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역사에서 이따금씩 이름값을 봤을 때 상상을 뛰어넘는 조합들이 나오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 전성기가 아닌 때였기에 결성이 가능한 조합들이었다. 그 중 하나가 2003~04시즌 LA 레이커스의 판타스틱 4였다.

1999~2002시즌에 걸쳐 역사적인 3연속 우승을 이룬 레이커스는 2002~03시즌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제동이 걸렸다. 그 상대방이 해당 시즌 우승팀 샌안토니오 스퍼스였기 때문인 것도 있었지만 핵심 2인조인 샤킬 오닐-코비 브라이언트 외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컸다.

이에 자극받은 레이커스는 2003년 7월 리그를 놀래게 만든 움직임을 가졌다. 2시즌 MVP에다 14시즌 올NBA 팀 선정 이력의 파워 포워드 칼 말론, 그리고 1시즌 올해의 수비수 및 9시즌 올NBA팀 선정 이력의 포인트 가드 개리 페이튼을 프리 에이전트 계약 과정을 통해 영입했다.

이 영입 소식이 나오면서 레이커스는 거의 따 놓은 당상 수준의 우승후보 기대를 받았다. 페이튼과 말론 둘 모두 인정받는 슈퍼스타들이지만 각자 시애틀 슈퍼소닉스 및 유타 재즈 소속으로 1990년대 후반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와 NBA 파이널에서 맞붙어 우승에 실패한 선수들로서 우승에 대한 동기가 확고해 보였다.

페이튼과 말론의 레이커스 동시 입단은 당시로써 정말 큰 사건이었다. ⓒAFPBBNews = News1
다만 그 시기가 늦긴 했다. 또한 늦기 때문에 가능했다. 1963년생 말론과 1968년생 페이튼 두 명 모두 전성기에서 내려온 시점에서 합류했다. 페이튼은 35세에, 말론은 40세에 2003~04시즌을 시작했다.

▶이전의 명예에 개의치 않은 파격 계약

그럼에도 각자 마지막 올스타 시즌이 페이튼은 2002~03시즌이었고 말론은 2001~02시즌이었다. 2002~03시즌 페이튼은 평균 20.4득점 8.3어시스트, 말론은 20.6득점 7.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이런 선수들이 큰 샐러리 하락을 감수하고 레이커스와 사인했다. 2002~03시즌 샐러리가 1264만 달러(약 152억원)였던 페이튼은 레이커스와 492만 달러(약 59억원) 계약을 맺었다. 또한 직전 시즌 샐러리가 1925만 달러(약 232억원)였던 말론은 레이커스와 150만 달러(약 19억원) 계약을 맺었다.

입단 시점에서 보면 분명 판타스틱 4라는 명칭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 이들의 목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한 시즌 성적

2003~04시즌 레이커스는 56승26패(승률 68.3%)를 거두며 리그 4위(승률 68.3%)이자 서부 컨퍼런스 3위에 올랐다. 다만 컨퍼런스 1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 2위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모두 같은 미드웨스트 디비전이었기 때문에 플레이오프 시드는 레이커스가 2번 시드를 받았다.

어쨌든 리그 4위는 페이튼-브라이언트-말론-오닐 4인조에 대한 기대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맞다. 여기엔 주요 선수들의 잦은 결장이 큰 이유로 작용했다. 판타스틱 4 모두 레이커스의 평균 출전시간 상위 4인이 됐지만 82경기 모두 뛴 페이튼(34.5분)을 제외하면 3명 모두 15경기 이상의 결장을 남겼다.

브라이언트(37.6분)는 하필 사생활 관련 법정 문제까지 겹쳐 17경기 결장을 거쳤다. 오닐(36.8분)은 2001~02시즌부터 3시즌 연속 15경기씩 결장이다. 말론(32.7분)은 시즌의 반절인42경기 결장을 거쳤다. 이런 공백들을 감안하면 오히려 리그 4위 성적이 좋아 보일만하다.

