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봄소식과 더불어 한국 체육에도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2020도쿄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 2032하계올림픽 남북한 공동유치 발표로 한국 체육은 다시 한 번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심석희의 성폭력 폭로로 시작된 한국 체육의 병폐 치유 방안을 두고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아직 한국 체육은 춘래불사춘(春來春來不似春)이다.

지난 22일 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게 한국 체육의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들 단체들은 선수의 인권침해를 방조하고 조장한 대한체육회에 강력한 경고와 제재를 요청했다. 체육 현장의 성폭력과 폭력을 은폐한 체육계의 비인권적인 행태를 개선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미온적인 대한체육회를 손봐달라고 IOC에 부탁한 것이다.

이에 발끈한 경기단체연합회와 대한체육회 정·준회원 종목단체는 26일 시민단체들이 IOC에 대한체육회 제재 촉구 서한을 보낸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체육단체들은 2020도교올림픽 단일팀 구성, 2032하계올림픽 남북공동유치, ANOC(국가올림픽위원회 총연합회) 총회 서울 개최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대한체육회 제재 요청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칫 시민단체들의 요구대로 IOC가 대한체육회에 제재를 가한다면 대형 이벤트를 앞둔 한국 체육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고 국익에 불이익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시민단체와 체육단체는 한국 체육계의 개선 방안을 놓고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는 외부의 힘에 의존하려고 하고, 체육단체는 내부적으로 해결하자는 의지가 강하다. 두 단체는 해결 방식을 달리하지만 추구하는 목표는 같다. 지금까지 한국 체육계에 만연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한국 체육을 놓고 두 단체가 얼굴을 붉히는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한 책임은 대한체육회가 져야한다. 심석희의 폭로 이후 체육계의 각종 비리가 연달아 터졌지만 대한체육회는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빌미를 주고 말았다.

체육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부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책 보다는 여론에 편승한 근시안적 정책을 들고 나왔다. 병역특례제도 체육연금제도 개편과 소년체전폐지 등을 거론했고 일부 정치인과 시민단체들은 이에 장단을 맞췄다. 이들은 체육 발전이란 순수성 보다는 체육을 정치진영의 권력투쟁으로 여기고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는 명목을 내세워 전수조사를 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성난 마음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하루빨리 선수보호를 위한 지속적인 제도 개선 및 자정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올림픽에서 톱10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체육 강국이다. 세계에서 5번째로 동하계올림픽, FIFA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빅이벤트를 성공리에 개최했다.

체육뿐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성숙한 나라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교체했고, 세계 톱10에 드는 무역 대국이다. 국가에 위기가 있을 때마다 국민들이 똘똘 뭉쳐 슬기롭게 극복하곤 했다. 마음만 먹으면 체육계의 고질병 수술쯤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울 것이다.

나라가 보수와 진보로 갈려 시끄럽다. 가득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체육계마저 진영 다툼에 휘말린다면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체육계 수술은 외부의 도움 없이 우리 손으로 말끔하게 해내야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겠는가. 모처럼 불고 있는 남북 평화 무드에 체육이 흙탕물을 튀길 순 없는 노릇이다. 임진국 한국체육언론인회 편집위원/전 스포츠투데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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