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팀을 응원하지 않는 NBA 팬이라면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하위 시드 팀을 응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상을 깨는 반란에 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8번 시드의 반란은 몇 시즌 후에도 회자가 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플레이오프 막차를 탄 팀이 소속 컨퍼런스 1위 팀을 잡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때문에 NBA 역사에서 다섯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그 드문 성과를 처음 이룩한 팀이 1993~94시즌 덴버 너겟츠다. 당시 42승40패(승률 51.2%)로 서부 컨퍼런스 8번 시드를 받은 덴버는 63승19패(승률 76.8%)로 리그 1위에 올랐던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맞이해 3승2패로 꺾었다.

즉 시즌 동안 자신들보다 21승 더 많이 챙긴 팀을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밀어냈다. 상대방 시애틀은 바로 전 1992~93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컨퍼런스 파이널 7차전까지 갔던 팀이었다. 반면 1993~94시즌 덴버는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에서 막 탈출한 팀이다.

당시 덴버의 기적은 이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가 5전3선승제였던 시절 2연패로 시작했음에도 시리즈를 잡아냈다. 이로써 덴버는 5전3선승제 시리즈 역사에서 0승2패를 극복한 5번째 팀이 됐다.

여러모로 지배적인 예상을 깨는 결과다. 그렇다면 1993~94시즌 올스타 한 명을 배출하지 못한 덴버가 올스타 두 명이 있는 시애틀을 꺾어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최소 4블록에서 최다 8블록에 이르기까지 5경기 평균 6.2블록을 기록한 무톰보의 골밑 수비 존재감은 시애틀에게 큰 장애물이 됐다. ⓒAFPBBNews = News1
▶시즌 동안 수비는 좋았지만 득점이 아쉬웠던 덴버

1993~94시즌 덴버는 모처럼 훌륭한 수비 팀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1991~92시즌 덴버 선수로서 NBA에 데뷔한 센터 디켐베 무톰보의 수비 잠재력이 현실화되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하다.

무톰보는 1994~95시즌부터 네 시즌에 걸쳐 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된 수비에 특화된 218cm 장신 센터다. 2008~09시즌 은퇴한 그가 2015년 농구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던 데에도 수비는 큰 근거가 됐다.

바스켓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1993~94시즌 덴버는 100포제션 당 102.3실점으로 수비지표 리그 5위에 올랐다. 1990~91시즌 리그 최하위 27위(114.7)로 시작해 1991~92시즌 13위(108.6), 1992~93시즌 8위(106.3)의 점진적 향상을 거쳤다.

이에 비해 득점력은 돋보이는 수준이 아니었다. 1992~93시즌 공격지표 리그 14위(104.6)에 있다가 1993~94시즌 20위(103.9)로 떨어졌을 정도였다.

이에 비해 시애틀은 리그 1위답게 공수 양 지표 동시에 상위권이었다. 공격지표 리그 2위(111.1), 수비지표 3위(101.5)였다. 명예의 전당 포인트 가드 개리 페이튼과 1992~93시즌부터 6시즌 연속 올스타 숀 켐프, 그리고 데틀레프 쉬렘프와 켄달 길 등 여러 인원들의 기여도가 따랐다.

▶공수 양 진영에서 밀리며 2연패

즉 시애틀은 공격도 좋았고 수비도 좋은 팀이었다. 때문에 1993년 여름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이 은퇴하면서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호기를 맞이한 상태였다.

그리고 홈에서 치른 플레이오프 첫 두 경기도 시즌 실적과 맞아떨어졌다. 시애틀은 1차전을 106-82로, 2차전을 97-87로 여유 있게 승리했다. 덴버에서는 두 경기 연속 주전 3명이 야투율 4할에도 못 미쳤다.

특히 시즌 동안 야투율 46.0%를 통한 평균 18득점으로 팀 득점을 이끌었던 포인트 가드 마흐무드 압둘라우프의 슈팅 슬럼프가 심각했다. 시리즈 5경기 동안 30.8% 야투율 평균 9득점에 그친 185cm 신장 압둘라우프는 1차전의 최저 25.0%에서 최고 37.5% 사이의 계속된 낮은 대역을 보였다.

1차전 덴버가 크게 졌던 데에는 턴오버가 컸다. 무려 21턴오버를 범했고 그 과정에서 시애틀은 36득점을 챙겼다. 또한 덴버가 17회의 자유투 시도를 가진 한편 시애틀은 무려 50회를 가졌다.

2경기 연속 저득점에 그친 것과 별개로 덴버는 자신들의 장기인 수비마저도 시애틀에게 통하지 않았다. 가드 페이튼이 적극적으로 나서며 두 경기 각각 20득점 및 18득점을 올렸으며 켐프와 쉬렘프의 포워드 라인도 고득점을 지원했다. 2차전엔 벤치 인원 두 명 포함 6명이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홈에서 마련한 반격

홈으로 돌아온 3차전에서 덴버는 득점 잔치를 열었다. 당시 플레이오프에서 자신들의 12경기 기록들 중 가장 높은 110득점을 올렸다. 특히 1쿼터에 41득점 맹폭격을 가하며 기세를 잡았다.

