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태풍찾기. 사진=박대웅 기자
[스포츠한국 용인=박대웅 기자] KBL 10년 차, 그리고 한국 나이 40세.

리그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 받았지만 KCC 전태풍의 현역 커리어도 어느덧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는 것 같다며 그가 넉살맞게 웃는다.

“10년이 참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한국 들어왔을 때 애기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아재. 완전 신기해.”

[인터뷰ⓛ]편에서 전태풍과 올스타전에 대한 유쾌한 이야기들을 주로 소개했다면 [인터뷰②]편에서는 그가 KBL리그에 남긴 발자취를 함께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커리어에 대한 대화 도중 한 가지 흥미로운 특징이 발견됐다. 전태풍은 유독 KCC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이처럼 해맑고 환한 미소를 끊임없이 발사했다.

이제는 오랜 추억이 된 2009~2010시즌부터의 첫 3년, 그리고 2015~16시즌 친정 복귀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KCC 유니폼을 입고 있는 자체가 전태풍에게는 농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 이유를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기로 했다.

2009년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 1순위로 KCC와 인연을 맺은 전태풍. KBL 제공
▶시작과 끝에 위치한 KCC

화려함 그 자체였다. 전태풍은 어머니의 나라에서 처음 농구공을 잡은 2009~10시즌 평균 14.4점 4.7어시스트 2.7리바운드 1.5스틸을 기록하며 본인의 이름처럼 태풍을 불러일으켰다.

2년 차인 2010~11시즌에는 팀이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3년 차에는 평균 15점 5어시스트 2.8리바운드로 절정의 공격력을 뽐냈다. 전태풍 스스로도 KBL 초반 3년을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자 본인의 최전성기로 꼽았다.

“한국 들어와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친구 만나서 재미있었어요. 그 때는 젊어서 그냥 다 했어(웃음). 웨이트 트레이닝 안 하고 연습 설렁설렁 해도 ‘막아볼 테면 막아봐’ 이런 느낌? (머리를 가리키며) 자신감이 완전 여기까지 차 있었어요. 진짜 완벽했던 것 같아. 하하하.”

KBL 2년 차에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한 전태풍. KBL 제공
그러나 전태풍은 귀화혼혈선수의 경우 3년 마다 팀을 옮겨야 한다는 당시 규정 때문에 결국 2012~13시즌 KCC를 떠나 오리온에 새 둥지를 틀어야 했다. 슬픈 이별이었다.

이적 첫 해부터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어시스트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오히려 KCC 시절이 더욱 그립기만 했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제도에 의해 유니폼을 갈아입어야 했고, 팀에서 요구하는 역할에 대한 생각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트레이드로 3번째 팀 KT에 갔을 때 역시 마찬가지의 감정이었다.

“오리온, KT 시절 행복했던 일이요? 그냥 돈 많이 받는 것? 농담이고 솔직히 말하면 팀 옮기고 나서 같은 편 사람들 힘들게 만들었어요. 감독님들이 ‘한국 포인트가드’처럼 하라는 말 매일 해서 자신감 떨어졌고 아직까지도 속상해. KCC에서는 허재 감독이 내 날라리 성격 때문에 그냥 마음대로 해보라고 했거든요.”

물론 오리온, KT에서도 팀 동료들과 즐거웠던 추억들은 있다. 전태풍은 오리온 시절 정재홍, 전정규, 최진수, 김승원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 “너무 착한 동생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KT에서도 조성민을 비롯해 마음씨 착한 동료들과 함께 했고, 둘째인 딸 하늘이가 태어난 시기이기도 했다며 활짝 웃었다. 또한 오리온, KT에서 힘든 시절을 겪은 뒤 출전 시간이 짧거나 엔트리에 들지 못한 선수들의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젊었을 때에는 귀화혼혈제도에 대한 불만과 속상함도 컸다. 하지만 전태풍은 “오리온 있을 때는 ‘아이씨. 이런 차별 없으면 난 아직도 KCC에서 할 수 있는데’라고 많이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 제도 문제는 다 잊었어요”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2015~16시즌 KCC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전태풍에게 다시 행복이 찾아왔다. 당시 FA 자격을 얻은 전태풍은 LG와 KCC로부터 영입 의향을 받았으며, 망설임 없이 친정팀으로의 복귀를 택했다.

KCC와 다시 한솥밥을 먹은 첫 시즌부터 전태풍은 평균 11점 2.7어시스트 2.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KCC를 정규리그 1위에 올려놨다. 양동근에게 1표 차로 밀려 정규리그 MVP를 아쉽게 놓쳤으나 제2의 전성기 역시 KCC에서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돌아온 KCC에서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며 제2의 전성기를 누렸던 전태풍. KBL 제공
“그런데 원래 1위팀 선수 MVP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냥 거기까지만 말 할래(웃음). 그래도 KCC에 다시 와서 너무 좋았어요.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었어요. 완전 나 KCC맨인 것 같아. 하하하. 인정?”

