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한선태. LG트윈스 제공

[스포츠한국 윤승재 기자]16경기 20이닝 1실점, 평균자책점 0.45. ‘비(非)선수 출신’ 한선태의 프로 적응기는 순조롭다.

지난해 열린 2019 KBO 신인드래프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이름이 호명됐다. ‘비선수 출신’ 최초로 KBO리그에 도전장을 내민 한선태가 LG의 지명을 받고 꿈에 그리던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선수 출신과 일반인에 가까운 비선출의 차이는 극명하다. 구속과 구위 등 선수의 매커니즘은 물론, 운동량과 훈련방식, 경험 등 모든 면에서 선출이 프로에 적응하기가 더 쉽다. 하지만 LG는 독립리그 경험밖에 없는 한선태를 택했고, 한선태는 그 기대에 부응하듯 퓨처스리그(2군 경기)에서 0점대 방어율로 펄펄 날고 있다.

지난해 KBO리그 트라이아웃에 도전한 한선태. 스포츠코리아 제공
▶중3 늦게 빠져든 야구, 엘리트 교육도 전무…‘비선출’의 벽은 높았다

중학교 3학년 때인 2009년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를 계기로 야구의 매력에 흠뻑 빠진 한선태는 본격적으로 야구 선수의 꿈을 키우기 위해 무작정 고등학교 야구부의 문을 두드렸지만 실패했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한선태는 졸업후 고양 원더스와 대학 야구부를 지원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우여곡절 끝에 입단한 대학 야구부에서는 선수 부족으로 투수가 아닌 야수로만 투입되면서 실망만을 안겼다. 결국 자신과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다고 판단한 한선태는 야구부를 나와 군 입대를 택했다.

하지만 한선태는 제대 후에도 꿈을 버리지 않았다. 자비를 들여 독립구단인 파주 챌린저스을 찾았다. 그곳에서 한선태는 박종대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일취월장했다. 언더핸드에서 사이드암으로 팔을 올리자 구속이 140km대로 확 올랐고, 바뀐 폼에 적응이 되자 날이 갈수록 구속이 빨라졌다.

한선태는 또 한 번의 도전을 택했다. 일본 독립리그의 문을 두드린 한선태는 도치기 골든브레이브스에 입단해 김무영 코치에게 투구폼 교정을 받았다.

김 코치는 한선태가 먼저 다가와 자유롭게 질문하고 상의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폼을 직접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고, 한선태는 자신만의 투구 폼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던 2018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그해 1월 KBO가 학생야구 선수 경험이 없는 비선출 선수들에게 프로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규약을 개정한 것. 소식을 들은 한선태는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바탕으로 KBO 트라이아웃에 참가했고, 그 자리에서 144km의 속구를 던지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마침내 한선태는 2차 드래프트에서 LG의 지명을 받아 꿈에 그리던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됐다. KBO 역사상 최초로 프로에 입단한 ‘비선출’ 선수라는 타이틀도 얻게 됐다.

LG 한선태. 윤승재 기자
▶순조로운 프로적응기, 0점대 방어율에 구위도 수준급

프로의 세계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고, 프로 출신 코치들과 선배들의 조언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도 한선태에게는 가슴 벅찬 일이었다.

적응도 순조롭다. 12일 현재 한선태는 퓨처스리그 16경기에 나와 1패 1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0.45를 기록 중이다.

20이닝 동안 실점은 단 2점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1점은 비자책점이다. 삼진도 18개나 잡아냈으며, 4사구도 5개(볼넷 4개)밖에 안 된다. 얼마 전엔 최고 구속인 146km까지 찍었다. 비록 퓨처스리그(2군) 무대지만 웬만한 선출 선수보다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가득염 2군 투수코치 역시 한선태의 투구 내용에 대해 “1군에서도 통할 구위를 가지고 있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가득염 코치는 그의 경험이 조금 더 쌓이면 충분히 1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일 거라는 믿음을 보냈다.

하지만 가득염 투수코치가 지적했듯이 한선태는 아직 경험치가 부족하다. 경기의 흐름을 읽는 시야는 물론, 견제구, 변화구 투구폼 등 세부적인 것도 개선이 필요한 한선태다.

그러나 한선태의 호기심이 그를 차츰 성장시키고 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물어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는 틈만 나면 코치들과 선배 투수들에게 다가가 조언을 구한다.

또한 자신이 투구한 날이면 어김없이 전력분석원에게 다가가 자신의 투구가 어땠는지, 자신의 느낌과 데이터를 비교하는 과정을 거친다. 한선태는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자신의 단점을 하나하나 고쳐나갈 때 큰 희열을 느낀다고 전했다.

LG 한선태의 모자에는 'やればできる(하면 된다)'라는 말이 적혀있다. 한선태는 이 문구를 보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윤승재 기자
▶롤모델은 임창용, ‘하면 된다’는 문구처럼 도전은 계속된다

한선태는 자신의 롤모델인 임창용 같은 선수가 되고자 한다. 한선태의 투구 폼도 임창용과 비슷한 사이드암이다.

한선태는 “WBC에서 TV로 처음 봤는데 그날 이후 영상을 수없이 찾아봤다. 몸 관리를 엄청 잘해서 적지 않은 나이에도 140km대 후반의 공을 던졌지 않은가. 나도 임창용처럼 직구 힘이 좋고 꾸준한 선수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한선태의 모자에는 ‘야레바데끼루’라는 일본어 문구가 적혀있다. ‘하면 된다’라는 말로, 일본 시절부터 적어놓은 글귀라고 한다.

한선태는 “일본 시절 마운드에서 너무 긴장하다 보니까 코치님이 ‘봤을 때 한 번에 집중할 수 있는 문구를 모자에 적어 놓으라’고 해서 제일 좋아하는 말을 적었다”고 말했다. 그 뒤로 한선태는 틈날 때마다 그 문구를 보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의 도전도 같은 맥락이다. 누구도 가능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길을 한선태가 최초로 걷고 있다. 학창시절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비선출 선수가 프로에 뽑히고 2군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둘 줄 누가 알았겠나.

그렇기에 한선태는 주눅들 일이 없다. 모든 것이 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선태는 자신의 목표를 말하면서 “모자에 써있는 문구처럼 된다고 믿어야죠”라고 환하게 웃으며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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