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인천국제공항=이재호 기자] 아시안컵 8강 탈락에도 불구하고 사과 한마디 없었고 도리어 귀국 인터뷰에서 당당하게 “우리의 경기 스타일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쁘게 보면 고집, 좋게 보면 신념을 전혀 꺾을 생각이 없는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의 의지는 확고하다. 그렇다면 벤투가 가려는 길이 한국 축구에 옳은 방향이고 좋은 길일까. 원점부터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연합뉴스 제공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28일 오후 5시 30분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2019 아시안컵을 마치고 아랍에미리트에서 귀국했다.

2004년 8강 탈락 이후 15년만에 8강 탈락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한 축구대표팀은 해외파를 제외한 12명의 선수와 코칭스태프만 귀국했다.

이날 귀국 인터뷰에서 벤투 감독은 8강 탈락에 대한 사과없이 "우리 선수들은 선보이고자 하는 플레이를 잘 이행했다"며 “문전 처리가 미흡했을 뿐 우리의 공격 스타일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라며 "앞으로 득점 기회를 많이 만들 수 있도록 대표팀을 다듬겠다"고 했다.

벤투는 강하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팀을 이끄는 게 내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벤투가 말하는 ‘지배와 점유’, 상대성으로 인해 당연했다

벤투 감독은 누누이 자신의 축구 철학에 대해 ‘지배와 점유’라고 강조해왔다. 높은 볼점유율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경기를 지배하고 좋은 기회를 많이 만들다보면 골이 따라온다는 것.

이론적으론 참 좋다. 이 축구가 가장 잘 구현된 것이 바르셀로나-스페인의 전성기 시절일 것이다. 한때 이 축구는 세계 축구를 이끈 트렌드였다.

벤투 감독은 점유를 중요시했지만 지배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은 점유를 위해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이 백패스를 남발했고 자연스레 아무 의미없는 점유율만 높아졌다. 지배했다곤 하지만 한국이 상대한 팀은 필리핀, 키르기스스탄, 중국, 바레인, 카타르로 피파랭킹 80위권 밖의 약팀이었다. 어떤 축구를 해도 기본적으로 지배할 수 밖에 없는 상대성이 있는 팀이었다.

연합뉴스 제공
▶더 이상 점유=지배 아냐… 손흥민 두고 왜 역습 축구 하면 안되나

더 이상 점유가 곧 지배로 이어지는 축구가 아니다. 축구에는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다. 라인을 높이 끌어올려 전방부터 압박하는 축구, 수비를 탄탄히한 이후 역습을 노리는 축구, 수비를 하며 측면과 중앙의 크로스로 장신 공격수를 이용하는 축구 등 형태는 다양하다.

왜 한국 축구는 선수비 후역습을 하면 안되나. 손흥민이라는 세계에서도 역습으로는 최고인 선수를 두고 왜 이를 활용하는 전술을 짜지 않나. 왜 김신욱, 석현준 등 장신 스트라이커가 있음에도 아예 명단에도 안뽑았다 카타르전에 지고 있는 상황이 되자 수비수 김민재를 올려야만 했나.

수많은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던 벤투 감독의 아시안컵이었다. 벤투 감독은 16강 바레인전을 앞두고 ‘10경기동안지지 않았는데 이렇게 나쁜 여론이 많다. 지면 어떨지 궁금하다’고 했다. 자만이다. 지지 않은 것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지지 않았는지가 중요하다. 필리핀, 키르기스스탄을 상대로 1-0으로 겨우 이긴 것은 진 것과 다름없음을 인정하지 않다 보니 결국 바레인에게 연장 승부, 카타르에게 패한 것이다.

▶받아들여야하는 아시아팀의 한계… 선수비는 나쁜 축구가 아니다

이번 아시안컵을 통해 드러났지만 당장 한국은 아시아에서도 최고 강팀이 아니다. 왜 강팀이 아닌데 강팀들이 하는 ‘지배와 점유’의 축구를 하려고 하나. 클럽 축구에서도 괜히 중하위권팀이 수비를 탄탄히 하고 역습하거나 장신 공격수에 의존하는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팀들도 바르셀로나처럼, 맨체스터 시티처럼 축구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더 좋은 선수로 구성되고 뛰어난 팀에게 일말의 승리에 대한 희망조차 없음을 알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냉정하게 아시아는 세계 축구에서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대륙이다.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한국이 아시아 대륙 소속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팀은 필연적으로 월드컵에서는 ‘승리 제물’일 수밖에 없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이란을 제외하곤 모두 4시드였고 일본을 제외하곤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런 아시아팀의 한계와 그나마 아시아팀이 좋은 성적을 냈던 것을 떠올리면 방향성이 나온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은 김태영-홍명보-최진철로 이어지는 철의 3백을 바탕으로 압박 수비를 펼쳐 4강신화를 이뤄냈다. 러시아월드컵에서 이란도 포르투갈-스페인이 속한 죽음의 조에서 1승1무1패로 선전했던 것도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상대를 질식시켰기 때문이다.

먼저 수비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무의미한 점유, 백패스많은 점유보다 강하게 수비하다 한방을 노릴 때 유연한 공격전개가 되는 축구도 박수받아 마땅하고 좋은 축구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은 어느 대표팀을 가도 같은 축구를 할 수 있는 대표팀을 만들겠다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야 선수도 지도자도 혼란이 없고, 궁극적으로 대표팀이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벤투를 통해 그런 축구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이다.

물론 좋다. 하지만 이 축구는 시기상조가 아닐까. 당장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점유를 중요시하고 경기내내 지배하는 것을 강조하며 역대 한국대표팀 최장수 감독으로 활약했지만 막상 유럽 강팀, 아시아 최종예선에 들어가니 한국은 전혀 우리가 원하던 축구를 하지 못했다. 왜냐? 상대가 그 축구를 더 잘하기 때문이고 한국이 객관적 열세에 그런 축구를 하기엔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좋은 선수가 쏟아지지 않는 이상 이를 극복할 방법은 없다.

벤투는 ‘지배와 점유’를 통해 많은 공격 기회를 만들어내는 축구를 포기하지 않으려한다. 하지만 이 축구는 소위 아시아 강국인 이란,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호주를 만나지 않고 ‘꿀대진’으로 불리며 약체팀만 상대한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실패로 판명났다.

기본적으로 벤투가 가려는 방향과 한국축구가 가려는 방향이 옳은지 고민해볼 시간이 왔다.

-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