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2014년은 경남FC 팬들에게 기억하기 싫은 해다.

리그 성적은 갈수록 기울어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떨어졌다. 2006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2부리그 강등 위기에 놓였던 경남FC. 당시 구단주인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2부리그로 떨어지면 구단 운영을 하기 힘들다’는 말을 SNS에 남기며 분위기는 더 최악으로 치닫았고 결국 광주FC에게 패하며 강등됐다.

홍 지사의 예고대로 해체설이 나돌았지만 경남도 감사관실은 경남FC를 해체가 아닌 구조조정으로 팀운영을 하기로 했다.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이후 대통령 후보까지 되고 지금도 ‘前 대표’라 불리는 홍준표의 정당은 자유한국당.

이 자유한국당의 현 대표인 황교안은 지난달 30일 경남 창원축구센터를 찾았다. 바로 4월 3일 보궐선거 유세를 하기 위해 경기장 안까지 들어왔고 당당히도 바로 그 당을 홍보하고 강기윤 후보를 인사시켰다.

해체까지 언급했던 바로 사람이 전 대표로 있는 그 당의 현 대표가 ‘축구장에서 정치적 메시지는 금한다’를 뭉개버린 초유의 사태로 인해 정작 피해를 볼 것은 경남FC 구단이다.

이미 승점 10점 삭감의 아픔이 있는 경남은 또 승점 10점이 삭감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경남FC를, 그리고 축구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일어난 일일까.

사건은 이랬다. 지난달 30일 경남과 대구FC의 K리그 4라운드 경기가 열린 경남 창원축구센터에는 4월 3일 보궐선거를 앞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유세단이 경기장을 찾았다. 황교안 후보는 당의 번호인 2번을 연상케 하는 브이(V)자를 흔들었고 강기윤 후보는 자신의 기호와 이름이 적힌 붉은색 점퍼 차림까지 입었다. 유세단 일부는 표도 사지 않고 들어갔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축구장의 법, 사회의 법을 모두 무시한 행위다.

경남FC 측은 분명 최대한 유세단을 제지하려고 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유세단을 막기 힘들었다는 것. 경남 관계자는 "경호원이 제지했지만 이마저 2~30명이 밀고 들어오니 뚫릴 수밖에 없었다"며 "경기장 안에 들어와서도 옷을 벗고 선거유세를 멈출 것을 당부했지만 소용 없었다"고 스포츠한국에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로축구연맹 규정에 따르면 경기장 내에선 정당명·기호·번호 등이 노출된 의상 착용이 금지된다. 또 정당명이나 후보·기호·번호 등이 적힌 피켓·어깨띠·현수막 등의 노출이 불가능하다. 이를 어길 경우 연맹은 홈 팀에 10점 이상의 승점 감점이나 무관중 홈경기, 제 3지역 홈경기, 2000만원이상의 제재금 부과 등의 제재를 가하게 된다.

곧바로 프로축구연맹은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회의를 통해 징계할 것은 징계하겠다는 입장.

프로축구연맹 제공
다른 구단 관계자는 “솔직히 그렇게 막무가내 식으로 다수의 인원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는게 현실”이라며 “그렇다고 대통령 후보로까지 언급되는 분을 강제로 끌어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아는가”라며 경남FC의 사정을 이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축구계 관계자는 “경남이 과연 얼마나 적극적으로 자유한국당 유세단을 저지했는지는 소명해야할 일”이라며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에 따라 연맹의 징계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 ‘높은분이니까 그냥 놔두자’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는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선거철이면 늘 축구장 주변은 유세 단원들과 후보들이 득실된다. 당연하다. 축구장만큼 단시간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날 경기도 6000명 넘는 유료관중이 들었고 전체 관중만 놓고 보면 만명은 됐다. 만명에게 한 번에 자신을 어필하기에 축구장만한 곳은 없다.

하지만 그 정도가 있다. 오죽하면 연맹이 규정까지 만들어 당을 나타내는 옷도 못 입게 하고 밖에서 인사만 할 수 있게 했을까.

그러나 무려 2년 이상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황교안 대표는 연맹의 법은 무시한채 경기장 안까지 들어와 축구장을 정치에 물들게 했다.

경남FC는 이미 큰 아픔을 겪은 구단이다. 2014년 해체설이 나온 지 1년도 안된 2015년 11월, 이번에는 전 대표이사의 심판 매수 의혹이 불거졌고 19경기에 걸쳐 심판이 경남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인정돼 유죄가 선고됐다. 프로축구연맹은 1983년 K리그 설립이후 33년만에 최초로 경남에게 승점 10점을 삭감한채 2016시즌을 시작하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정도면 그 험한 갱도의 끝보다 더한 ‘막장’을 마주한 경남이었다. 프로축구단으로서 위신은 바닥을 쳤고 실무 직원이 6명밖에 안 되는 상황에 내몰렸다. 2016년 개막 미디어데이에서는 대놓고 ‘경남은 승점자판기니까 그냥 이기겠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런 고난을 겪고 김종부 감독 체재 하에 경남은 2017 K리그2 우승, 2018 K리그1 준우승을 차지하며 지역 팬들의 사랑받는 구단으로 거듭났다. 올시즌에는 조던 머치, 룩 등 세계적인 스타를 영입하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까지 나가 세계적으로도 ‘경남’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다시 해체까지 언급했던 이가 적을 두고 있는 그 당에서 이번에는 현 대표가 경기장까지 들어와 경남FC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선거 유세단을 막지 못한 경남에게 중징계가 내려져도 할 말이 없는 상황.

경남FC 팬들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고 억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연맹 차원에서는 재발방지를 위해서 징계를 내릴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거세다. ‘정치인은 부고빼고는 어디서든 언급되면 좋다’는 말이 있던가. 그렇다면 자유한국당의 선거 유세는 성공했다.

불쌍한건 경남FC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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