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용인=박대웅 기자] 한국 농구 팬들에게 처음 알려진 이름은 토니 애킨스였다.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사랑했고, 태극마크를 가슴에 새기겠다는 각오를 품고 한국 땅을 찾았다.

다소 어눌하지만 한국어를 사용하며 귀화혼혈선수가 아닌 한국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전태풍씨입니다”, “시청자 하라분(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다”와 같은 유쾌한 어록들을 남기기도 했다.

사진=박대웅 기자
그렇게 전태풍이라는 한국 이름을 유니폼에 새긴지 10년이 지났다. 여전히 일부 편견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농구 팬들이 그를 똑같은 한국인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많은 사랑과 응원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전태풍이 끝내 새기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한국을 찾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던 태극마크다. [인터뷰ⓛ]편에서 올스타전, [인터뷰②]편에서 그의 KBL 커리어를 함께 돌아봤다면 마지막 [인터뷰③]편에서는 코리안 드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선의의 경쟁자 이승준, 양동근-김주성과의 호흡 상상

전태풍이 한국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가진 것은 바로 유럽 무대에서 왕성히 활동했던 24세 무렵이었다.

“그 때 동료 선수가 자기네 나라 대표팀 이야기 너무 많이 했어요. 너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침대에 누우면 저도 막 상상했어요. 우리가 막 금메달 따고, 야오밍이랑 해서 이기고 올림픽까지 나가고 캬! ‘그러면 한국 농구 많이 올라갈 거야’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전태풍은 소속팀 KCC에서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태극마크와는 끝내 인연이 없었다. 빅맨 전력이 약했던 한국팀의 사정상 전태풍보다 이승준이 가진 높이가 더욱 필요했고, 대표팀 감독들이 추구하는 농구 스타일이 전태풍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전태풍도 국가대표에 승선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

“10년 전 KBL 보면 가드 플레이가 지금하고 달랐던 것 같아요. 옛날에 우리 감독들 너무 한 박스로 ‘이렇게 뛰어야 해’, ‘이거 아니야’, 레이업 찬스 때 ‘외곽으로 빨리 빼야해’ 이렇게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팬들에게 재미없지. 그건 원래 제 스타일 아니에요. 저는 막 들어가서 앤드원 만들고 싶었어요. 대표팀 뿐 아니라 KBL에서도 허재 감독 빼고는 제 스타일 싫어했어요. 허재 감독님은 자신 있게 하라고 했어요. 막 욕할 때도 있는데 그러면 저는 더 열 받아서 엄청 열심히 했어요. 허재 감독님 만난 건 완전 럭키. 그래서 1년에 한 번 정도 지금도 연락해요(웃음).”

이승준과 전태풍은 태극마크를 놓고 뜨거운 경쟁을 통해 쌓은 우정으로 현재까지도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관계다. KBL 제공
대표팀 감독과 농구 스타일에 대한 생각이 맞지 않았던 점은 물론 아쉬웠지만 이승준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전태풍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다. 대표팀의 꿈을 번번이 막아섰던 이승준이 때로는 얄밉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 때 우리 대표팀 키도 작고 빅맨 필요했어요. (이)승준이 형 스타일이 기본기 좋고 포스트업도 하고 외곽슛도 던질 수 있어요. 저는 유재학 감독님이랑 완전 반대야(웃음). 그래서 이해했어요. 승준이 형과는 지금도 연락 자주 해요. 오토바이도 같이 타는 사이에요. 3X3 대회 하고 있는 이야기, 편하게 사는 일상 이야기 주로 나눠요.”

전태풍은 태극마크를 달았다면 조성민, 양동근, 김주성 등과 함께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다는 과거의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조성민과는 KT에서 그 꿈을 이뤘지만 양동근, 김주성과는 결국 한솥밥을 먹지 못한 채 라이벌, 혹은 라이벌팀으로서의 인연에 만족해야 했다.

“솔직히 (양)동근이랑 같이 꼭 뛰어보고 싶었어요. 우리 같이 뛰어도 잘 할 수 있어. 나랑 뛰면 동근이 박스처럼 말고 더 자유롭게 농구할 수 있어요. 제가 그런 느낌 알려줬을 것 같아요. (김)주성이 형도 와우! 너무 똑똑하고 장난 아니야. 제가 패스 주고 백도어 하고 날아다녔을 것 같아요. 주성이 형이랑 뛰는 느낌 정말 느껴보고 싶었어요(웃음).”

전태풍이 국가대표에서 함께 뛰어보고 싶었던 양동근과 김주성. 하지만 올스타전에서마저 상대팀에 배치된 모습. KBL 제공
그동안 상상했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전태풍에게 아들 태용 군을 통해 못다 이룬 꿈을 함께 실현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묻자 웃음을 터뜨렸다.

