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라이언킹' 하면 우리는 이승엽(42)을 떠올린다. 하지만 '올드 삼성팬'이라면 또 한 명의 선수를 떠올린다. '원조 라이언킹'으로 불린 투혼의 '181구' 박충식(48)이다.

거쳐간 자리가 많다. 그만큼 야구인으로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 프로야구선수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선수들의 입장을 대변했고, KBO리그에서 갈 곳 잃은 선수들의 돌파구가 됐던 호주 질롱 코리아 팀의 단장을 맡고 있다.

그렇게 야구계의 감초 역할을 했던 그가 이제는 프로야구의 근간이자 아픈 손가락인 대학야구에 뛰어들었다.

사이버 한국외국어대학교(이하 사이버외대)는 지난 20일 서울시 동대문구 캠퍼스에서 야구부 창단을 확정하면서 박충식을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33번째 대학야구다.

무등중, 광주상고, 경희대 출신의 박충식 감독은 지난 1993년 삼성에 2차 1라운드 전체 7번째로 지명을 받고 프로에 데뷔했다.

신인었던 그 해, 박 감독은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당시 국내 최고 투수였던 해태 선동열과 선발 맞대결을 펼쳤다. 15회 연장 승부, 그리고 181구의 역투는 여전히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다. 삼성을 지나 해태-KIA를 거치고 은퇴한 그는 선수협 사무총장과 질롱 코리아 단장에 이어 대학야구 감독으로 새로운 야구 인생을 맞이하게 됐다.

박충식 감독은 "김중렬 총장님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분들이 질롱 코리아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셨다. 이미 학교에서 축구부를 운영 중이었고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서 야구부 창단을 검토하고 계셨다"고 사이버외대의 야구부 창단 배경을 설명했다.

야구부 초대 사령탑 제안은 몇개월 전에 받았지만 질롱 코리아 단장을 맡고 있었기에 덥석 수락은 힘들었다.

그는 "질롱 코리아에서 젊은 선수들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아마야구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어떻게 하면 아마야구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공부를 많이 하겠다"라며 취임 소감을 밝혔다.

박충식 사이버한국외대 감독. 스포츠코리아 제공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 또 인성…지도자 박충식의 야구 철학

한국에서 대학야구의 설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항간에는 대학야구의 씨가 마를 대로 말랐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매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가 성대하게 열리지만, 대졸 선수는 그저 찬밥 신세다. 지난 2015년 2차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은 대졸 선수는 37명이 전부였다. 2016년에 23명으로 줄더니 2017년에는 18명이 간신히 프로의 문턱을 넘었다.

그러다 작년에 소폭 상승, 20명의 대졸 선수가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이처럼 프로 구단의 대졸 기피 현상은 이제 고정 값이 됐다.

프로는 당장 1군서 뛸 수 있는 수준의 대졸 선수가 아니면 조기에 군 문제 해결이 가능한 고졸 선수를 우선적으로 스카우트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작년부터 C학점 이하의 선수는 리그에 참여할 수 없다는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의 규정에 의거, 운동과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구조도 적지 않은 논란이 됐다.

연습량이 줄어들수록 실력도 그에 비례한다. 성과가 없는 악순환이 계속 되다 보니 제대로 된 지원과 시설을 갖추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각 대학에서 야구부 창단을 꺼리는 이유다.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을 그도 잘 알고 있다. 박충식 감독은 "아마추어 특히 대학야구에서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사이버외대의 야구 환경은 상대적으로 긍정적이다.

그는 "사이버외대는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곤지암 팀업 캠퍼스에 시설을 마련했고 도보로 이동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숙소를 구했다"라며 "프로에 진출하지 못한 고교 선수 중에는 탄탄한 체격과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많기에 대학야구에서 잘 풀어낸다면 충분히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라며 힘주어 말했다.

그는 올해 안에 코치진을 구성하고 30~35명의 선수로 팀을 구성해 내년부터 대학 리그에 합류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박 감독은 자신의 야구 철학에 있어 선수들에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으로 '인성'을 꼽는다.

그는 "프로든 아마든 마찬가지다. 첫 번째도 인성, 두 번째도 인성이다. 선수를 뽑고 선수를 키워내는 데 있어서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필수적이다. 그 부분을 최우선으로 삼아 지도할 생각이다"라며 확고하게 말했다.

삼성 레전드 이만수, 양준혁과 함께 시구를 했던 박충식(맨 가운데). 스포츠코리아 제공
선동열에 밀리지 않았던 당찬 신인 박충식 "대졸선수도 할 수 있다"

신생팀이지만 사이버 대학의 특성상,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다 보니 상대적으로 훈련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프로에 가려면 그만큼의 실력을 키우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는 강한 체력 속에 좋은 기술이 나온다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고교 야구는 물론이거니와 대학야구에서도 뚜렷한 목표의식과 꿈을 갖고 노력한다면 좋은 선수들이 언제든 다시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 감독은 대표적인 사례로 자기 자신을 꼽는다.

지난 1993년 경희대를 졸업하고 신인으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던 박 감독은 그 해,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해태와 맞붙었다. 당시 해태는 천하무적, 최고의 팀이었다.

그리고 그가 상대했던 투수는 '국보' 선동열이었다. 문희수를 시작으로 선동열, 송유석으로 이어지는 해태 마운드는 말 그대로 공포였다. 하지만 삼성은 신인 박충식이 15회 연장까지 홀로 마운드를 버텨내며 181구 2실점 무승부 피칭을 완성, 삼성팬들의 자존심을 제대로 살려줬다.

박 감독은 "1993년 대학교를 막 졸업했던 신인이었지만 프로에서 신인왕 등 여러 타이틀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때, 신인으로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이종범, 구대성, 양준혁, 이상훈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즐비했다. 대졸 신인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우리 때처럼 대졸 신인이 다시 야구판의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물론 모두가 꽃길을 걸을 수 없다. 프로의 벽은 너무나 높다. 그렇기에 박 감독은 대학야구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대졸 선수들이 프로에서 지명을 받을 확률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다른 쪽으로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외국어 대학이라는 특성이 있기에 영어나 일본어를 전공, 향후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오로지 프로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닌, 에이전트처럼 스포츠 관련업계 종사자로 나설 수 있는 또다른 길이 있다. 많은 선수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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