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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하며 대한민국 축구역사를 새로 썼던 거스 히딩크(73·네덜란드) 감독과 박항서(60) 당시 수석코치가 18년 만에 적장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됐다.

히딩크 감독은 중국 23세 이하(U-23) 대표팀을,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U-23 대표팀을 각각 이끌고 내년 1월 태국에서 열리는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에 나서게 된 것이다.

아직 조 편성이 발표되진 않았으나, 올림픽 출전권이 15개 팀 중 3개 팀에만 주어지는 만큼 서로가 서로를 넘어야 할 수도 있는 상황.

18년 전 한솥밥을 먹으며 한국축구의 신화를 이끌어냈던 두 `연인'이, 이번엔 외나무다리에서 마주할 수도 있는 묘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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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신화, 그 중심에 섰던 히딩크·박항서

2002년 월드컵은 한국축구 역사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었다.

그동안 월드컵에서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한국은 당시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폴란드를 꺾고 사상 첫 승을 신고하더니, 우승후보 포르투갈과 이탈리아(16강) 스페인(8강)을 잇따라 제압하며 월드컵 4강까지 진출했다.

그 중심에 히딩크 감독이 있었다. 부임 초기 평가전에서 잇따라 대패하면서 여론이 들끓었지만,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며 전국민적인 영웅이 됐다.

한국축구의 레전드 박지성을 비롯해 안정환 차두리 이천수 등이 당시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대표팀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의 곁에 늘 박항서 당시 수석코치가 있었다.

그는 외국인감독인 히딩크와 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팀을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 폴란드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황선홍이 히딩크 감독 대신 달려가 안겼던 인물이기도 하다.

월드컵을 마친 뒤 히딩크 감독은 체육훈장 1등급인 청룡장을, 박항서 코치는 맹호장을 각각 받았다. 이후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 PSV아인트호벤 지휘봉을 잡고, 박 코치는 국내에 머무르면서 둘의 인연에도 마침표가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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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처럼, '베트남의 히딩크'가 된 박항서

박항서 코치는 이후 프로축구 경남FC와 전남드래곤즈, 상주상무 등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7년 9월엔 베트남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아 A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함께 이끌었다. 이른바 ‘박항서 매직’의 시작이었다.

당시 박 감독은 아시아에서도 축구변방이던 베트남을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모시켰다. 그의 지휘 아래 베트남은 2018년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아시안게임 4강, 스즈키컵 우승, 아시안컵 8강에 잇따라 올랐다.

베트남 축구역사상 역대 최고 성적이거나, 10년 이상 이어지던 베트남축구의 ‘한’을 풀어낸 결과들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2002년 월드컵이 자주 언급됐다. 빠르고 투지 넘치는 베트남의 플레이는 당시의 히딩크호를 떠올리게 했다. 월드컵 당시 국내 풍경이 그랬듯, 베트남도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현지에선 거리응원이 펼쳐졌다.

박 감독에겐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별명이 붙었고, 베트남 국민들에겐 국민적인 영웅이 됐다.

그리고 2002년 이후 호주, 러시아, 네덜란드를 비롯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첼시 등을 이끌었던 히딩크 감독도 아시아 무대로 돌아왔다.

그는 지난해 9월 중국 U-23 대표팀 사령탑에 공식 부임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을 준비하는 팀이었다.

히딩크호가 출항하는 첫 무대는 AFC U-23 챔피언십 예선이었다. 올림픽 최종예선 진출권이 걸린 대회였다. 히딩크호뿐만 아니라 박항서호, 그리고 김학범 감독이 이끈 한국이 본선 진출을 목표로 총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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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언론들 극찬…‘새 도전’ 나선 두 사령탑

첫 출항에 나선 히딩크호는 가뿐하게 예선을 1위로 통과했다. 라오스를 5-0으로, 필리핀을 8-0으로 대파했고, 말레이시아와는 2-2로 비겼다. 2경기에서 무려 15골을 넣은 득점력에 중국 언론들도 환호했다.

시나스포츠 등 현지 언론들이 “히딩크 감독이 팀을 완전히 달라지게 만들었다”며 “올림픽대표팀이 아니라 A대표팀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로 인상적인 성적이었다.

전 대회 준우승팀 박항서호도 압도적인 기량을 뽐냈다. 브루나이전 6-0 대승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를 1-0으로, 그리고 태국을 4-0으로 연거푸 제압했다.

예선 3전 전승, 11득점 무실점. 예선에 참가한 43개 팀 가운데 전승 무실점은 일본과 바레인, 그리고 베트남 뿐이었다.

특히 태국전 대승의 의미가 컸다. 태국은 베트남이 반드시 넘어야 할 라이벌이었기 때문. 박 감독은 “이제 베트남은 태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선언, 국민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나란히 본선에 진출한 박항서호와 히딩크호는 내년 1월 태국에서 열리는 AFC U-23 챔피언십 본선에 출전하게 된다.

이 대회는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을 겸하는 대회로, 16개 팀이 4개 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치른 뒤 8강 토너먼트를 통해 우승팀을 가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시아에 배정된 올림픽 출전권은 단 3장 뿐. 이 대회에서 3위 안에 들어야만 올림픽 출전이 가능하다. 베트남도, 중국도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는 만큼, 서로가 서로를 마주할 수도 있는 셈이다.

두 팀 모두 ‘새 역사’에 도전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베트남은 사상 첫 올림픽 출전에 도전한다. 중국도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한 2008년을 제외하고 자력 첫 올림픽 출전을 바라본다.

18년 전 한솥밥을 먹었던 박항서와 히딩크 두 사령탑의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김명석 스포츠한국 기자 holic@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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