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K리그 중계 중인 권예은 해설위원(오른쪽)과 안형진 캐스터(왼쪽). (사진=윤승재 기자)
[스포츠한국 윤승재 기자] ‘위원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대표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카페에 앉아 인터뷰이를 기다리는 기자는 쓸데없는(?) 걱정과 함께 테이블에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하염없이 쪽쪽 빨았다. 인터뷰 이전에 대화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호칭 정리는 필수. 하지만 하나의 호칭으로 부르기에는 인터뷰이의 직책이 너무나도 많았다.

인터뷰의 주인공인 권예은 씨의 직업은 딱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다. WK리그(한국여자축구리그)의 해설위원부터 우먼그라운드(한국여자축구문화진흥협회)의 대표, 그리고 과천시여성축구단 감독과 축구 레슨 선생님까지. 호칭 정리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 뜻밖의 부상이 가져다 준 터닝포인트, 후배 길잡이 자처

해설위원이자 대표이자 감독인 권예은의 인생은 굴곡이 많았다. 선수 시절 교통사고로 U-17대표팀에 나서지 못했고, 수원시시설관리공단(현 수원도시공사) 소속으로 WK리그에 입성한 뒤에도 부상과 함께 길고 긴 재활 기간에 빠지며 날개를 펼치지 못했다. 결국 ‘선수’ 권예은은 2016년 말, 25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부상이 권예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부상으로 인한 좌절, 그리고 부상과 치료를 병행하던 시절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 등을 통해 권예은은 선수 은퇴라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했다.

부상으로 느꼈던 좌절은 권예은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갑작스럽게 큰 부상을 입은 권예은은 ‘원하지 않은 시점에 돌연 축구를 그만둘 수도 있겠구나’라는 은퇴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고, 또 자신이 바로 은퇴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면서 무서워졌다.

권예은은 그 길로 공부에 매진했다. 진로심리상담사, 스포츠심리상담사 자격증 등을 취득하면서 자신의 꿈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는 후배 선수들의 상담사 역할을 자처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조언을 통해 동료 선수들이 은퇴 후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보통 선수들은 막연하게 ‘이렇게 축구를 쭉 하다가 은퇴를 할 거다’라는 계획을 갖고 있는데 사실 쉽지 않아요. 부상 때문에, 혹은 팀이 갑자기 해체를 하면서 갑자기 축구를 그만 둘 수도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이 미래의 자신을 생각하면서 설계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선수들이 은퇴 후에도 방황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저도 열심히 연구하고 있죠.”

아마추어 선수들과 만난 권예은 위원(위). 권예은 위원 제공
▶'대표' 권예은이 아마추어 선수들을 만나는 이유

권예은은 부상을 계기로 WK리그와 아마추어 선수들의 교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부상 후 재활에 힘쓰던 권예은은 우연히 한체대 여자축구동아리 FC천마 학생들을 알게 됐고,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여자축구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권예은은 WK리그 후배 선수들과 다양한 아마추어 선수들이 만나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것이 ‘대표’ 권예은이 몸담고 있는 ‘우먼그라운드’의 시작이었다.

권예은 ‘대표’는 은퇴 이후 본격적으로 WK리그와 아마추어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데 힘썼다. WK리그 선수들과 함께 아마추어 선수들을 상대로 아카데미를 열면서 배움의 장을 여는 한편, WK리그 선수들과의 만남의 장을 통해 그들을 WK리그의 세계로 끌어 오는 데도 힘썼다.

“아마추어 선수들이 WK리그 선수들과의 교류를 통해 WK리그에 관심을 갖게 하려고 노력했죠. 실제로 경기장에서 마주친 아마추어 동아리 선수들도 많아요. 한두 번 찾아오다보니까 재밌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장기적으로는 이 아이들이 친구들을 데리고 오고, 한두 사람이었던 팬들이 나중에는 열명, 스무명으로 늘어나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이런 목표가 있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권예은은 WK리그 해설위원을 계속 하고 있다.

어느덧 3년차인 권예은 ‘해설위원’은 워낙 하는 일이 많아 도중에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아마추어 선수들과 WK리그 교류를 위해선 리그 선수들과의 접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쉽사리 끈을 내려놓지 못했다.

또한 선수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여자축구의 매력을 직접 전달한다는 점에서 해설위원은 포기할 수 없는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이기도 했다.

권예은 위원은 우먼그라운드를 통해 다양한 아마추어 선수들과 만나 멘토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권예은 위원 제공
▶ 권 대표가 꿈꾸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여자축구

권 대표가 바라는 점은 간단하다.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 그리고 누구나 쉽게 여자축구를 접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목표다.

권 대표는 프로와 실업축구, 아마추어의 구분 없이 단순히 ‘여자축구’를 쉽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

특히 어린 친구들이 여자축구를 접할 때 처음부터 선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취미로 가볍게 시작해 여자축구에 재미를 붙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더 많은 어린 아이들이 여자축구를 접하다 보면, 재능 있는 선수들이 더 많이 나올 수도 있고 꼭 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여자축구의 팬으로 자라 리그 붐에 크게 일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권 위원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정말 바쁘다. 인터뷰 당일에만 해도 권 위원은 오전 레슨을 마치고 한 시간 가량의 인터뷰에 임한 뒤, 곧바로 중학교 레슨에 이어 수원으로 이동해 WK리그 해설을 진행했다.

선생님-대표-해설위원, 하루에만 직책이 세 개나 바뀌는 강행군 속에서도 더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과 어린 학생들을 만나는 데 많은 힘을 쏟아 붓고 있다. 지금도 권 대표는 사명감과 뿌듯함을 간직한 채 그라운드 밖을 열심히 누비고 있다.

“저나 우먼그라운드나 ‘여자축구 최고의 OOO'라는 거창한 무언가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높은 산보다는 동네 옆에 있는 동산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계속 옆에서 함께 하면서 쉽게 다가가고 다가올 수 있는 존재가 됐으면 하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여자축구의 미래나 은퇴선수들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바람뿐이에요. 그렇게 하려면 제가 더 열심히 뛰어야겠죠? 힘들지만 보람차게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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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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