68.8% 야투율로 31득점을 올린 스몰 포워드 레지 윌리엄스 포함 6명의 출전 인원들이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팀 야투율이 무려 60.3%에 달했다. 정규 시즌 최고 경기 야투율이 59.7%였던 팀이 보여준 깜짝 화력이었다.

또한 1,2차전 연속으로 자유투 획득에서 큰 열세를 보였다가 3차전부터 역전했다. 자유투 시도 횟수에서 1차전 17-50, 2차전 25-42였다면 3차전은 35-34였다. 그리고 4차전엔 39-25였고 5차전엔 양 팀 동일한 38회였다.

덴버가 110-93으로 승리한 3차전 동안 시애틀에선 켐프가 27.3% 야투율의 10득점에 그쳤다. 그리고 덴버의 수비에 고전하는 첫 신호이기도 했다. 특히 앞서 언급한 자유투가 덴버의 대표적 개선사항이다.

4차전은 양 팀 모두 저득점에 묶였다. 94-85로 끝났는데 연장전까지 가서 나온 점수다. 4쿼터까지는 양 팀 각각 82득점으로 마쳤다. 대신 연장전에서는 12-3으로 덴버가 압도했다.

사실 막판 시애틀의 득점이 묶인 시점은 꽤 일찍 시작됐다. 1분20초 정도를 남기고 벤치 가드 빈센트 애스큐의 레이업이 4쿼터 시애틀의 마지막 득점이었다. 켐프가 자유투를 얻어냈지만 2구 모두 실패하기도 했다. 그 바로 다음 공격권에서 덴버는 벤치 가드 로버트 팩의 3점슛으로 연장전에 돌입할 수 있었다.

연장전 동안 시애틀은 자유투 하나만 성공시킨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쉬렘프가 6반칙 퇴장까지 당한 상황에서 외곽 슈팅들이 빗나가며 야투 성공은 종료 30초를 남기고서야 켐프의 덩크를 통해 나왔다. 결국 3득점에 그치는 동안 덴버는 12득점을 뽑아냈다.

4차전 50% 야투율로 27득점 17리바운드를 기록한 라폰조 엘리스의 다방면 활약도 눈에 띈 한편 10득점 16리바운드 8블록의 무톰보도 큰 존재감을 보여줬다.

팀 전원이 30세 미만이었던 1993~94시즌 덴버는 생각 이상으로 제때 활약해준 선수들이 등장하며 리그 1위 팀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빅 라인업 가동으로 성공한 5차전

5차전도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이번엔 덴버가 엘리스의 득점으로 4쿼터 막판 먼저 리드를 잡았지만 시애틀의 길이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주전 포인트 가드 압둘라우프를 대신해 벤치 가드 팩을 연장전에 투입시킨 덴버는 또 하나의 승부수 라인업 변화를 줬다. 훗날 바이슨 델레로 개명한 206cm 신장 센터 브라이언 윌리엄스를 무톰보 옆에 세웠다. 앞선 4경기 동안 20분 안쪽의 출전시간을 받았던 윌리엄스는 5차전 34분을 뛰며 17득점 1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이런 덴버의 빅 라인업 상대로 시애틀은 연장전 동안 6득점에 그쳤다. 특히 막판 무톰보의 2연속 블록이 눈에 띄었다. 무톰보는 4차전에 이어 2경기 연속 8블록을 기록했다. 무톰보의 5경기 총 31블록은 5전3선승제 시리즈 최다 기록이다.

경기는 무톰보의 15번째 리바운드와 함께 종료됐다. 양 손으로 볼을 잡은 무톰보는 그대로 바닥에 누우며 해맑은 웃음을 지어 역사에 남는 사진을 남겼다.

긴 NBA 플레이오프 역사에서 1993~94시즌에야 첫 8번 시드의 반란이 일어났던 이유는 8번 시드 자체가 1983~84시즌부터 생겼기 때문이다. 팀 숫자가 적었던 초창기엔 각 컨퍼런스 당 서너 팀들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ABA리그와 합병한 1976~77시즌부터 컨퍼런스 당 6팀이 플레이오프에 참여했고 1983~84시즌에 현재와 같은 대진으로 변화했다.

이렇게 첫 8번 시드 반란의 주인공이 된 덴버는 2라운드에서 플레이오프 진군을 멈춰야 했다. 5번 시드 유타 재즈를 상대해 7차전까지 갔지만 힘이 모자랐다. 우연인지 아닌지 역대 8번 시드의 반란을 일으킨 5팀 중 4팀이 2라운드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1998~99시즌 뉴욕 닉스만이 2라운드를 넘어 NBA 파이널까지 진출했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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