매번 해외파가 오면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공격-미드필드진 선수들은 이럴 때 벤투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해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03년 네팔전 16-0 대승을 다루는 당시 뉴스. 국내파로만 이룬 성과였다. KBS
실제로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 시절에는 2003년 9월 베트남-오만-네팔과의 아시안컵 예선 경기에서 해외파를 제외하고 우성용, 김정겸, 최종범, 이관우 등 대표팀에 잘 소집되지 않던 선수들을 포함한 국내파 멤버로만 팀을 꾸려 3경기 모두 승리했었다. 네팔전은 16-0으로 이기기도 했다.

당시 조재진, 김정우 등 신예들도 발탁돼 대표팀에서 평가받았기에 이후 월드컵 등에서 대표팀 핵심역할로 거듭나기도 했다.

이때의 좋은 선례를 다시금 꺼내들 수 없는 것일까.

▶아예 U-22대표팀으로 꾸린다면? 와일드카드 후보군만 23세 초과로

더 과감하게 아예 성인 대표팀 급이 아닌 2020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U-22대표팀으로 이번 대표팀을 꾸리는건 어떨까. 물론 이미 우즈벡과 친선전이 잡혔지만 그전에 해봤으면 하는 상상이다.

너무 과감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U-22 대표팀에는 백승호, 이강인, 이동경 등 이미 성인 대표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도 있고 정우영과 같은 뛰어난 선수들도 있다.

꼭 22세 이하 선수로 팀을 꾸리기보다 이번 기회에 미리 도쿄 올림픽에 나설 와일드카드 3명에 대한 조합 테스트를 해볼 수도 있다. 와일드카드 후보군 3명의 두배수 혹은 세배수를 선발해 미리 22세 이하 선수들과 생활하게 하며 어떤 선수가 어린 선수들과 잘 어울리고 팀에 도움이 되는지 미리 볼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A매치이기에 차출에 문제는 없다.

게다가 한창 순위 싸움 중인 K리그팀들에게도 가뭄의 단비 같은 휴식이 될 수 있다. 해외파들은 앞서 언급한 소중한 쉼표를 받게 될 것이다.

권창훈, 석현준 등 군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해외파가 합류할테니 대표팀 수준은 올라갈테고 올림픽 대표팀급 선수들에게는 A매치로 ‘성인 국가대표’로 뛴다는 동기부여도 확실하다. 와일드카드 후보군 선수들도 올림픽에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벤투 감독도 김학범 감독과 협업을 통해 성인 대표팀의 철학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다른 한국 지도자가 팀을 운영하는 방식을 보며 함께 배울 수 있다. 또한 어린 선수들을 직접 훈련시키고 경기도 보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 대한 구상도 할 수 있다.

2000년 국가대표에서 뛰던 만 19세의 박지성과 이천수의 모습. ⓒAFPBBNews = News1
이미 이런 사례도 있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준비하던 허정무 감독은 국가대표와 올림픽 대표팀을 겸업하며 2000년 3월 A매치에 박지성, 이동국, 최태욱, 이천수, 설기현 등 사실상 올림픽 대표 멤버를 아예 성인 대표로 불렀다. 당시 1977년생이 대표팀 고참이었는데 당시 나이 23살이었다. 즉 올림픽 대표로 뛸 선수를 국가대표로 소집해 미리 발을 맞춘 것이다.

이를 통해 박지성, 최태욱, 이천수 등은 국가대표에 이르게 데뷔할 수 있었고 이때 미리 국가대표를 경험했기에 이후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업적을 쌓는데 초석이 됐다.

▶그래도 해외파 다 부르겠다면… 최소한 스리랑카전은 휴식을

물론 앞에 언급한 두 가정은 이번 대표팀에 실현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 벤투 감독은 최정예 대표팀을 소집할 것이며 해외파는 모두 한국으로 올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스리랑카전만큼은 해외파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는 것은 어떨까. 해외파 선수들은 소속팀 일정과 비행기 시간으로 인해 빨리와도 월요일(10월 7일) 새벽, 늦으면 화요일(8일)에야 축구대표팀에 합류하는 선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해외파 선수들은 목요일(10일) 스리랑카전에 나서기 위해 고작 이틀밖에 쉬지 못한다. 시차적응도 안된다. 이럴 때 손흥민 등 핵심 해외파들은 일단 벤치에 두고 K리거 위주의 라인업으로 스리랑카전을 임한 후 후반 중반이 될 때까지 점수가 없다면 조커로 투입하는게 어떨까.

손흥민 없다고 피파 가맹국 211개국 중 202위인 스리랑카를 못 이길 한국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전에서 휴식을 얻을 수 있다면 국가적으로 관심이 쏠릴 북한 원정에서 최적의 몸상태로 손흥민, 황의조 등 해외파들도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전제조건은 바로 국민들의 '이해'다. 성인 대표팀을 변칙적으로 긴 호흡으로 운영하는 것에 대해, 당장 손흥민을 부르지 않고 쓰지 않는 것을 국민들이 이해해줄 수 있는냐는 것이다. 지금의 축구팬이라면 그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이 [발칙한 상상]의 출발점이다.

이 모든 가정은 서두에, 제목에 밝혔듯 ‘발칙한 상상’이다. 대표팀을 놓고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는 재미도 축구의 재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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