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서귀포=이재호 기자] 올시즌 K리그 초반 나쁜의미로 가장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는 팀은 단연 제주 유나이티드다.

2017시즌만해도 K리그1 준우승을 차지했던 팀이 지난시즌중 15경기 연속 무승 등으로 삐걱하더니 올시즌 개막 후 9경기 연속 무승으로 최하위권에 쳐졌다.

결국 5시즌이나 팀을 이끌던 조성환 감독이 중도하차하고 급하게 소방수로 지난시즌 부산 아이파크 감독을 지낸 최윤겸(57) 감독이 선임됐다. 5월까지 진행된 14라운드까지 리그 12개팀 중 11위(승점10). 2년전 준우승까지 했던 팀이 맞나 싶을 정도다.

본지는 5월 29일 제주 클럽하우스에서 최윤겸 감독과 만나 취임 후 첫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 감독의 소방수로 투입된 심정, 바꾸고 싶은 제주 축구와 구단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들어봤다.

선수단 훈련 후 클럽하우스에서 포즈를 취한 최윤겸 감독
▶선수,감독으로 17년, 떠난 지 17년만에 친정 복귀

최윤겸 감독은 1986년 유공 코끼리에서 프로로 데뷔해 1992년 은퇴까지 오직 유공에서만 뛴 프랜차이즈맨이었다.

1989년 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K리그 베스트11과 국가대표에 선발됐던 최 감독은 선수 은퇴 후 같은팀에서 트레이너와 코치, 감독대행을 거쳐 감독(2001~2002)까지 올랐다. “아직도 1989년 우승 순간이 선하다. 인생에 빛났던 순간”이라고 아련하게 떠올리는 최 감독이다.

그렇게 제주 유나이티드의 전신인 유공 코끼리-부천 SK에서 지낸 생활만 17년. 이후 17년간 최 감독은 대전 시티즌, 강원FC, 부산 아이파크는 물론 터키, 베트남 등에서 감독 생활을 하며 내공을 쌓아왔고 2019년 위기에 빠진 제주의 감독직에 올랐다.

17년간 이 팀에서 선수-지도자를 하다 17년을 떠나있다 연어가 고향을 찾아오듯 돌아온 최 감독은 “어느새 17년이나 됐다. 그동안 K리그에서 감독생활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제주와 인연이 되겠지’하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마음속에 늘 담아둔 구단이었다”며 “돌아왔는데 K리그 최고령 감독이더라. 세월이 많이 흘렀다. 제주의 전화를 받고 고민하지 않았다. 친정팀을 떠난지 17년간 쌓은 경험과 이곳에서 쌓은 17년 축구경력을 모두 바치고 싶었다. 50대 감독의 저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소방수’로 투입…얌전한 축구 아닌 투쟁적-거친 축구해야

17년만에 돌아온 친정이지만 친정은 불이 났다. 그것도 대형화재다. 2017 K리그1 준우승팀이었지만 2년도 되지 않아 제주는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2019시즌 개막 후 리그 9경기 연속 무승(4무5패)으로 4월까지 유일한 ‘0승’팀이었다보니 조성환 감독이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 유나이티드 제공
‘소방수’로 영입된 최윤겸 감독은 친정에 왔다는 감회도 잠시 일주일에 2경기씩 혹독한 일정을 치르고 있다. 그나마 최 감독이 온 이후 승리를 거두면서 안정을 찾는 모양새지만 최 감독 성에는 아직 차지 않는다.

“처음왔을 때 훈련을 지켜보니 프로의식이 부족한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비슷한 성향의 선수들이 많아 너무 얌전했다랄까요. 그동안 해오던 게 부딪쳤으니 이제라도 바꿔야합니다. 선수들에게 투쟁적이고 부딪치고 때로는 거친 축구를 말하고 있습니다. 경쟁 속에 누군가를 이기지 못하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과감하고 부딪치며 ‘정말 열심히, 무서울거 없이 뛴다’는 소리가 나오게 해야합니다.”

▶더이상 감귤타카는 없다… 일대일 시도하는 전진패스 추구

그동안 제주는 ‘감귤타카’로 대표되는 패스축구를 해왔다. 하지만 최 감독은 더 이상 감귤타카를 추구하지 않을 전망이다. 의미 없는 볼점유와 패스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고 전진패스를 하는 조금은 전투적인 축구를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구단에서 저를 부른 건 그동안 해오던 것과 다르게 하라는 의미로 봅니다. 일대일 돌파를 시도하다가 뺏기면 그 선수 혼자만 수비를 못하지만 패스를 하다가 뺏기면 두 선수가 수비를 하지 못합니다. 조금은 단순하게라도 최대한 드리블 돌파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고, 전진패스를 투입해야합니다. 이미 현대 축구와 K리그의 빠른 공격전환을 차단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뒤에서 공을 점유하는 것으론 안된다고 봅니다.”

▶‘덕장?’ 나부터 바뀔 것… 기다리기엔 시간 부족해

최윤겸 감독은 K리그에서 ‘덕장’으로 평판이 자자하다. 그가 거친 팀에 전력외 선수조차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인품은 유명하다.

함께해본 지도자, 선수 모두 ‘단 한 번도 화내는 것을 본적이 없다’고 할 정도. 한국축구에 큰 영향을 끼친 발레리 니폼니시의 수제자로 선수를 믿고 기다리는 축구를 계승해 ‘한국 지도자답지 않다’는 평가가 있기도 하다.

최 감독 역시 “제가 성격이 유하다. 그리고 선수를 믿고 기다리는 게 분명 옳다고 생각한다. 선수 스스로 생각하고 팀을 위해 뛰게 만들어야 좋은 축구가 된다”는 자신의 축구철학을 설파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그 지도방식에 변화를 줄 예정이다. 물론 기존 지도방식의 장점은 유지하되 필요한 경우 강성으로 선수들을 압박도하며 변화를 촉구할 것이라고 한다.

“제 스스로 지도방식을 바꿔야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시즌 시작전 부임했다면 제 스타일대로 해도 됩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주는 시간이 없습니다. 마냥 기다리고 믿어주기엔 매주 경기가 진행됩니다. 냉정하게 기다려주다간 시즌 말미에 제가 여기에 있을지도 보장되지 않고 제주도 작년의 FC서울처럼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원래 경기 중 터치라인에서 지시도 안합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경기중 선수들끼리 해야하는 의사소통의 부재가 보입니다. 그래서 선수들과 양해를 통해 제가 직접 지시를 내리기로 했습니다. 바로 이런 변화들이 저 자신부터, 그리고 제주 변화의 시발점이라 봅니다.”

K리그 최고 덕장이자 화내지 않는 온화한 인품으로 이름난 최 감독이 스스로 변해야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제주의 상황은 좋지 못하다. 벌써 2016년 성남, 2018년 서울처럼 추락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과연 최윤겸 감독은 벼랑 끝 회생불능의 위기 앞에 높인 제주를 살릴 수 있을까. 17년간 몸담았던 팀에 대한 애정과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축구인생 마지막 시기를 불태우겠다는 K리그 최고령 감독의 도전을 지켜본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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