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KCC 이지스를 넘어 한국 농구의 대표 센터 하승진(34)이 은퇴를 선언했다. 본인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지난 14일 장문의 글로 은퇴를 결정했음을 알렸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하승진은 농구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돼 있을까. 우선 2008~09시즌부터 9시즌 동안 전주KCC 선수로서 뛰면서 2회의 우승을 견인하고 2010~11시즌 챔피언결정전 MVP로서 기억될 만하다.

하지만 그 전에 유일한 한국인 NBA 선수 출신으로도 하승진은 큰 화제를 뿌렸었다. 연세대 1학년을 마칠 무렵 그의 NBA 드래프트 도전은 큰 뉴스거리였다.

하지만 하승진의 NBA 커리어가 빛나는 정도는 아니었다.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조차 받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NBA에 진출할 수 있었던 장기가 실전에서 썩 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세계 최고의 농구 리그에 한국인으로서 최초이자 아직까지 유일하게 진출했었다는 점에서 하승진은 기억될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하승진은 NBA에서 어떤 의미를 남겼을까.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유니폼을 입고 NBA 코트에 처음 섰던 당시 하승진은 아직 20번째 생일을 맞이하기도 전인 앳된 청년이었다. ⓒAFPBBNews = News1
▶2004년 NBA 드래프트 전체 46순위

2004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46순위, 2라운드 17순위 픽을 갖고 있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는 하승진을 호명했다. 당시 나이 19세로서 NBA 팀들과 유망주들이 선호하는 드래프트 참가 연령이다.

NBA 드래프트는 미국 밖의 농구 선수들은 물론이고 미국의 어지간한 농구 유망주들에게도 쉬운 문턱이 아니다. 가령 이란인으로서 아시아 농구에서 맹위를 떨쳤고 2008~09시즌부터 5시즌을 NBA 선수로서 보냈던 하메드 하다디도 2004년 NBA 드래프트에 도전했지만 호명되지 않았었다.

이런 측면에서 비교적 낮은 순위라도 하승진의 드래프트 호명은 꽤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를 보자면 본인을 호명했던 포틀랜드와 실제 계약을 맺었다는 점이다.

구단과 선수 집단 사이의 NBA 단체 교섭 합의(CBA)에 따르면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뽑히면 자동적으로 샐러리 장부에 올라가게 돼 사실상 계약이 자동적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2라운드 출신은 그렇지 못하다. 2라운드 출신들 중 아예 계약도 못하고 NBA 코트를 밟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04년 드래프트 1라운드 출신 29명은 모두 최소 1시즌이나마 NBA 커리어를 보냈다. 그 중 전체 1순위 드와이트 하워드를 비롯해 데빈 해리스, 루올 뎅, 안드레 이궈달라, JR 스미스가 올시즌까지 뛰었다.

반면 2라운드에서 호명됐던 30명 중에는 13명이 아예 NBA 코트를 밟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트레버 아리자만이 유일하게 올시즌까지 뛰었다.

▶무엇이 그를 NBA로 불렀나

하승진의 신장 221cm, 미국 현지 표기로 7피트3인치의 신장은 국내에서 역대 최장신인 한편 NBA에서도 보기 드문 장신이다.

현역 중에서는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24·댈러스 매버릭스)와 보반 마리아노비치(31·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동일한 221cm, 리그 최장신으로서 활동한다. 부상으로 2018~19시즌을 뛰지 못한 포르징기스는 108kg 체중의 제법 호리호리한 체격인 데에 반해 마리아노비치는 131kg 체중으로서 138kg 체중이었던 하승진과 비슷한 체격이기도 하다.

221cm 신장 이상은 73시즌 NBA 역사에서 불과 25명만 나온 초장신이다. 하승진이 활동한 2004~05시즌부터 2005~06시즌에도 221cm 이상은 하승진 외 6명만이 코트에 나섰다. 229cm 숀 브래들리와 야오밍, 226cm 파벨 포드콜진, 221cm 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 알렉산드라 라도예비치, 피터 존 라모스가 있었다.

▶어떤 선수였나

아쉽게도 하승진은 단 두 시즌, 그것도 각각 19경기와 27경기 출전에 그쳤다. 총 출전시간으로 보자면 1년차에 104분, 2년차에 212분이었다. 평균 출전시간으로는 1년차 5.5분, 2년차 7.9분이다.

즉 벤치를 달구는 역할에 그쳤다. 거대한 체격임에도 하승진은 볼을 갖고 NBA 수비수와 교전했을 때 혼자서 해결하기 힘들었다. 하승진의 득점 기회는 동료가 수비를 헤집어 놓았을 때에나 패스를 통해 생기곤 했다.

한국에서도 거의 모든 득점 기회를 골밑에서 도모한 하승진은 NBA에서도 거의 골밑에 한정됐다. 2년차 커리어 동안 하승진이 시도한 총 54회의 야투 시도 중 50회가 바스켓으로부터 8피트(약 2.4m) 안에서 나왔다. 페인트 구역 밖은 단 2회 뿐이었고, 그것도 모두 경계 라인 바로 바깥이다.

NBA는 체격도 중요하지만 민첩한 운동능력도 중요한 무대다. 때문에 요령껏 자기 얼굴 앞이나 등 뒤의 수비수를 제치지 못한다면 유의미한 출전시간을 얻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그 어린 시절의 하승진은 가능성을 크게 보여주지 못했다.

이란의 하다디도, 한국의 하승진도 강력한 신체 조건을 기반으로 힘을 떨쳤지만 NBA에서는 그런 신체 조건들이 현격한 우위가 되지는 못했다. ⓒAFPBBNews = News1
평균 기록은 1년차 2004~05시즌 5.5분 출전에 43.5% 야투율 1.4득점 0.9리바운드 0.1어시스트 0.1스틸 0.3블록이었고 2년차 2005~06시즌 7.9분 출전에 58.1% 야투율 1.6득점 1.8리바운드 0.1스틸 0.3블록이었다.

커리어 최고 경기 기록은 오히려 1년차에 나왔다. 좀처럼 10분 이상을 뛰지 못했던 하승진은 2004~05시즌 마지막 날 LA 레이커스전에서 24분을 뛰었다. 여기에서 7회의 야투 시도 중 6개를 성공시키고 추가 자유투까지 얻어내며 13득점을 이뤘다. 그리고 5리바운드 1스틸도 보탰다.

▶아쉬울 수밖에 없었던 도전

한국에서는 혼자 상대하기 힘든 거대 센터지만 NBA에서는 출전기회조차 받기 힘든 처지를 하승진이 겪었다. 이런 점에서 심적으로 힘들었을 만했다.

8시즌 NBA 커리어 동안 평균 19득점 9.2리바운드 1.9블록을 남겼고 신인 때부터 시즌마다 올스타에 선정됐던 중국인 야오밍은 229cm의 장신과 함께 외곽에서도 슛할 수 있는 부드러운 스킬을 갖고 있었다. 하다디가 커리어 최고 출전시간이 평균 10.7분에 그쳤던 것도 NBA 기준 스킬 부족에 기인했다.

이런 점에서 하승진의 NBA 진출이 실패라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예 꿈도 꾸지 못했던 NBA 진출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하승진은 큰 의미를 부여받을 만하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전주KCC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커리어를 마감하면서, 아시안 게임과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서 나서면서 그의 농구 커리어는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를 가졌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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