그렇다면 농구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던 KCC에서 최고의 브로맨스를 이룬 상대는 누구였을까. 전태풍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하승진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건 그냥 (하)승진이지. 저랑 절친이에요. 승진이가 처음 한국 왔을 때 ‘형, 이건 욕이니까 쓰면 안 돼요’라고 해야 하는데 그런 말도 안 하고 욕 알려줬어요. 그래서 카메라 앞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욕했어요(웃음). 장난기 있지만 승진이 너무 착하고 키만큼 마음도 엄청 커요. 생각하는 것도 보통 한국 사람들하고 달라. 오픈 마인드? 그래서 저랑 잘 연결된 것 같아요.”

▶태풍도 막지 못한 세월의 흐름

MVP 투표 2위에 등극하긴 했지만 전태풍은 이 시즌을 끝으로 부상과 노쇠화가 찾아오면서 이제는 세월의 흐름을 느끼고 있다. 올시즌 평균 3.4점 2.0어시스트 1.6리바운드라는 기록에서도 나타나듯 이제 KCC의 중심 선수와는 제법 거리가 있다. 올시즌 역시 지난해 12월20일 햄스트링 부상 이후 코트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 올스타전 휴식기가 모두 종료된 뒤 출전이 가능할 전망이다.

“작년에 나 종아리 파열 생기고 그리고 햄스트링 파열도 생겨서 그때 처음 ‘아, 이제 많이 안 남았다’ 느꼈어요. 만약 내년에 또 다치면 은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결국 또 다쳤어요. 이제는 그런 (안타까운) 시간인 것 같아요.”

2018년 12월. 이미 지나간 날짜의 달력을 손에 든 전태풍.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사진=박대웅 기자
무엇보다 과거와 같은 파이팅을 내기에 더 이상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때가 전태풍에게는 가장 슬픈 일이다.

“조금 어렸을 때 농구 처음 배울 때는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어요. 고등학교 우리 조지아주 1등. 고등학교 대표팀 나오고, 대학교 가서는 4년 동안 베스트 뽑히고. 또 유럽 뛰었을 때에도 잘 했어요. 터키에서는 득점 1위. 다른 나라에서도 득점 4위. 여기 와서는 농구 문화와 많이 싸웠는데 어렸을 때는 불만 있으면 마음이 다운되기도 하지만 화가 나서 더 잘 뛸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몸에 그런 파이팅이 없어서 농구 문화와 싸우는 것도 힘든 것 같아요.”

하지만 전태풍은 후배들을 챙기고 플레잉 코치의 역할을 수행하며 KCC에서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고 있었다. 송교창을 비롯해 젊은 선수들 모두가 너무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저 기특하다고 언급했다.

“선수일 때와 플레잉 코치일 때 완전 달라요. 지금은 개인 생각 거의 없고 선수들 생각만 있어요. 그런데 만약 올시즌 뛰고 은퇴하면 마지막 마무리를 잘 하고 싶어서 이제 조금은 개인 생각도 해야지(웃음). 그런데 요즘 애들 너무 잘 해서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은퇴라는 단어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전태풍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은퇴식을 가졌던 김주성, 또한 전성기 시절 뜨거운 혈투를 펼쳐왔던 양동근에 대해서도 차례로 입을 열었다.

“나도 어렸을 때에는 (김)주성이 형 같은 그런 꿈이 있었어요. 응원해준 팬들 앞에서 박수 받으며 멋지게 은퇴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런 개인적인 생각은 없어요. 이야기하기 아쉽지만 나는 100% 한국 사람 아니라는 (주변의) 인식 있으니까요. 그래서 은퇴식 못 하더라도 이제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양)동근아. 우리 옛날에 막 4월(챔피언결정전) 때 너무 재미있었어. 죽을 때까지 그 생각 챙길 거야. 옛날에 싸웠던(맞대결했던) 시간들 신기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더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 같아. 하~(깊은 한숨). 우리 무릎 낡을 때까지 뛰자(웃음).”

라이벌 양동근과의 전성기 시절 맞대결. KBL 제공
세월이 야속할 때도 있지만 전태풍은 팬들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우리는 지금 올라가는 길이에요. 무조건 4강 올라가야 해요. 선수들 모두 더 열심히 준비해서 우승까지 할 수 있을 만큼 힘낼게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올스타전 브레이크 타임 끝나고 다시 복귀하면 마지막으로 우리 KCC 팬 위해서 정말 재미있고 즐거운 농구 보여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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