“태용이는 지금 장난감만 좋아해요. 하하하. 국제학교에서 농구 교실, 축구 교실 하고 있는데 축구가 더 좋대요. 아빠가 축구는 잘 못하지만 불만 없어요. 축구도 괜찮아(웃음). 시간이 없어서 아직 같이 축구는 못해봤는데 시즌이 끝나면 같이 놀아줄 생각이에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전태풍의 입이 더욱 바빠졌다. 미국에서 소꿉친구로 처음 인연을 맺은 뒤 한국에서 사랑을 키워 결국 우승 반지를 결혼 선물로도 안겼던 아내 미나 터너 씨와도 변함없이 서로 아끼면서 지내고 있다며 반가운 소식 하나를 전했다.

“알콩달콩이 무슨 뜻이에요? (설명을 들은 뒤) 아직도 예스(웃음). 와이프 정말 잘 만났어요. 착하고 마음도 따뜻하고 정말 좋아. 7월말 셋째 출산을 앞두고 있어요. 저 이제 완전 아빠야. 하하하.”

사진=박대웅 기자
▶한국 농구 발전을 위한 직언

태극마크를 가슴에 새기지 못한 아쉬움은 흐르는 세월 속에 고이 묻어뒀지만 전태풍의 코리안 드림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1차적으로는 KCC에서 현역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 역시 최우선 목표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그는 제법 진지하게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되면 (이)승준이 형처럼 자유롭게 길거리 농구도 해보고 싶어요. 너무 오랫동안 하지 않아서 그런 자유로운 느낌 잊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 저는 코치 쪽을 좀 더 생각하고 있어요.”

전태풍은 선수 시절부터 그러했듯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될 기회가 찾아왔을 때에도 여전히 기존의 틀을 깨기 위해 끊임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을 본인의 모습을 예상했다.

전태풍은 이미 [인터뷰ⓛ]편에서 선수들이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인터뷰②③]편에서는 플레이스타일 역시 좀 더 열린 자세로 세계적인 흐름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솔직한 직언 속에서 한국 농구의 진정한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플로터의 중요성을 강조한 전태풍. KBL 제공
“처음에 스킬 트레이닝이 한국에서 시작됐을 때 감독들 대부분이 싫어했어요. 실전에 없는 기술이라고. 그런데 저는 10년 이상 계속 제 스타일대로 싸워왔어요. 옛날에 저 플로터 진짜로 잘 쐈어요. 그런데 자유로운 스타일 허재 감독님조차 플로터에 대해서는 ‘그게 뭔 슛이야. 개똥슛이야?’ 계속 이야기했어요. KCC 초반 3년과 비교하면 플로터 성공률이 계속 떨어졌는데 포인트가드는 정말 필요한 기술이에요. 지금 KBL에서 (김)선형이가 가장 여유 있게 플로터 하는 것 같은데 문경은 감독님이 (시도할 수 있도록) 이해해주는 것 같아요. 옛날 스타일 감독님이었으면 선형이도 잘 못했을지 몰라요.”

전태풍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농구를 배워온 선수들의 경우 오직 지도자가 설정해놓은 한 길만을 바라보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저 한국 처음 올 때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만약 코치가 되면 선수들한테 ‘야, 우리 다른 길도 있어. 더 예쁘고 더 잘 할 수 있는 길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무조건 선수들에게 도움 될 거에요.”

전태풍은 농구를 크리에이티브(creative), 창조적인 스포츠라고 강조했다. 수비에는 정해놓은 약속이 있지만 공격은 그 수비를 상황에 맞게 창조적으로 읽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개인적으로 생각하지 마. 이야기한대로 따라가’ 지도자가 이렇게 말하면 크리에이티브와 반대로 가게 돼요. 예를 들면 투자도 돈을 처음 낼 때는 많이 안 들어와도 나중에 시간 지나면 많이 들어올 수 있어요. 농구도 그렇게 해야 해요. ‘오늘 잘 해야 해. 오늘 이겨야 해’라고 말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젊었을 때 하지 않으면 늙어서는 더 할 수 없어요. 시도라도 해보면 마음이 안 아픈데 시도조차 안 해보면 나중에 후회하고 아쉬움 남아요. 그래서 저 코치하게 되면 이제 다른 부분으로 계속해서 싸워나갈 거에요.”

과거와 비교해 지도자들의 인식 역시 점점 개방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태풍의 언급처럼 한국 농구는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획일적인 틀에 갇혀있는 것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 외로운 길로 또 한 번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전태풍이 훗날 한국 농구 발전을 이끌 훌륭한 지도자라는 두 번째 코리안 드림을 이뤄낼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올시즌 플레잉 코치로 활약 중인 전태풍.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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