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상화 선수.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또 한 명의 스타가 은퇴를 선언했다. 터질 듯한 허벅지, 집념의 스케이터, 눈물과 감동의 평창까지, '빙속 여제' 이상화(30)가 스케이트화를 벗었다.

이상화는 지난 5월 1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공식 은퇴식을 열고 길었던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작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난 후, 팬들은 몇 차례의 방송 출연을 제외하면 대회를 통해 이상화의 소식을 접하지는 못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계속 이상화의 발목을 붙잡았다.

현역의 꿈을 잇고자 이상화는 최근까지도 재활에 몰두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몸 상태가 온전히 올라오지 않자, 이상화는 때가 됐다고 판단했고 은퇴를 결심했다.

이상화의 은퇴로 이제 한국 빙상계는 지난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두 명의 여제를 모두 떠나보내게 됐다.

밴쿠버 올림픽 여자 피겨 종목에서 한국 여자 선수 최초로 메달을 따낸 김연아는 대회 직후 곧바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그 대회에서 2관왕에 오르며 현역 생활을 이어간 이상화는 4년 후에 열린 평창에서 눈물의 은메달을 따내며 모든 이들에게 최고의 감동을 선사했다.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도전을 이어갔지만 저의 의지와는 다르게 무릎이 문제였다. 좋았던 기억을 갖고 계실 때, 떠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항상 빙상 여제라 불러주시던 최고의 모습만을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비록 스케이트 선수는 마감하지만, 국민 여러분께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

은퇴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상화 선수.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신동에서 천재, 그리고 여제가 된 이상화

이상화는 어린 시절부터 스케이트에 재능을 보인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친오빠를 따라 초등학교 1학년부터 스케이트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휘경여중 시절에 이미 성인 선수들의 기록을 제치고 당당히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상화가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린 것은 지난 2005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 여자 500m 대회였다. 당시 서양 선수들의 전유물이자 힘의 스케이팅이라 불리던 단거리 500m 종목에서 이상화는 당당히 동메달을 따내며 '탈아시아급' 재능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이후 이상화는 500m를 주 종목으로 선택, 한국 무대를 완벽하게 평정한다. 국내에서 적수를 찾기 힘들었던 이상화는 곧바로 열린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서 한국 여자 선수로를 최고 기록인 5위에 오르며 세계적 수준의 선수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여제의 올림픽 정복, 아시아 최초 빙속 2연패

새로운 스타 탄생, 하지만 이상화는 만족하지 않았다. 더 높은 곳을 보고 있었다. 4년 뒤에 열린 밴쿠퍼올림픽은 이상화가 신동과 천재를 넘어 '여제'로 등극하게 된 대회였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종목에서 이상화는 모두의 예상을 뒤로 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는 최초의 올림픽 메달, 그것도 금메달이었다.

단거리 종목의 특성상, 출발에서 사실상 승부가 결정이 된다. 신체조건에서 체격이 작은 아시아 선수들은 500m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화는 타고난 허벅지에서 나오는 하체의 힘과 더불어 피나는 노력을 더해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예니 볼프(독일) 등 여러 경쟁자를 제치고 자신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줬다.

금메달을 따냈지만 이상화는 멈추지 않았다. 2012시즌부터 2014시즌까지 나선 세계 대회에서 500m 세계신기록을 차근차근 갈아치웠다.

2013년 1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1차 대회에서 36초 74로 세계신기록을 달성했고 감을 잡은 2차 대회에서 연달아 기록을 써내려갔다. 말 그대로 '세계신기록 제조기'였다.

1차 레이스에서 36초57로 기록을 앞당긴 이상화는 2차 레이스에서 36초36을 기록, 최고의 경쟁자인 자기 자신을 넘어서며 빙속 여제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현재까지도 이상화의 36초36은 여자 스 피드스케이팅 500m 세계신기록으로 남아있다. 그 어떤 선수도 이상화의 벽을 넘지 못했다.

승승장구, 이상화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다시 역사를 만들었다. 여자 500m에서 올림픽 신기록인 37초28을 포함해 1, 2차 레이스 합계 74초70라는 압도적 성적으로 금메달을 획득, 또 한 차례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로 달성한 최초의 올림픽 2연패였다.

은퇴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상화 선수.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평창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끝이 난 여제의 질주>

이룰 것은 다 이룬 이상화였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다. 은퇴 역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상화의 마음 속에는 마지막 꿈이 남아 있었다. 2018년 고국인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출전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 몸 상태는 부상 투성이었다. 아파서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는 것도 힘들었다.

고질적으로 아픈 왼쪽 무릎 부상에 이어 오른쪽 종아리까지 아프면서 올림픽 출전 여부 자체가 불투명 했다. 2016년과 2017년에 열린 몇 차례의 국제대회에서도 이상화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여줬다.

이제 전성기가 지난 옛날 선수라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상화는 단 하나의 목표,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모든 것을 참아냈다.

이상화가 부진에 빠진 사이, 여자 단거리 종목의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 이상화를 롤모델로 여기며 뒤늦게 실력이 향상된 고다이라 나오(일본)였다.

그는 단숨에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급부상했다. 한국와 일본이라는 특수상과 더불어 여론은 이상화와 나오를 두고 '여제의 대격돌'이라 칭하며 관심을 드러냈다.

부담이 컸다. 하지만 이상화는 당당했다. 억지스러운 겸손함이 아닌 4년이라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줬다. 이길 수 있고, 금메달을 따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고다이라는 36초94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상화는 37초33으로 은메달을 따냈다.

한 번의 작은 실수, 이상화는 아쉬운 마음과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직감하고 레이스 후에 펑펑 울었다. 하지만 진짜는 그 다음이었다. 치열하게 경쟁을 펼친 고다이라가 이상화의 곁으로 왔고, 두 선수는 함 께 손을 잡고 감격적인 포옹을 했다.

우는 이상화를 고다이라가 달래주는 모습은 평창 올림픽 최고의 감동이었다. 화려했던 여제의 마지막 질주,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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