그래도 또 올스타에 뽑힌 오닐과 브라이언트는 올NBA 퍼스트 팀에 선정되며 여전한 위력을 자랑했다. 브라이언트는 평균 24득점 5.5리바운드 5.1어시스트 1.7스틸을, 오닐은 21.5득점 11.5리바운드 2.5블록을 남겼다.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은 페이튼과 말론은 플레이오프는 물론이고 시즌 동안에도 이전의 위상에 비해 떨어진 힘을 보여줬다. ⓒAFPBBNews = News1
▶홈코트 우위 없이 컨퍼런스 1,2위들을 돌려보내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레이커스는 상위 시드로서 7번 시드 휴스턴 로켓츠를 4승1패로 따돌렸다. 하지만 이후 두 라운드는 모두 원정에서 시작하는 시리즈가 됐다.

2라운드에서 직전 시즌에 자신들을 꺾었던 샌안토니오를 만나 2연패로 시작하며 위기가 보였다. 샌안토니오의 3년차 가드 토니 파커가 1차전 20득점 9어시스트, 2차전 30득점 5어시스트를 통해 레이커스를 괴롭혔다.

하지만 홈으로 돌아온 3차전부터 레이커스는 픽앤롤 돌파 위주 파커에 대한 수비 대응을 보여줬다. 2차전까지 42.1% 야투율 이상을 기록했던 파커는 3차전 이후로 최고 38.9% 이하의 31.0% 야투율 12.5득점에 그쳤다.

여기에다 2승2패 동률 후의 원정 5차전에서 플레이오프 역사의 하이라이트로 남은 데릭 피셔의 0.4초 버저비터까지 나오며 건진 1점차로 승리로 레이커스는 승기를 잡았다. 결국 2연패 후 4연승으로 복수에 성공했다.

컨퍼런스 파이널 상대 1번 시드 미네소타에는 샘 카셀-라트렐 스프리웰-케빈 가넷의 스타 3인 조합이 있었다. 하지만 가드 카셀이 부상으로 인해 컨디션도 좋지 못했고 결국 5차전부터 아웃됐다.

5차전 가넷과 스프리웰의 대활약으로 6차전까지 시리즈가 이어졌지만 6차전 레이커스에서 뜻밖의 대활약이 나왔다. 2년차 가드 카림 러시가 3점슛 7회의 시도 중 6개(85.7%)를 성공시키며 막판 레이커스가 승기를 잡게 만들었다. 종전 플레이오프 커리어 최고 3점슛 기록이 2개였던 선수의 깜짝 활약이었다.

이렇게 컨퍼런스 1위와 2위를 모두 잡아내면서 결국 레이커스는 강력한 우승후보로서의 면모를 증명한 듯했다. 맞은 편 동부 컨퍼런스의 챔피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의 시리즈 예상에서 레이커스는 압도적인 우위를 가졌다.

다만 여기에서 불안한 전조는 있었다. 페이튼의 위력이 꺼져 있었다는 점이다. 시즌 동안 야투율 47.1%로 평균 14.6득점을 올렸던 페이튼은 플레이오프에서 서부 컨퍼런스 팀들을 상대하는 동안 37.3% 야투율 8.8득점에 그쳤다.

▶1차전 충격파가 허상이 아니었던 NBA 파이널 시리즈

NBA 파이널에서 모처럼 다시 홈코트 우위를 잡은 레이커스는 1차전 전반전을 41-40으로 앞서며 큰 위기를 느끼지 못했다. 오닐은 전반전 동안 75.0% 야투율로 벌써 20득점을 올렸고 브라이언트도 12득점을 올렸다.

하지만 후반전 레이커스는 각 쿼터마다 17득점씩에 그치는 득점 가뭄에 시달렸다. 후반전 동안 오닐이 87.5% 야투율로 14득점을 올렸지만 브라이언트는 13득점을 올리는 동안 10개의 야투를 실패했다. 그리고 페이튼과 말론이 7득점을 더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진 무득점에 그쳤다. 반면 디트로이트는 코트에 나온 전원이 고른 득점을 보여줬다.

