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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체육인 및 국민들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이기흥 회장은 15일 서울 올림픽파크텔 아테네홀에서 열린 이사회를 앞두고 체육계 폭력·성폭력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이 회장은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용기를 내어 주신 우리 피해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또한 한국체육이 오늘날 세계 10대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과 성원, 격려를 해주신 국민 여러분과 정부 및 후원을 해주신 기업인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이어 “지금 이 순간에도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며 땀방울을 흘리며 훈련에 임하고 있는 우리 선수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한국체육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는 우리 체육인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이 회장은 그동안 내부 관계자들이 징계, 상벌에 관연함으로써 자행돼 왔던 관행과 병폐에 대해 대한체육회가 자정기능을 다하지 못한 점을 국민 앞에서 사과했다.

이러한 병폐를 뿌리 뽑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정부와 긴밀한 협의 하에 회장 직속기구로 전문가, 시민사회 단체가 참여하는 피해선수에 대한 관리-보호 TF를 즉시 구성, 무기명, 본인, 또는 제3자의 신고-접수 및 조사기능을 부여해 조직적 은폐나 묵인 방조 시에 연맹을 즉시 퇴출시키고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며 이를 무기로 부당한 행위를 자행하는 것을 뿌리 뽑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 회장은 “빙상연맹에 대한 광범위하고도 철저한 심층 조사를 실시해 엄중하게 그 책임을 묻고, 관리 감독의 최고 책임자로서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고 정상화시키는 데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철저히 쇄신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한참이나 때늦은 사과라는 반응이 절대적이다.

지난 8일 심석희의 폭로 보도 이후 대한체육회는 10일 오후 뒤늦게 사과문을 발표해 빈축을 샀다. 아이러니하게도 심석희의 폭로가 나오기 직전까지 ‘스포츠계 현장의 (성)폭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통해 성과를 자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체육계 시민단체들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사퇴를 요구했고, 이에 국민청원까지 등장했지만 정작 이 회장은 지난 11일 제26회 세계남자핸드볼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의 개막전을 보기 위해 독일에 머물러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또한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이 회장이 평창 올림픽 당시 심석희의 면전에서 그녀를 폭행한 조재범 코치를 돌아오게 해준다고 발언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이 회장은 이에 대해 부인했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날 입장 발표에서는 5일 전 사과문과 비교했을 때 알맹이를 넣기 위한 시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대한체육회는 우선 성폭력 가해자 영구제명 및 국내외 취업을 원천 차단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를 위해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사법처리 대상 검찰 고발의 의무화, 은폐 등 조직적 차원의 비위단체 회원자격 영구 배제 및 단체임원까지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홈페이지, 보도자료 등을 통해 처벌-징계내역 공시를 의무화하고, 국내체육단체 및 국가별 체육회(NOC) 등과 협력체계를 즉시 구축해 가혹행위 및 (성)폭력 가해자가 국내외에서 발을 못 붙이도록 엄정 조치하겠다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전했다.

또한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조적 개선방안 확충을 위해 국가대표선수촌 내 선수관리 시스템을 개선할 것을 약속했다. 여성 부촌장 및 여성 훈련관리관을 채용하고 숙소 일상생활 관리체계를 전면 개편하며 선수촌 내 인권상담센터 설치 및 인권관리관, 인권상담사를 상주 배치한다는 계획을 전했다. 학교 및 실업팀 운동부 훈련환경에도 국가대표 선수 관리 기준을 준용한다는 방침.

이 밖에 성폭력 조사 및 교육을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 실시하고, 선수 육성 시스템의 근본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세부적인 계획들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체육계 쇄신에 대한 요구는 과거에도 줄곧 있었고, 체육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지금껏 흘러왔다. 허울뿐인 대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형식적인 징계 방안 및 예방책이 아닌 뼈를 깎겠다는 마음가짐과 행동으로의 실천이 필요하다.

이 회장은 2016년 11월 취임식 당시에도 “뼈를 깎는 자성과 쇄신을 바탕으로 새롭게 변화해 국민 여러분에게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신뢰와 사랑을 받는 체육회로 거듭나겠다”는 발언을 남긴 바 있다. 이미 한참이나 늦었지만 앞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다. 지킬 자신이 없다면 현 시점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체육계의 미래를 위해 차라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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