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 연합뉴스 제공
[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세대교체(世代交替).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구세대를 대신해 신세대가 주역이 된다는 의미다. 구세대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말이다. 벌써 그런 취급이라니. 하지만 신세대의 등장은 억지가 아니다. 순리다.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세대교체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다.

이들의 등장은 구세대를 깨운다. 신세대가 갖지 못한 경험과 관록이 다시 눈을 뜬다. 그리고 신세대는 이를 보고 배우면서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간다. 어떤 날에는 스승과 제자처럼, 또 어느 날에는 가장 친한 친구처럼, 그리고 때로는 라이벌이 되기도 한다.

경쟁과 경쟁의 선순환, 이는 스포츠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리고 이러한 선순환이 가장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종목, 바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활약 중인 태극낭자 이야기다. 지난 7월 28일 막을 내린 LPGA투어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은 태극낭자의 세대교체 흐름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대회였다.

대회 3라운드가 끝나고 리더보드 상단, 1위부터 5위에 이름을 올린 선수가 모두 태극낭자였다. 말 그대로 완벽한 독식, 1위 김효주(24)를 시작으로 2위 박성현(26), 3위는 박인비(31)와 고진영(24)이었다. 그리고 공동 5위에 이미향(26)이 자리했다. 한국 선수의 우승이 확실시 되는 상황이었다.

되는 집안의 싸움, 그리고 구세대와 신세대의 맞대결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실시간 검색어에 김효주와 박성현, 고진영의 이름이 계속 오르락내리락 했다.

모두의 관심이 모인 가운데, 4라운드가 끝나고 환한 미소를 지은 선수는 바로 고진영이었다. 마의 14번홀에서 선두 김효주가 벙커에 빠져 주춤한 사이, 고진영이 타수를 벌리며 달아났고 그대로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단순한 메이저 대회 우승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LPGA투어 태극낭자의 또 다른 새 시대를 여는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김효주. 연합뉴스 제공
태극낭자가 강한 비결, 구세대와 신세대의 끝없는 전쟁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긴 레전드 박세리(41)를 시작으로 태극낭자는 LPGA 투어에서 항상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다. 일명 '박세리 키즈'라 불리는 이들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LPGA투어 통산 11승에 빛나는 신지애(31)는 한국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에서 신지애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했던 최나연(32) 역시 2012년 US오픈 우승을 포함, 태극낭자의 선봉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박세리의 하얀 발목을 보고 클럽을 잡기로 결심했다는 선수가 있다. 신지애, 최나연을 넘어 '여제'라 불리는 선수, 바로 박인비(31)다.

세계 랭킹 1위라는 무거운 왕관을 무려 106주나 버텨낸 실력자, 지난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을 포함해 한 시즌에 4개의 메이저 대회를 우승한 커리어 그랜드슬램까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고, 역대 한국 최고의 여자골프 선수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선수였다.

박인비의 대활약은 그를 매섭게 추격하는 신예들의 동기부여가 되기에 충분했다. 역전의 명수로 존재감을 과시, LPGA투어 통산 9승을 자랑하는 김세영(26)과 더불어 2013년 KLPGA투어에서 4승, 2016년 LPGA투어에서 3승을 따낸 장하나(28)가 나란히 자웅을 겨뤘다.

그리고 두 개의 태풍이 몰아쳤다. 고교 2학년이었던 2012년 KLPGA 개막전 롯데마트 챔피언십 우승을 획득, 아마추어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낸 김효주는 2014년 KLPGA KIA 자동차 클래식, 하이트 진로 챔피언십, KB금융스타 챔피언십까지 같은 해에 3개 메이저 대회를 싹쓸이했고 같은 해 LPGA 투어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까지 일궈내며 괴물의 등장을 알렸다.

김효주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태풍, 바로 '덤보' 전인지(25)였다. 2015시즌 KLPGA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JLPGA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 그리고 LPGA US오픈 우승까지 한 시즌에 한미일 3개국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모두 따낸 그는 2016년 에비앙 챔피언십 트로피까지 품에 안으며 '메이저 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고진영. 연합뉴스 제공
화수분 같은 태극낭자의 세대교체, 실력은 타의추종 불허

파고 또 파고 계속 나오는 금맥, 그게 바로 LPGA에서의 태극낭자였다. 이러한 세대교체는 쉬지 않고 이루어졌다. 화수분처럼 재능이 넘치고 실력이 좋은 신예들이 끊임없이 등장했고 이는 기존에 있던 선수들의 분발을 이끌어내며 태극낭자의 위상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 화수분의 시작은 항상 KLPGA였다.

전인지가 2015시즌을 끝으로 한국을 떠나 LPGA투어로 떠난 후, 새로운 스타가 등장했다. 뭔가 남다른 느낌의 짧은 머리, 시크한 표정, 그 누구보다 멀리 쳐내는 장타력을 앞세운 박성현이었다.

2016시즌 KLPGA투어 7승을 따내며 군림했고 2017시즌에 LPGA로 갔다. 심지어 대회 우승 없이 상금으로만 투어 티켓을 따낸 최초의 선수였다.

박성현은 2017시즌 US오픈 우승을 따내며 LPGA 신인왕과 함께 올해의 선수상을 따냈고 세계랭킹 1위까지 오르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박성현이 2018시즌 들어서 잠시 기복을 보여주자 또 한 명의 태극낭자가 등장했다.

김효주, 전인지가 떠나고 박성현이 올라선 것처럼, 또 다른 신성이 KLPGA투어 정상에 올라섰다. 이정은6(23)이다. 2017시즌 KLPGA투어 4승에 이어 2018시즌에 무려 6관왕에 오르며 한국을 평정했다. 그리고 올해 LPGA로 진출, 지난 6월 US여자오픈 우승을 따내며 태극낭자의 계보를 물려받았다.

여기에 올해 LPGA투어 ANA인스퍼레이션에 이어 에비앙 챔피언십까지 메이저 2승을 포함, 투어 3승을 기록한 고진영까지 대세 중의 대세로 자리 잡으며 새로운 삼각구도를 형성하게 됐다.

7일 현재 세계랭킹 1위 고진영은 LPGA투어 상금 랭킹에서도 1위(29만 7309달러)를 고수 중이다. 2위가 이정은6(174만 379달러), 3위가 박성현(144만 7823달러)이다.

피겨의 김연아, 야구의 류현진, 축구의 손흥민처럼 한 명의 압도적인 선수의 활약이 아닌 그 종목에서 그 정도 수준의 선수가 매년 나오고 매년 바뀌는 것이 바로 LPGA 투어의 태극낭자다. 빠른 세대교체, 그만큼 실력이 좋고 잘한다는 의미다.

물론 고진영도 박성현도, 이정은도 방심은 금물이다. 2019시즌 KLPGA 투어 3승, 그리고 2017년 고등학교 3학년 신분으로 US오픈 준우승을 따낸 최혜진(20)도 있다. 태극낭자의 세대교체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대의 선순환처럼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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