이런 양상은 꽤나 신선한 충격을 줬다. 브라이언트와 오닐이 59득점을 합작했지만 나머지로부터 16득점만 나오며 결국 오프시즌의 선수단 영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양상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것이 한 경기에 그치는 반짝 현상이 아니라 줄곧 이어졌다.

당시 레이커스의 에이스로서 올라선 브라이언트였지만 2003~04시즌 NBA 파이널에서는 에이스로서의 파급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AFPBBNews = News1
오히려 2차전 4쿼터 막판 브라이언트가 드리블 후 3점슛을 성공시켜 연장전을 만들고 연장전에서 브라이언트와 오닐이 10득점을 합작해 1승을 건진 것이 레이커스의 반짝 반격이었다.

3차전 레이커스는 68득점에 그쳤다. 68득점은 레이커스가 1960~61시즌 미네아폴리스에서 LA로 연고지를 옮긴 시점 이후 역대 가장 적은 플레이오프 경기 득점 기록이다. 50.0% 야투율로 14득점을 올린 오닐과 30.8% 야투율로 11득점을 올린 브라이언트만이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레이커스 선수들이었다.

이런 와중에 말론의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5차전부터 출전하지 못했다. 이미 3차전부터 말론의 참여는 20분 무렵 출전으로 제한적이었다. 페이튼은 시리즈 동안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적이 없고 32.1% 야투율의 평균 4.2득점 4.4어시스트에 그쳤다. 평균 33.3분 출전에 비해 플레이 활동 참여 자체가 그답지 않게 극히 적었다.

디트로이트는 오닐과 브라이언트로 파생되는 레이커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억제했다. 시리즈 동안 63.1% 야투율로 평균 26.6득점 10.8리바운드의 기록을 낸 오닐이지만 본인의 득점 기회를 챙긴 것 외에는 큰 파급 효과를 일으키지 못했다. 브라이언트는 계속된 견제를 받으며 평균 22.6득점을 올리는 동안 38.1% 야투율에 그쳤다.

▶디트로이트 방패 앞에 크게 꺾인 레이커스 창

NBA닷컴에 따르면 레이커스는 같은 컨퍼런스 팀들을 상대하는 동안 100포제션 당 101.3득점을 올렸다. 나이 많은 선수들 위주의 선수단이기 때문에 느린 페이스의 위주로 플레이한 팀으로서 평균 득점은 90득점으로 낮아보였지만 가장 좋은 득점력을 보여줬다.

이런 레이커스의 창은 NBA 파이널에서 100포제션 당 91.9득점 수준의 위력으로 꺾여 버렸다. 해당 시즌 리그 최하위 29위 팀의 공격지표(95.3)보다 낮은 득점력이다. 그만큼 디트로이트의 방패가 생각 이상으로 튼튼했다.

천시 빌럽스-리차드 해밀턴-테이션 프린스-라쉬드 월러스-벤 월러스의 주전 5인조에다 엘든 캠벨, 린지 헌터, 콜리스 윌리엄슨의 벤치 멤버들이 나선 디트로이트는 신구 조화를 훌륭히 맞춘 라인업을 내세웠다. 주전 5인조는 모두 30세 이하였고 벤치들 멤버들은 30세 이상의 경험을 가진 선수들이었다.

반면 레이커스에서는 오닐과 브라이언트에 대한 지원이 크게 부족했다. 시리즈 동안 총 출전시간 50분 이상의 선수 9명 중 오닐을 제외하면 모두 야투율 39.3% 이하의 저조한 슈팅 성과를 냈다. 젊은 베테랑들인 피셔와 데빈 조지도 파이널에선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즉 변수가 돼 줄 선수가 나타나지 못하며 깊이의 문제점을 보여줬다.

이후 레이커스는 오닐을 마이애미 히트로 트레이드하면서 2000년대 초반 리그를 호령하던 시기를 실질적으로 끝내는 단계를 밟았다. 2003~04시즌 레이커스에는 명예의 전당 멤버 3명이 있었다. 여기에다 2021년 헌액이 거의 확실시 되는 브라이언트까지 있던 호화 라인업의 허망한 종료였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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