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중국, 혹은 중동이 전세계 최고의 자금력을 가진 리그가 되면서 기량이 뛰어난 한국 선수들, 특히 중앙 수비수가 ‘中국 혹은 中동’으로 떠난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이들의 선택과 팬들의 지지 사이의 괴리감은 크다.

김민재(23·베이징 궈안)의 중국 이적으로 인해 폭발한 ‘반中행’은 어떻게 봐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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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는 팬들의 심정, 그러나 약화하는 한국 축구

김민재는 전북에서 혜성같이 등장해 곧바로 2017시즌 영플레이어상을 받고 대표팀 핵심으로 떠올랐다. 부상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에 나가지 못하자 팬들이 대신 가슴 아파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전북 현대의 압도적인 우승에 핵심 역할을 했음에도 올해 나이가 만 23세에 불과할 정도니 현재 실력과 미래 재능을 모두 가진 선수가 김민재다.

그런 김민재가 ‘중국에 가면 중국 수준에 맞춰진다’는 중국화의 본진에 갔으니 팬들이 실망하는 것은 당연지사.

홍명보 이후 ‘국민 수비수’가 20년 가까이 부재한 상황에서 향후 대표팀 수비 10년을 책임져 줄 것으로 봤던 김민재가 더 큰 성장을 택할 수 있는 무대로 가지 않은 것에 아쉬워하는 팬들의 마음도 헤아려야한다.

한국 축구는 이영표, 설기현, 안정환 등이 1세대로 중동과 중국 진출을 했던 이후 2010년대들어 국가대표급 선수의 진출이 많아졌다.

특히 조용형, 김영권 등이 성공하며 ‘한국 중앙 수비수’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높아지면서 이정수, 곽태휘, 오반석, 이용, 장현수, 김주영, 김기희, 권경원, 홍정호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중앙 수비수들이 중국과 중동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니러니하게도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는 2019 아시안컵까지 실패만 거듭하고 있다. 월드컵은 2회 연속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아시안컵은 2011 3위, 2015 준우승, 2019 8강으로 추락했다.

원인을 찾아야했고 2010년대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대표급 선수의 중국, 중동행을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한 두 명이 갔을 때는 ‘일탈’이지만 다수가 가면 ‘집단 행동’이 되고 대표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네덜란드나 아프리카처럼 좋은 선수를 키워 파는 ’셀링리그‘로 한국을 만들면 된다’고 했지만 네덜란드나 아프리카 선수들은 더 좋은 유럽리그로 가지만 한국 선수들은 K리그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중국과 중동으로 간다는 점에서 대표팀 전력 강화까지 이어지는 선순환이 되기란 쉽지 않다.

갈수록 중국과 중동으로 가는 선수가 많아지고 자연스레 대표팀 성적도 부진한 것이 장기화되면서 팬들은 중국과 중동으로 간 선수에게 아쉬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팬들도 아쉬움은 아쉬움에 그쳐야지 인격모독이나 도를 지나쳐서는 곤란하다. SNS까지 찾아가 욕을 퍼붓는 것은 아쉬움의 발현이 아닌 행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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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에게도 팀 선택의 자유가 있다… 현장의 생각은?

한 축구 관계자는 “팬들은 ‘유럽에 가야지’, ‘돈을 적게 받더라도 도전해야한다’고 너무 쉽게 얘기한다. 만약 자신의 인생이라면 정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당장 눈앞에 막대한 이익이 있는데 보장되지 않은 미래의 이익을 쫓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라며 열을 올린다. 이어 그는 “팬들은 말은 쉽게 한다. 하지만 그 팬들이 선수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며 현실 불가피론에 무게를 실었다.

유명 축구 선수도 “일반인들도 중국이나 중동에서 자신이 받는 연봉의 몇 배를 준다고 하면 가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축구선수는 다른 직업에 비해 수명이 짧다. 그러다보니 더 눈앞의 이익에 집착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축구 선수 중에 대표선수가 되는 것만큼 많은 연봉을 받고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수도 많다. 직업 특성도 고려해야한다”고 했다.

선수가 어떤 나라든, 어떤 팀이든 택하는 것은 자유다. 선택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진다. 선수에게 있어 경기에 나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A에이전트는 “소속팀에서 많은 이적료와 연봉을 지급했다는 것은 그 선수를 중용하겠다는 것이다. 선수는 뛰어야한다. 단순히 돈을 떠나 주전 경쟁이 불확실한 유럽무대에 진출하는 것보다 자신을 대우해주고 출전기회를 확실히 보장해주는 팀에서 뛰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소속 선수를 중국과 중동으로 많이 보냈던 B에이전트는 “왜 선수들만 가지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청년들이 창업보다 공무원 시험에 열중하는 것은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 청년들, 그리고 그런 사회분위기를 만든 이들은 선수들에겐 ‘도전하라’고 말한다. 아이러니 아닌가”라며 “선수들도 결국 20~30대 청년들이다. 한국 사회 분위기와 맥락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안정성을 추구하는데 선수라고 왜 안정적인 직장을 택하는게 안되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안정에 비난보단 도전에 박수를… 선수들도 팬 기만 말아야

결국 안정을 택하는 선수를 비난할게 아니라 ‘도전’을 택하는 선수들이 박수 받는 축구계 문화 형성이 가장 중요하다. 분명 이런 선수들이 많아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한국 축구의 발전에도 큰 기여가 될 것이다.

손흥민, 기성용, 구자철처럼 전국민적 스타가 아니더라도 석현준, 지동원 등처럼 어린 나이부터 포기하지 않고 유럽에서 도전하고 있는 선수들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안정성을 추구하고 ‘돈’을 우선순위에 둔 선수가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 아쉬울 수 있지만 낙인을 찍어 비난해선 곤란하다.

선수들도 팬들을 기만해선 곤란하다. 뻔히 중국과 중동리그에 가면 K리그보다 성장이 더뎌지는데도 ‘도전을 위해 간다. 성장하기 위해 선택했다. 돈은 중요치 않았다’와 같은 말은 축구팬들을 기만할 뿐이다.

쉽진 않겠지만 선수들은 중국, 중동에서도 더 열심히 노력해 ‘실력’으로 중국화와 같은 논란을 털어내면 된다. ‘중국화’ 논란의 직격이었던 김영권은 오직 실력만으로 월드컵을 통해 ‘빛영권’으로 거듭난 사례처럼 성장은 못해도 실력이 하락하지 않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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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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